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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 노화와 질병 사이에서 품격을 지키는 법
헨리 마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9월
평점 :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사랑을 받은 <참 괜찮은 죽음>의 저자 헨리 마시의 신작이다
이 책이 그의 마지막 책이 될 거라는데 슬프면서도 생의 마지막까지 글을 쓴 저자가 존경스럽기도 하다
저자는 영국의 신경외과 의사이다
은퇴 후 전립선암 4기 판정을 받으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의 생각을 솔직하게 나열하고 있다
난 사실 죽음에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이유는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재작년 병원에서 예상치 못한 진단을 받으면서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내가 죽음에 관한 책에 관심을 갖고 읽는 이유도 그 때부터이다
나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의사가 환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의사는 사람이 아니냐 너도 아픈 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또 내가 의사라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매일 아픈 환자를 수도 없이 만나니 자신과 환자를 따로 떨어뜨려 냉정한 태도를 보여야만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겠다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신경외과 의사인 저자가 내가 의사를 만나며 느낀 점을 정말로 그대로 갖고 있더라
저자는 자신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자신의 뇌는 노후의 징후가 거의 없는 소수에 속할 거라 착각했고, 은퇴한 후에도 자신은 여전히 의사라고 생각했던 탓에 질병은 의사가 아닌 환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며 자신은 여전히 머리가 녹슬지 않았고 기억력도 좋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뇌스캔 후 크나큰 무력감과 절망감에 휩싸였다고 한다
흑백 이미지를 통해 노화하고 있는 뇌가 드러난 것이다
코로나19가 시작되었을 때 저자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때 가장 크게 걱정했던 건 손녀들에게 줄 인형의 집을 완성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고..
갑자기 내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있거나 나중에 하기로 하고 뒤로 조금 미뤄둔 일이라는 걸 나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저자는 전립선 증상이 오래 전부터 있었음에도 병원에 가지 않고 미루다가 가기로 결심한 후 락다운이 시작되면서 7개월이나 후에 의사를 만나 검사를 받게 된다
전립선암을 진단받고 5년 안에 죽을 일은 없을거라는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 평생 의사였던 자신이 환자가 되어 병원과 의사에 대해 느끼게 된다
암을 진단받은 후 1년이 흘렀고 완치는 할 수 없지만 치료는 받을 수 있는 환자군에 속하게 되었는데, 무력감을 느끼며 검사 결과에 따라 마음이 요동친다
하지만 70대인 자신의 나이를 고려할 때 암에 걸리지 않았어도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던 시기이기 때문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한다
나이가 먹고 죽음에 가까워져서야 나 자신과 과거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저자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재미를 느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않아 아쉽다는 어떤 환자의 말이 떠오른다
유퀴즈에 출현했던 종양내과 의사가 했던 말인데 너무 공감되고 마음이 짠했다
저자가 수월히 치료를 받고 좀 더 오래 가족들 곁에서 머물다 편한히 죽음을 맞이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