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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이름 붙이기 - 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
존 케닉 지음, 황유원 옮김 / 윌북 / 2024년 5월
평점 :
『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 에서 “언어가 있는 사람에겐 쪼갤 수 있는 미세한 차이가 보인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곧 해상도에 비유된다. 높은 해상도로 세상을 볼 수 있으면 차이를 분별해서 더욱 섬세하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이다. 더 세밀하고 다채로운 언어를 사용하면 글 역시 풍부해지고 삶의 해상도도 높아진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슬픔과 같은 정념에 종속돼 있을 땐 그것을 명철하게 인식하므올써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슬픔에 분석적 언어를 입혔다. 이것이 ‘성찰’이다. 난감한 기분은 적절한 단어와 정확한 비유로 표현될 때 비로소 내가 다룰만한 것이 된다. 즉,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다는 것은 슬픔에 대한 지적인 언어적 처방이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이름표로 생명을 얻을 때 얻는 위안은,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당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 당신이 기이한 일련의 상황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는 한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누군가가 상기시켜주는 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책으로는 아주 이전에 유선경님의 『감정어휘』를 읽었었다. 당시에는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몰랐기에 결국 주변으로부터 놀림만 받았지만 이제는 그 행동이 상당히 과학적인 이유에 기반한다는 걸 알았다. Jared Torre 가 2018년도에 쓴 논문 「Putting Feelings Into Words: Affect Labeling as Implicit Emotion Regulation」에 의하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 만으로도 전두엽이 공포심 같은 강렬한 감정과 연관된 편도체의 amygdala 감정적인 반응을 진정 시킬 수 있다고 한다. 불확실한 감정 상태를 경험하고 있을 때 이름을 달아줌으로써 불확실성을 줄일 뿐만 아니라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해당 감정과 스스로와 거리감을 둘 수 있다.
위와 같은 무거운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미 다 아는 감정에 단어가 생기면 반가움이 앞선다. 인터넷에 한 때 돌아다니던 유명한 예시로는 “𝘮𝘢𝘮𝘪𝘩𝘭𝘢𝘱𝘪𝘯𝘢𝘵𝘢𝘱𝘢𝘪: (명)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굳이 스스로 하고 싶지는 않은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 해 주기를 바라는,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 가 있는데 즉 조별 과제할 때 교환하는 눈빛이다.
☉ 벌처 쇼크 𝘷𝘶𝘭𝘵𝘶𝘳𝘦 𝘴𝘩𝘰𝘤𝘬: (명) 어느 낯선 나라를 아무리 여러 날 동안 돌아다녀도 딱히 그 곳에 발을 디디지 못하는 것만 같은—그러기는커녕 이국적인 풍물에 현혹되어 그곳의 문제와 복잡함과 시시함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어디를 가든 등에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탱크에서 산소 대신 ‘추측’을 들이마시며 암초 위에 뜬 잠수부처럼 문화 위에 높이 떠 있는 것만 같은—성가신 감각.
☉ 하모노이아 𝘩𝘢𝘳𝘮𝘰𝘯𝘰𝘪𝘢: (명) 삶이 살짝 너무 평화롭게만 느껴질 때—다들 의심스러울만큼 잘 지내는 듯 보이고 모든 게 기분 나쁠 만큼 고요해서 곧 찾아올 불가피한 몰락에 대비하거나 스스로 그 고요를 불태워버리고 싶을 지경일 때—두려워서 안달하게 되는 마음. 𝘩𝘢𝘳𝘮𝘰𝘯𝘺 + 𝘱𝘢𝘳𝘢𝘯𝘰𝘪𝘢
☉ 이모독스 𝘦𝘮𝘰𝘥𝘰𝘹: (명) 주위의 모든 사람과 영원히 조화되지 않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 낮잠 시간에 공포를 느끼고, 마음을 터놓고 나누는 대화를 비판하고, 댄스 클럽에서 상념에 잠기는 경향이 있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다양한 감정의 단어를 접하면서 내가 느꼈지만 차마 어떤 단어로도 정확히 명명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본 리뷰는 출판사 윌북 (@willbooks_pub) 의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귀중한 책 선물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