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디자이너 훔쳐보기 - 디자이너 50인의 어제와 오늘
프랭크 필리핀 지음, 김현경 옮김 / 안그라픽스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디자이너'를 공부하겠다는 사람은 봐라. 디자이너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고(그나마 이것도 간략하다), 어떤 일들을 맡으면서 어떻게 그 일을 완수했는지 설명했다. 과거와 현재의 보물을 보면 디자이너를 아는 사람으로서 쓴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디자인'을 공부하겠다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 도서다. 그냥 '디자이너'의 이야기들을 담은 책. 제목 그대로다. 그 이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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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1 도시는 편리합니다만―

안녕하세요, 나는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는 도시에서 사는 게 너무 좋아요. 도시는 정말 편리한 곳이거든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편리함이 생겨나는 곳이 바로 도시랍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자명종 소리를 듣고 일어나요. 누가 특별히 깨워주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죠. 가스레인지에서는 불이 나와요. 라이터나 성냥은 물론이고 장작이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그저 밸브 하나만 돌리면 새파란 번갯불이 번쩍이면서 불이 타올라요. 정말 놀라운 일인데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거기에 냄비를 올려요.

식사를 마치고 남은 반찬은 냉장고에 넣어요. 그리고 식기는 싱크대에 놓아두지 않아도 되죠. 식기세척기에 넣어두면 손에 물을 묻힐 필요도 없이 자동으로 세척이 되요. 살균 소독은 물론 건조까지 되어서 나오죠. 어머니들은 더 이상 쌓인 설거지 거리를 보며 한숨을 내쉬지 않아도 되요. 그리고 아버지는 아내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겠죠. 자식들도 마찬가지에요. 어머니 대신 설거지를 하는 효도는 이제 효도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게 되었죠. 만약 당신 집에 식기세척기가 없다면 한 대 사는 게 효도로 향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요.

도시는 물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어요. 어디를 가나 버튼을 누르거나 십자 모양의 밸브를 돌리면 소독약 냄새가 스며있는 물이 콸콸 나오죠. 집에서 나오는 물은 온도 조절도 가능해요. 원하는 누구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따뜻한 물로 몸을 씻을 수 있죠.

집밖으로 나가봐요. 설령 당신이 도시 지리를 모르는 타지 사람이어도 괜찮아요. 글자만 읽을 줄 안다면 어디든지 갈 수 있죠. 굳이 지도가 없어도 괜찮아요. 도심 곳곳에 당신을 안내하기 위한 표지판이 있어요. 지명만 정확히 알고 있다면 누구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혼자 힘으로 찾아갈 수 있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세요. 대중을 위한 교통이야말로 도시의 꽃이지요. 대중의 수요에 맞춰 노선이 정해져있고 저렴한데다가 안전하기까지 하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만 한다면 어느 누구도 당신을 막지는 않을 거예요.

도심을 여행하는데 음악이 빠지면 안 되죠. 비행기, 전철, 자동차,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음까지 막아주는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조약돌만한 작은 기계 하나를 들고 다니면 되지요.

혼자 음악을 들으며 걷고 있자면 이따금 먼 곳에 떨어진 소중한 이들이 생각나요. 그들을 꼭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니니 정확한 위치는 상관없어요. 그저 안부가 궁금할 뿐이죠. 핸드폰을 꺼내서 문자를 보내요. 내 사정은 말하지 않아도 되죠. 잘 지내요? 이렇게 간단한 문자 하나면 되요. 갑자기 보낸 문자 메시지가 반갑다면 상대는 내게 답신을 하거나 전화를 하겠죠. 문자를 보냈는데 답신이 없어도 안타까워하지 말아요. 바쁘다는 건 좋은 거니까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죠?

계단을 오릅니다. 언젠가는 이 계단도 사람들은 불편해하겠죠. 누군가가 상상할 겁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하면 올라가는 계단. 에스컬레이터는 이미 있으니까 그건 아니겠죠. 신형이 나오면 구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이치. 에스컬레이터보다 훨씬 더 편리하고 간단한 무엇인가가 나오겠죠. 인간은 기어이 발명하고 말겁니다. 도시에서 그런 건 일상다반사니까요.

계단의 끄트머리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봅니다. 높은 곳에서 양손을 펼치고 있으면 마치 세상이 내 품에 들어온 것과도 같다는 망상을 하고 말아요. 이런 기분, 나쁘지만은 않죠.

누가 먼저 하늘에 닿는지 내기라도 하듯이 삐죽삐죽 솟아있는 빌딩숲 사이로 보이는 까만 길에는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자동차들이 지나다니고 있어요. 그 밑을 투시하면 지하철이 보이겠죠.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는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고요. 그리고 그 위를 상상하면 우주정거장과 우주선도 보이겠죠? 가끔은 인공위성이 스윽 움직이는 것도 구경할 수 있을 거예요. 이 모든 게 인간이 편리해지기 위한 것이죠.

해님이 빌딩숲 너머로 쑥 들어가면 사람들은 하늘의 별을 따다가 길거리에 장식해놔요. 그 불빛에 사람들은 마치 불나방처럼 몰려들죠. 사람들은 더 이상 밤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어느 누구도 빨리 집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거리를 서성여요. 그래서인지 도시의 밤은 아주 시끄러워요. 결코 쉽게 잠들지 않죠. 해님의 미소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사람들은 편리함을 위해 스스로 빛을 발명했어요.

참 놀라운 일이죠.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걸 놀라워하지 않아요. 아주 당연하다는 것처럼 이용합니다.

나는 이런 도시가 좋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도시의 삶이 좋다고 말하지 않아요. 많은 편리함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그것을 놀라워하거나 신기해하지 않아요. 그리고 고맙다고 생각하지도 않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소나무에 달려있는 솔방울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도시의 일부가 되었어요. 그래서 도시의 편리함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죠.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간단해요. 누구에게도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되는 거죠.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갈 수 있어요. 나를 모른다면 그들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전혀 상관하지 않아요. 그건 도시의 특성이에요. 도시는 개인의 성향을 존중해주죠.

도시의 태엽을 돌리는 데 필요한 몇 가지 규칙만 지켜준다면 어느 누구도 당신의 삶에 관여하지 않아요. 심지어 당신이 만취하여 길바닥에 쓰러져 자고 있어도 사람들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아요. 오히려 그 편이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뻗어버린 사람들의 주머니를 뒤지기도 하거든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그렇죠.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전혀 모르는 타인과는 일부러 얽히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되요.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되거든요.

아무하고도 대화하기 싫다면 개성 없는 닭장처럼 생긴 아파트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면 되는 거죠.

정말로 당신이 그렇게 하더라도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아요. 그게 진짜 도시의 매력이에요. 고독을 원할 때 진정으로 고독해질 수 있는 것이죠. 굳이 타인과 억지로 대화할 필요가 없어요. 같은 닭장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이 죽어도 슬퍼하지 않아도 되요. 당신은 그를 모르고, 그도 당신을 모르거든요. 서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요. 당신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신경을 쓰면 되는 거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흘릴 눈물을 준비하면 되는 겁니다.

도시는 편리한 곳이에요. 남을 신경 쓰지 않으면 되죠. 하지만 그것은 말이죠. 나도 남에게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칼날이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와요. 아파요. 관심은 사랑받기위해 있는 것인데 어째서 베인다는 느낌이 드는 것일까요.


#2 적막은 좋지만―

당신은 옥탑방이 좋은 이유를 알고 계시나요?

도시가 품고 있는 많은 공간 중에서 특히 옥탑방이라는 장소는 참으로 매력적인 공간이에요. 일단 옥상 전체가 모두 자신의 영역이라는 게 큰 장점이죠.

밖으로 나오면 계단을 내려가기까지의 모든 공간을 나의 색(色)으로 채울 수 있어서 참 좋아요. 하얀색 스티로폼 상자만 있으면 도시에 자신의 정원을 꾸미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랍니다. 큰 정성을 들일 필요도 없어요. 목이 마르다 싶으면 먼저 물을 마신 다음 남은 물을 스티로폼 화분에 뿌려주면 되죠. 가끔은 한 모금, 가끔은 한 방울, 가끔은 주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괜찮아요. 옥탑방의 공중정원에는 때때로 비가 쏟아지거든요.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천연 스프링클러지요.

방 안의 세상은 혼자 생활하기에는 넓지만 포근하고 아늑해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서 적막이 감도는 공간이죠. 사람들은 적막이 가져다주는 외로움에 얼굴을 잔뜩 찡그릴지도 몰라요. 나는 웃을 수 있어요. 그들과 달리 이런 적막을 좋아하거든요.

해님이 고층 건물 사이로 수줍은 자태를 숨기면 나는 어두운 방에서 빠져나와 다가오는 밤을 맞이해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밤이 들어온 입구를 빤히 쳐다봐요. 점차 자신의 영토를 넓혀가는 여왕님의 당당한 행보를 지켜보다보면 나는 어느 순간 아이로 변하죠.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간 엄마가 돌아오기를 홀로 기다리는 아이 말이에요.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이는, 그녀가 빨리 돌아오지 않아서 무척 지루해하죠. 그건 나도 마찬가지에요.

아직 별이 보이지 않아요. 사실 도시에서 별을 보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랍니다. 도시의 밤하늘을 장식하는 별들은 수줍음이 많아요. 사람들이 깨어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별이 등장하는 무대의 순서도 자꾸만 뒤로 늦춰져요.

도시의 생기가 어느 정도 죽으면 그제야 별님은 머리를 내밀어요. 반짝이는 두 눈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며 그녀들은 새까만 밤하늘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요. 그제야 나는 웃게 됩니다. 어느 사이에 싸해진 밤의 공기를 가슴으로 받아드리며 그녀들의 연극을 구경해요. 다행이에요. 아직 도시에서 별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만약 그녀들마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외로워서 미쳐버렸을지도 몰라요. 사람들의 밤은 무척 짧지만 도시의 밤은 묘하게 길거든요. 그 긴 시간을 의자에 앉아 홀로 보내고 있자면 반드시 누군가가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 기분이 듭니다.

적막은 좋지만 외로운 건 싫어요.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좋아요. 하지만 이 넓은 하늘 아래를 홀로 걸어가는 일은 사양하고 싶네요. 별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나를 보고서 어떤 사람들은 내가 너무 개인주의적이래요. 나는 딱히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않아요. 그저 바라볼 뿐이죠. 도시는 그런 곳이니까요. 남의 생각을 굳이 뜯어 고칠 필요는 없어요. 일단 자기만 납득하면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문제도 없죠.

밤하늘의 별이 나에게 물어봐요. 누군가가 곁에 있기를 원하면서 왜 혼자 덩그러니 옥탑방 옥상을 지키고 있는지.

별이 내리는 밤. 한동안 내게로 내려오는 별빛을 쬐고 나서야 나는 그녀들의 물음에 생기가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해요.

별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새벽의 도시를 나는 좋아해요. 흔한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을 나는 사랑해요.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나는 아마 그 사람의 심장소리에 흠뻑 취해 이런 멋진 고요를 독차지하지 못했겠죠.

겉모습은 밋밋하고 내부 구조는 1층부터 20층까지 전혀 다를 것 없는 철창 감옥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 기분을 전혀 모를 거예요. 이건 오로지 옥탑방에서 살아야만 느낄 수 있는 거죠. 소유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도시에서 하늘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비록 몇 시간이지만 독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어제와는 또 다른 스케치북에 밤하늘의 멋진 풍경을 완성시키는 별들의 주목을 받는 다는 것. 모든 게 같은 빛깔인 도시에서 자신만이 특별해진 느낌이랄까요.

별들이 내게 속삭여요.

어서 함께해줄 사람을 찾으라고. 자신들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매일 밤마다 무대의 서막이 올라가기를 기다리는 바보 같은 짓은 그만 하라고.

나는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해요.

그런 슬픈 얘기는 하지 말아요. 밤하늘에 별이 없어지다니. 그런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내 곁을 떠나지 말아요. 혼자는 너무 외롭고 둘은 너무 많아요. 그러니 우리 적정한 거리를 두기로 해요. 당신과 나처럼, 이렇게 하늘과 땅에서 서로를 바라보기만 해요.

내 제안이 달갑지 않은 것인지 별은 대답하지 않아요. 도시에서 별을 보는 것은 참 힘들어요. 어떤 날은 해님이 다시 기지개를 펼 때까지 기다려도 보이지 않아요.

때론 별빛이 너무 흐릿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별들은 도시를 떠나려는 것일까요. 이렇게 편리한 곳인데. 이렇게 혼자 살기 좋은 곳인데.

별이 없는 세상은 정말로 고독하겠죠. 하지만 도시에 사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걱정하지는 않아요.

나는 그게 때론 정말로 무서워요.


#3 길을 가다가―

길을 건너가다가 넘어졌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어요. 어떤 징조나 예고도 없었죠. 잠을 잘못 잔 것처럼 어깨가 뻐근하더니 이내 새파란 하늘이 위에서 작심이라도 한 것처럼 지상으로 내려와 나를 짓눌렀어요. 순간 다리가 없어진 줄 알았죠. 땅 밑으로 내려온 하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 몸은 오랜 세월 속에서 갖가지 풍파를 겪은 건물처럼 폭삭 무너졌어요.

머릿속에서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요. 갑자기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귓속을 맴돌고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죠. 흐릿하던 시야가 잠깐 초점을 되찾았나 싶었더니 이내 눈앞이 노랗게 변해요. 현기증이라도 생긴 것일까요.

나를 향해서 벌떡 일어서려는 아스팔트를 밀어내려 뻗은 손이 앞으로 쓰러지는 몸을 겨우 지탱해줬어요. 해님의 뜨거운 입맞춤에 달궈진 열기가 손바닥을 통해서 올라와요. 나도 모르게 울컥 하고 말았어요. 올라온 것은 열기뿐만이 아니었어요.

나는 울음을 터트렸어요. 좋아하는 장난감을 잃어버린 아이의 울음이 아닌, 방금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여인처럼 정말 서럽게 울었어요.

토해내는 울음의 폭포 사이로 들리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숨을 탁 막히게 만들어요.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갑자기 쓰러진 나를 보며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말해요. 행여나 내가 들을까봐 조심하면서도 갖가지 추측을 내뱉어요. 허공에 난무하는 단어들을 보고 있자니 현기증은 더욱 심해지려고 하죠.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정말로 거짓말 같아요. 인생은 한 치의 앞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말은 절대적으로 맞아요. 어떤 사람도 감히 삶을 예측할 수는 없지요. 어제, 아니 방금 전까지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한 가운데에서 쓰러질 거라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나는 정말로 넘어졌어요.

일어서려고 다리에 힘을 줘요. 그러다가 문득 깨달아요. 다리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요. 그제야 발목이 아프다고 울상을 지으며 정신을 붙잡고 흔들어요. 고통은 배가 되어 목젖을 타고 바깥으로 새어나오죠. 꽉 다문 이빨 사이로 오열과 함께 신음이 흘러나와요.

어느 누구도 내게 손을 내밀지 않아요.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는 사람조차 없어요. 네, 여기는 도시입니다. 자기와 관련이 없다면 전혀 상관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죠.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어요.

여기는 횡단보도에요. 곧 신호가 바뀌겠죠. 자동차에 깔리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자력으로 일어서야만 해요.

발목의 통증을 참아내고 일어나기위해 노력해요. 쉽지 않아요. 자꾸만 다시 넘어지고 말아요. 그럴 때마다 손바닥에는 잘잘한 상처가 늘어나죠. 따가워요. 하지만 진짜 아픈 건 그게 아니에요. 발목의 통증도, 손바닥의 상처에서 전해지는 아픔도 괜찮아요. 정말로 아픈 건 그런 게 아니에요.

난 사람들의 관심이 아파요.

나는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요. 일어서자고 주문을 걸어요. 하지만 오늘 기분은 정말 최저에요.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아파요. 그것들은 마치 칼날이라도 된 것처럼 내 등을 푹푹 찔러요. 따끔한 통각이 눈물샘을 자극해요.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귀가 따가워요. 경적이 울렸죠. 신호가 바뀌었어요. 내가 없는 곳으로는 차가 무섭게 질주해요. 코앞까지 다가온 차들은 어서 비키라는 말을 경적으로 대신해요. 고막이 찢어질 것처럼 괴로웠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어요. 그리고 횡단보도를 마저 건너요.

발목의 통증은 참아냈지만 여전히 집중되는 사람들의 관심은 버티지 못하겠어요. 아찔한 통각들의 사이로 이성이 빠져나가요. 나는 다시 털썩 주저앉아요. 발목 때문이 아니라 정신이 견디지 못한 것이죠. 몽롱한 상태에서 주변을 둘러봐요. 사람들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봐요. 도망치고 싶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했어요.

눈물이 멈췄어요.

세상이 고요해졌어요. 내가 좋아하는 적막이 찾아온 것이죠. 울고 있던 나를 위로하려고 왔을까요? 고개를 들어요. 쫙쫙 갈라진 마음의 틈 사이로 산들바람처럼 부드러운 손길이 들어와요. 나는 멍하니 있다가 상처를 어루만지는 촉감에 취해 살포시 눈을 감아요.

도시의 리듬을 깨트린 나를 마치 죄인인양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할퀸 마음을 다독여주는 건 고독이었어요.

나 말고는 누구와도 상관이 없는 단어들이 상처를 짓누르는 동안 찾아온 고독은 나를 보듬고 함께 울어줬어요.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끔 무시할만한 그네들의 대화로부터 나를 지켜줘요.

왜 나를 괴롭히나요. 나는 당신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데. 왜 내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가지는 건가요. 평상시처럼 해줄 수는 없나요. 우리는 남이잖아요. 이건 반칙 아닌가요. 나는 당신들이 무엇을 하던 전혀 관심이 없는데. 왜 내가 아프니 그제야 나를 쳐다보는 거죠. 그러지 말아요. 갑작스레 다가오는 당신들의 관심은 너무도 따갑고 예리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게 상처를 줘요.

쉽게 선을 넘어오지 말아요. 도시에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 우리는 그러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요? 비록 계약서는 없고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 알고 있었잖아요. 그런 정겨운 얘기는 동화 속에나 나오는 환상 같은 거라고 믿고 있잖아요. 제발 이러지 말아요. 갑자기 내게 관심을 갖지 말아줘요.


#4 어스름한 새벽녘이 다가오면―

꿈을 꾸었어요.

꿈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꿈이었어요. 그런 걸 루시드 드림(Lucid dream)이라고 하던가요. 비어있는 유리잔처럼 너머가 확실히 보이는 투명한. 흰 도화지를 채워가는 수채물감의 색채처럼 명료한 빛을 가진. 태초의 세상에나 있을 법한 밝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꿈을 꾸었어요.

절대로 좋은 의미는 아니에요. 그만큼 깨어난 다음에도 선명히 기억되는 꿈을 경험했다는 뜻이니까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건 악몽이었어요. 다만 너무도 생생해서 처음에는 꿈이 아니라 현실인줄 알았죠.

나는 횡단보도를 걷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영문도 모르고 쓰러졌죠. 일어나려고 허둥지둥 서두르다가 다시 넘어져요. 발목이 부러진 거죠. 엄청 아팠어요. 네, 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아팠어요. 그래서 알게 되었죠. 그 통증은 이미 경험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이건 꿈이야. 분명 꿈이야. 한번 일어난 일이 반복될 리가 없잖아.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날 줄 알았어요. 포장된 상자에 들어있는 생일선물이 무엇인지 미리 알아버리면 재미가 없잖아요.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설렘과 기대가 반감되는 것처럼 꿈도 시시해질 줄 알았어요. 하지만 꿈에서 깨어날 수가 없었어요. 나는 이게 내가 꾸는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어나지 못했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나는 죽고 싶지 않았죠. 사람들에게 관심 받는 것은 더더욱 싫었죠.

이를 악물고 발목을 물어뜯는 악질적인 개를 손으로 때어내고 일어섰어요. 이제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되요.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옆에서 큰 경적소리가 들렸습니다.

버스였어요.

반사적으로 나는 운전석을 쳐다봤어요. 기사는 없었죠. 아무도 운전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어요. 버스는 그대로 내 몸을 들이받았어요. 그리고 아무런 동요도 없이 지평선 끄트머리를 향해 질주했죠.

놀랍게도 충격은 없었어요. 발목이 부러진 통증은 느껴졌으면서도 차에 치인 감각은 없다니. 신기했어요. 줄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팔다리가 제멋대로 흔들리는 것을 눈으로 또렷이 보고 있었죠.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눈조차 깜박이지 않았어요.

몸은 횡단보도에서 몇 십 미터나 떨어진 곳에 떨어졌죠. 제어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기세였어요. 마치 산사태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기분이랄까요. 데굴데굴 구르다가 겨우 몸이 멈췄어요. 고개를 움직일 수가 없었죠. 그건 온몸이 마찬가지였어요. 신경이 하나하나 끊어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게 죽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꿈인 것을 알기 때문에 성큼 다가온 죽음은 전혀 두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승사자라도 등장하면 정말로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정도로 설렜죠. 그러나 주변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어요. 나는 속으로 안타깝다고 생각했죠.

결론부터 말할까요.

그 기다림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심장의 박동이 점차 느려지는 것을 느끼면서 꾹 참고 끝까지 기다렸지만 흥미로운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았죠. 작아지는 고동을 들으며 나는 마치 엄마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이 든 갓난아이처럼 얌전히 죽었어요.

말했죠?

나는 죽는 게 싫었다고. 그래서 꿈에서 깨어났어요. 볼에서 느껴지는 그리운 감촉에 손을 움직여 만져보니 물기가 있었죠. 꿈 때문에 울어버렸습니다. 죽는다는 게 그렇게도 싫었을까요. 그때 메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죠. 나도 모르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시는 이런 꿈을 꾸고 싶지 않아요.

창문 밖을 바라보니 어스름하게 새벽이 다가오고 있어요. 이미 깨어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정에 따라 벌써부터 집밖으로 나가고 있죠. 어느 누구도 일어난 다음에서야 할 일을 떠올리지는 않아요. 어제부터 생각하고 예정된 일을 해나가죠. 그래서 도시의 생활에는 낭비가 없답니다. 참으로 효율적이죠.

햇빛이 회색빛 건물을 조금씩 더듬으며 올라와요. 마음이 차분해지는 신비로움과 한편으로는 불쾌한 메스꺼움이 머릿속에서 공존했습니다. 기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았어요. 아름답다는 결코 단어를 떠올릴 수가 없었죠.

무엇이 싫은 것일까요. 차가운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해님이 싫은 것일까요, 나무처럼 양분을 만들 필요도 없으면서도 햇빛을 순순히 받아드리는 빌딩숲의 거북한 심정일까요.

도시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어요. 오늘은 하늘이 무척 맑네요. 오후의 도시는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울 겁니다. 이런 날에는 특별한 일이 있어도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요. 하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려면 이것과도 같은 당연한 불편쯤은 감당할 줄 알아야 하지요.

아침의 푸르스름한 빛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요. 혼란스럽네요. 내 얼굴로 쏟아지는 햇빛은 나에게 거침없이 관계하는데도 전혀 거부감이 없어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달라요. 고독처럼 말없이 다가와서 상처를 보듬어주어요. 관심받기를 싫어하는 나를 위한 그것의 상냥함에 왈칵 눈물을 쏟을 것만 같습니다.

나는 괜찮아.

그렇게 속삭여줘요. 햇볕이 주는 따스함을 느끼며 나는 괜찮다고 흐느껴요.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소리죽여 흐느껴요.


#5 체온을 그리며―

해가 지려고 하네요.

빌딩숲들의 거대한 그림자들이 이쪽으로 밀려와요. 시간이 재깍재깍 흐를수록 각도가 조금씩 틀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울해져요. 해님과 겨우 친해졌는데 슬금슬금 밤이 다가와서는 낮의 흔적들을 지워버리는군요. 조금은 화가 나려고해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이렇게 푸념을 늘어뜨리며 창문 밖을 지켜보는 일 뿐이랍니다.

해님이 완전히 사라지면 밤의 여왕이 세상을 지배해요. 그녀는 주로 일을 권장하는 해님과 달리 강압적이에요. 사람들에게 쉴 것을 강요하거든요. 아무리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밤에는 꼭 잠을 자야해요. 그건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나는 밤에도 잠을 자지 않아요. 별을 봐야하거든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나는 슬퍼집니다.

요즘 밤에는 별이 보이지 않거든요. 드디어 도시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것일까요. 늦은 밤까지 기다려도 별은 나타나지 않고 제 색깔이 무엇인지 망각한 붉은 빛 하늘이 남색과 뒤섞여 우중충한 색을 퍼트리고 다녀요. 여왕님의 새로운 패션이라도 되는 걸까요.

…….

들렸나요? 내게는 들렸어요. 침묵이 귓가에 속삭이는 말에 집중하다보니 듣게 되었어요. 저번에 다친 이후로 퉁퉁 부어버린 발목을 이끌고 창문으로 다가가서 집 앞으로 난 골목길을 내려다봤죠. 골목길을 밝히는 주홍빛 가로등 아래로 서로의 손을 꼭 붙잡은 남녀 한 쌍이 지나가요. 무슨 대화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얼굴에서 가로등보다도 밝은 빛이 나오고 있네요.

가로등 밑에서 두 사람이 멈춰 서서 서로를 마주봐요. 연극의 주요한 대사를 읊조리는 배우들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네요.

남자는 오로지 단 한 사람의 관객을 위해 준비한 방백을 멋들어지게 늘어놓나봅니다. 비록 내게는 들리지 않지만 그의 바로 앞에 있는 여자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었죠. 그는 진한 초콜릿보다도 달콤한 말로 여자의 마음을 녹이고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어요. 방금 가슴까지 올라온 이 감정. 분명 나는 그들을 부러워했습니다. 저 두 사람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새삼스럽게 질투가 나네요.

가로등 밑에서 작별을 고하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 분명 혼자였을 텐데 나는 그들의 그림자에서 이어진 흔적을 발견했어요. 몸이 떨어져서 체온을 나눌 수 없는 대신 그들은 일종의 유대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몸을 눕히면 아마도 머리가 아닌 가슴에 남은 서로의 채취를 그리워하다 잠이 들겠죠.

그래요, 혼자라는 건 그런 것이죠.

고독은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멋진 삶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을 수 없다는 맹독이에요. 이것에 치료약은 없답니다. 다만 고독 때문에 생긴 외로움을 꼭꼭 씹어 삼켜야만 이겨낼 수가 있어요. 그것이 눈물로 나오지 않으면 가슴에 자꾸만 쌓여서 멍울이 되어버리거든요.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불안하고 긴장되는 순간의 연속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언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언제 상처 받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전부를 상대에게 내보이지 않는 것이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겉은 굳세고 강하지만 속은 여리고 약해요. 특히 관계에 대해서라면 한 치의 자비도 용납하지 않는답니다. 사람을 결코 깊게 사귀려고 하지 않죠. 만약 사귄다고 할지라도 조금이라도 자신이 상처를 받을 거 같다면 언제든지 그 사람과 이어진 인연의 끈을 자르려고 항상 날카로운 쇠붙이를 들고 다녀요. 그걸로 상처를 받기 전에 먼저 상처를 주는 거죠.

그래도 되냐고요? 물론이죠. 말하지 않았던가요? 도시는 그런 곳이라고. 인연이라는 건 애초에 관심을 받기 위한 것이잖아요. 내가 남에게 주는 관심은 때론 칼날이 달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답니다. 그러니 조심해야하는 거죠.

아, 또 누군가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요. 이번에는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어서 지켜봐요. 아까 봤던 연인들이 뜨거운 불과 같았다면 이번에 지나가는 연인들은 차가운 얼음 같네요. 싸우기라도 한 것일까요. 두 사람은 조금 떨어져서 걸어요. 그 사이에는 말로 채울 수 없는 침묵의 벽이 따라서 움직이고 있고요. 가로등 밑을 지나서 계속 나아가다가 남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요. 머뭇거리면서도 그는 그녀 쪽으로 손을 내미네요. 신사답게 먼저 화해를 청하는 것이었죠. 여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딴청을 피우면서 그의 손을 꼭 붙잡아요. 다시는 떨어지기 싫다는 것처럼.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빙긋 웃어요.

저 멀리 사라지는 연인을 보며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습니다. 창문을 열었더니 찬바람이 들어오는군요. 창문을 닫고 속으로 웃어봅니다. 사실 바람은 불지 않았어요. 철저하게 혼자라는 생각을 한 내 자신에게 소스라칠 정도로 놀랐을 뿐이죠.

하아― 따뜻한 체온이 그립다는 생각을 해요. 도시에 혼자 너무 오랫동안 있었던 것일까요.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망상이었을까요.

편리함이 좋았습니다.

누군가와도 일부러 얽히지 않아도 홀로 살아갈 수 있는 도시의 작은 기능들이 나를 사람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잘못 알았던 것일까요. 관계하지 않는 이상 나는 시계를 구성하는 작은 태엽장치가 될 수가 없었어요. 오히려 도시에서 사라져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외지인과도 다를 바가 없었죠. 나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도시에서 소외당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적막이 좋았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비로소 홀로 있을 수 있는 적막이 좋아서 도시의 옥탑방에서 별을 벗 삼아 지냈습니다. 그래서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요. 그 순간에도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습니다. 별은 내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혼자 말하고, 바람에 되돌아온 질문에 홀로 답했을 뿐이었습니다.

관심이 싫었습니다.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싫어요. 상처를 받는 것도, 상처를 주는 것도 싫었어요. 평소에 무관심한 태도로 날 지켜보는 게 좋았어요. 내게 무슨 일이 있고나서야 집중되는 따가운 시선은 정말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싫었어요. 그런데 이제 알았어요. 처음부터, 차라리 처음부터 내게 관심을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정말로 그랬다면 나는 무관심을 싫어할 수 있었을 텐데.

꿈이 싫었습니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던 그 공간이 싫었어요. 발목이 부러진 통증보다도 마음에 새겨진 상처의 틈이 다시 벌어지는 아픔이 더욱 컸으니까요. 어느 누구도 나를 지켜봐주지 않았어요. 꿈속의 나는 혼자였죠. 그래서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홀로 쓸쓸하게 죽기 싫어서. 고독이 찾아와서 나를 위로해줬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나를 위로해준 것은 해님이었죠. 그 따스한 온기가 발목을 다친 그날 생긴 상처의 틈을 어루만져줬어요. 나는 그것을 외면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다는 자신을 애써 무시하기위해.

네, 정말로 도시에 너무 오랫동안 홀로 있었나 봅니다. 이제는 그것에 지치려고 해요. 그래요, 나는 도시에서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도 더 싫어요.


― 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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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의 뿔」

포근해서 마음이 절로 안정된다. 그게 이 공간에서 처음으로 느낀 것이다.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눈을 뜨고 있는데도 너무 어두워서 주변의 사물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심신이 안마를 받고 있는 것처럼 편안한 탓에 다른 무언가에 굳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지루하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몇 번이나 같은 내용을 반복하다보면 결국은 지루할 뿐이다. 아무리 천상의 미(美)를 지닌 음식이라 할지라도 매일 먹다보면 결국 식상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때 그것은 제멋대로 등장한다. 사실 침착하게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닐지도. 하지만 보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건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다. 설령 이것이 현실과 구별하지 못할 정도의 리얼리즘을 담은 꿈이라는 걸 인식할지라도 말이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는 푸르스름한 빛을 눈으로 확인한다.

깨닫는다. 나는 눈을 뜨고 있구나. 그리고 이 주변은 완전한 어둠으로 둘러싸여있구나― 라고.

소년은 멋대로 저것을 칼이라고 단정한다. 살짝 무릎을 굽혀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빛의 궤도를 피해내면 다른 빛줄기가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날아온다. 그것까지 피해낼 수 있는 재주는 없다.

사방은 새까만 어둠. 자신의 발치조차 분간하기 힘든 시야 속에서 존재조차 느낄 수 없는 누군가의 공격을 피해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소년은 어째서 칼날처럼 느껴지는 푸르스름한 빛줄기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지조차도 알지 못한다.

소년은 차갑게 자신의 사고를 비웃는다. 이유를 안다면 이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일까? 그럴 리가. 포근하고 안락했던 공간은 이내 차갑고 무자비한 북풍을 품은 냉동 창고로 변해버렸다. 체온이 떨어지면서 점점 몸은 둔해지고 결국 날아오는 칼날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살갗이 베이듯 찢겨지고 그곳에서 붉은 생명수가 줄줄 흘러나오면 그제야 소년은 알아차린다. 아니, 사실은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내용.

몇 번이나 반복되는 광경.

몇 번이나 반복되는 사고.

몇 번이나 반복되는 통증.

칼날에 베인 곳은 처음에는 따갑다가 조금 후에는 간지러워진다. 마치 모기에 물린 것처럼 간지러운 상처를 만지고 있으면 어느 사이엔가 사라진다. 흘러내렸던 피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피는 보이지 않았어야 한다. 여기는 빛이 없는 완전한 어둠이니까. 그런데 어째서 피는 보였던 것일까.

갑자기.

소년은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프다. 눈물이 쏙 나올 만큼 아프다. 상처가 아니다. 상처가 없는 가슴이 아프다. 가슴, 그것도 아주 깊숙한 곳. 스스로가 달랠 수도, 어루만질 수 없는 아주 깊은 심연의 수면에 생겨난 파문이 아프다.

아―

목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통증도 사라졌다.

가슴에 있었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지자 간신히 여유가 생겼다. 시야가 확 밝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눈은 거부감 없이 빛을 받아드린다.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밝은 곳으로 나가면 잘 보이지 않는 게 정상이 아니던가. 최소한 찡그리는 표정이라도 지어야 할 텐데.

괜한 걱정을 하고나서 주변을 둘러본다. 사막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 살면서 소년은 사막을 자신의 눈으로 본적은 없지만 끝없는 붉은빛 모래로 펼쳐진 이곳을 백사장이라고 말하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넓었다.

분명 여기는 사막이다.

하늘을 둘러본다.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좋은 날씨? 하하. 소년은 끝이 갈라진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린다. 애당초 좋은 날씨라는 게 뭘까. 맑으면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사막에서는 오히려 흐린 날씨가 좋을 지도 모른다. 이 넓은 사막을 땡볕 밑에서 횡단해야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소년은 지금처럼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흐린 날씨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세상이 포근하고 안락하면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지의 영역이었다면 지금 있는 곳은 건조하고 우중충한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도 무엇보다도 주변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는 만족감을 주고 있다.

보이지 않아서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여기는 푸르스름한 빛도 없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지금까지 꿨던 꿈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단 방향성 없이 무작정 걷기 시작했었다. 사막에서 그렇게 움직이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는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고서야 알았다. 왼쪽과 오른쪽 다리에 평소 가중되는 힘이 완전히 같지 않는 이상 결국 커다란 원을 그리며 제자리를 맴돌게 된다는 게 사막의 무서움이다.

나침판이 필요하다.

소년에게 방향을 지시할만한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그런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흐린 하늘 탓에 뱃사람들이 자주 바라봤다는 북극성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소년의 손에 나침판이 쥐어진 것도 아니다. 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어디로 가라고 방향을 지시해주는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혼자의 힘으로 이 메마른 세상을 걸어가야만 한다. 소년은 조금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대체 나보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걸까. 애초에 내가 혼자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능력이나 있는 것일까.

어디가 끝인지 모르고 무작정 걷기 시작한 지 얼마나 흘렀을까.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건조한 공기 탓에 메말라가는 입술은 달콤하고 시원한 물을 요구한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하늘에게 비라도 내려달라고 소리쳐보지만 대답은 없다. 꿈 주제에 이런 경우는 꽤 현실적이다.

주저앉는다. 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같은 행위를 반복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손에 모래를 쥐어본다. 쥘 수 있는 만큼 한 손에 가득 담아낸 모래를 퍼 올리자 금세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고 만다. 얼마나 빠져나가나 가만히 있어본다. 그러자 손바닥에 남은 모래는 처음 잡았던 것에 비하자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었다. 무슨 짓을 해도 그 이상을 담을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한 번 도전해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끝이 없다. 그러다가 앞에 쌓인 작은 모래언덕을 발견하게 된다. 어떻게든 많이 가지고 싶어서 도전했지만 결국 손바닥에 남아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모래들이 하나의 언덕을 이뤘다. 이건 실패의 부산물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손으로는 이것밖에 못 가지는데 더 많은 것을 바라는 마음 때문에 쌓인 욕심의 산이다.

소년은 자신의 과오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는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손으로 쓰러트린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손에 쥔 모래를 바라본다. 손 안에 있는 붉은 빛 모래를 보니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찾아왔다. 이것을 쥐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것일까. 겨우 모래 한 주먹 때문에?

소년은 일어섰다. 제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는 원하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려다가 소년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얻을 수 있는 것? 무엇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걸까? 발에 치일만큼 잔뜩 굴러다니는 이 모래 같은 것들?

허무해졌다. 이번에도 왈칵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울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것에 흘리기에는 눈물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눈물이 너무 아까웠다…….

스스로 다리에 힘을 풀어버린다. 털썩 주저앉아버린 소년은 멍한 눈으로 땅바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모래 아래에 뭔가 딱딱한 것이 느껴졌다. 모래만 있는 세상에 딱딱한 감촉이라니.

소년은 두 손으로 바닥을 팠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칙칙한 회색빛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모래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뾰족하게 돋아난 모서리에 닿았던 모양이다.

싫다. 이곳이 정말 싫어졌다. 여기서 나가고 싶다. 제발 이 무미건조한 공간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 꿈인 걸 알았는데도 왜 여기서 나가지 못하는 걸까. 깨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물어본다는 건 대답을 기대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공간에 대답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년은 갈증이 선사해주는 괴로움 속에서도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한다고 생각했다. 알고 있으면서 애초에 왜 물어봤던 것이었을까. 그렇다. 소년은 답을 알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반복해온 꿈이 아니었던가.

막 깨어난 순간까지는 무척 생생하지만 그날 오후가 되어버리면 보통 특이하고 인상적인 장면만 떠오를 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잊어버리는 게 꿈이란 녀석이다. 그러나 이처럼 몇 번인지조차 세기 귀찮을 정도로 반복된 꿈이라면 싫어도 기억하게 된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전혀 모르던 친구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첫 번째는 어둠.

두 번째는 사막.

세 번째는 뭐였더라.

다음 갔었던 장면을 떠올리기 위해서 소년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뇌리 속에 단어들을 나열한다.

꿈, 어둠, 칼날, 사막, 무풍지대, 건조, 해, 구름, 비, 가뭄, 목마름, 갈증, 빛, 푸른색, 콘크리트, 회색, 통증, 칙칙함, 아픔, 괴로움, 상실감, 허무함, 좌절, 귀찮음…… 아니, 이런 게 아니야. 소년은 머리를 흔들어 방금 전까지 떠돌아다니던 것들을 흩뜨려버린다.

새로운 것.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것.

솨아아아―

소리가 들렸다.

신비로우면서 동시에 그리움을 자극하는 소리에 이끌려 소년은 눈을 뜨고 말았다.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사막이 아니었다. 지금 소년이 서 있는 곳은 사막의 붉은빛 모래가 아닌 황금빛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석양에서 나온 빛을 머금은 주홍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있다.

그래. 바닷가다.

이번에는 알고 있던 장소다. 어린 시절 맞벌이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소년을 키워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곳이었다.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일어난 할아버지가 이름을 부르면 깨어난다. 정성으로 차려진 아침밥을 먹고, 항구로 일을 하러 나가는 할아버지를 뒤따라간다. 집을 나서면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가 보였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 아마도 남은 평생에서도 그런 멋진 광경은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소년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어렸던 그때의 시절을 회상하니 앞으로 볼 일출을 모조리 봐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이렇게 일몰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출렁이는 바다를 따라 수면에 비치는 주홍색 빛줄기가 일렁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확연하게 작아지는 모습을 보니 아쉽다고 생각한다.

해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바다에 삼켜질 때까지 놀아도 전혀 지치지 않았던 동네 아이들. 그 속에 어울리면 정말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영원할 것 같은 즐거움.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도 그 아이들과 바닷가에 있으면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얼마나 좋았으면 항구에서 제법 먼 거리에 있는 백사장까지 데리러 온 할아버지가 내미는 손을 붙잡기가 싫어서 도망 다녔을까.

어린 시절의 했던 철없는 행동이 떠오르자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햇빛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얼굴은 이미 붉었지만 열기는 아까보다 더 뜨거웠다. 그 열기는 눈물샘을 자극하더니 결국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 그래.

소년은 드디어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치는 순간 비로소 터져 나온 값진 눈물이었다.

아, 그래…….

소년은 흐느끼면서도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이 아련한 그리움은 눈물을 받아낼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시절. 지금 떠올리면 한편으로는 부끄럽지만 그처럼 편안했던 시절도 없었다.

그때가 정말 좋았다.

소년은 중얼거리며 바닷가를 향해 나아간다.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발자국이 모래 위로 선명하게 찍힌다. 썰물이 밀려오면 아마 저 발자국도 지워지겠지. 겁은 나지 않는다. 이제 완전히 캄캄해진 새까만 바다로 들어가는 건 전혀 무섭지 않다.

발목을 적시는 바닷물의 차가움에 부스스 몸을 떨게 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소년은 알고 있다. 그래도 멈출 생각은 없었다.

그때가 좋았다는 말은 지금이 싫다는 의미가 되니까.

소년은 곧 바다가 되었다.


아내는 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오지 못했다고 말해야할까. 그런 말할 자격, 적어도 내게는 없다. 사실 나도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게는 책임이 있다. 대한민국의 가정을 꾸린 남자, 한 여자의 남편이자, 자식들의 미래를 지원해주는 든든한 아버지로서 당연히 가져야할 책임이 있다. 설령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충격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이겨내야 하는 게 바로 가장이라고 불리는 아버지들이다.

사흘 전, 아들이 죽었다. 사인은 교수골절에 의한 질식사. 아들은 스스로에게 교수형을 선고하고 세상을 떠났다. 못난 녀석.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만큼의 불효는 없다고 가르쳤는데. 생전에 웃는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었던 아들의 뒷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메어지는 통증이 느껴졌다. 타이어가 펑크 난 자동차처럼 덜컹거리는 심장이 울어보자고 재촉한다. 이를 악문다. 지금까지 울었으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생전에 서울에서 사법고시를 공부하던 아들이 사용하던 방을 정리하러 왔다가 일기장 하나를 발견했다. 일기라고 생각하기에는 이질적이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낯선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하지만 이건 분명 아들이 쓴 것이었다. 글씨체 같은 걸로 알아본 게 아니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들의 글씨체를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일기에서 나온 소년처럼 아들 역시 어린 시절을 바닷가에서 지냈다는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계시던 해남. 아들은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냈었다.

한 번 읽고,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었다. 그래도 알 수 없는 건 알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도저히 아들의 심리를 알아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도대체 왜 죽어버린 거냐. 둘도 없는 불효자식아.

다시 한 번 올라오는 서러움을 삼키고 근처의 슈퍼마켓에서 가져온 과자박스에 아들이 공부했던 책들과 사용한 물건들을 담았다.

헌법, 판례, 부속법령집, 민법 강의, 민법학, 경제법, 노동법, 국제법……. 법에 관련된 서적들이 차례대로 박스에 들어간다. 부지불식간에 주인을 잃은 책들은 수용소로 이동하는 차량에 탑승하는 유태인들처럼 처량한 표정을 짓는다.

제길. 시원한 욕설을 한바탕 내뱉은 다음 나는 책을 넣다말고 의자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여긴 온통 아들의 흔적뿐이다.

백사장에 쌓은 모래성을 휩쓰는 파도처럼 후회가 밀려온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사법고시만 통과하면 네 인생은 막 개통된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뚫릴 텐데. 고민할 필요도, 괴로워할 필요도, 이렇게 홀로 외딴 장소까지 와서 공부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왜 참지 못하고 반드시 즐거울 수 있는 미래를 버리는 선택을 해버린 것이냐.

내가 살던 시절에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학에서 새로운 세계를 논하며 짐승처럼 자유를 울부짖던 학생들은 군부독재가 내밀던 논리에 휘말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갔었다. 그뿐이던가. 배우지는 않았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가슴으로 알았던 시민들은 하나같이 거리로 나가 총칼을 든 군인들의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다가 누군가의 명령에 발사된 총알에 맞았다.

학생이 국가전복을 꾀하는 반역자가 되고, 명령 하나에 시민들의 옷에 총탄이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떨어져나간 천 조각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붉은 것들이 선명하게 찍혀있던 시절이었다.

단칸방에 쭈그려 숨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개처럼 울부짖는 세상 바꿔보겠다고 끌려단 학우들과 죽어간 시민들의 장송곡을 응원가 삼아 공부했었다. 오직 공부하여 득세하는 것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던 세상. 그건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요즘은 대학을 나온 것만으로 취직이 되지 않는다. 좋은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졸업증명서가 있어도 회사들은 쉽게 취업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토익, 토플, SSAT 점수는 물론 해외연수나 홀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는 기록은 이력서에 당연히 첨부되어 있어야한다. 그뿐인가? 단군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자격증을 따야만 비로소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시대다. 더 많은 것을 요구했으면 요구했지 결코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고등교육을 배운답시고 다니는 대학교에서 중요한 것은 배우는 게 아닌 학점관리와 자격증의 탑을 쌓아올리는 일이다. 그제야 취업의 문턱에 들어설 자격이 생긴다.

공부에 대해서라면 더욱 엄격해진 세상이었다. 군부독재와 총칼이 생존의 등을 떠미는 시대는 역사 저편으로 숨어버렸고 새로 등장한 무한 자유경쟁이 한 가지에 전문화된 인력이 아닌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였다.

나는 안타까움에 목이 타들어갔다. 그래도 네 녀석은 한 우물만 팠어도 성공했을 텐데. 나 때와는 달리 부모들의 전폭적인 지지도 있는데. 무엇이 모자라기에 저 세상에 가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려고 꺼낸 지포라이터를 보고는 눈을 질근 감았다. 제길. 짧게 욕설을 뱉어내고서 신경질적으로 그것을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아들이 처음으로 한 아르바이트는 호프집에서 서빙을 하는 거였다. 그렇게 번 돈으로 사준 첫 선물. 아들이 잠든 후에야 포장을 뜯고 히죽히죽 웃으며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자. 여기에 더 머물렀다가는 정신이 남아나지 않을 거 같다.

은행에 돈다발 대신 산탄이 잔뜩 들어있는 엽총을 들고 찾아간 강도처럼 후다닥 서둘러 짐들을 박스에 쓸어 담고 방을 빠져나왔다.

…….

나는 상자를 들고 문턱에서 걸음을 멈췄다. 지옥의 입구에 들어선 기분이 이런 것일까. 지금 나가면 평생 후회한다는 생각이 다리의 근육을 압박하고 있었다. 11미터 높이에서 처음으로 다이빙을 해보는 사람처럼 크게 호흡을 들이마시고 단번에 뒤를 돌아봤다.

아―

나는 크게 입을 벌렸다.

아들이 책상의 끄트머리에 앉아있었다. 삼나무 책꽂이와 벽이 비쳐 보이는 아들의 희뿌연 모습을 본 순간 나는 극심한 충격을 받고 언어를 한동안 잃어버린 사람처럼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거친 호흡을 내뿜고 있는 게 갈증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아들의 이름을 불러보려다가 급하게 이를 악물었다. 크윽. 혀를 살짝 깨물었다.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사이에 아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아들이 앉아있던 책상 끄트머리에는 아까 내려놓았던 지포라이터가 반짝이고 있었다.

놓고 갈 뻔 했구나.

2년 전에 아들의 짐을 여기에 내려주고 사라졌을 때처럼. 이번에도 아들만 이곳에 남겨두고 갈 뻔 했다. 상자를 대충 복도에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지포라이터를 챙겨 주머니에 확실히 넣었다. 그리고 아들이 앉아있었던 책상에 손을 얹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따뜻하다……라는 느낌이 있다.

아들이 마지막까지 있었던 공간. 최근 들어 점점 이것저것 잊어버리는 속도가 체감이 될 정도이지만 이것만큼은 잊고 싶지 않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 이 공간을 차분하게 머릿속으로 집어넣었다.

주인을 잃은 1인용 침대 하나. 마찬가지로 책상과 의자, 그리고 책꽂이에서는 어떤 종류의 감정이입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길게 호흡을 내뱉으며 나는 어떤 장소를 생각했다.

창문도 달려있지 않아 하늘이 보이지 않는 이 방이 공기는 건조하고 공간은 삭막해서 마치 사막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떠오른 건 아무래도 우연은 아니지 않았을까.


‘아버지, 이것 말고는 안 되는 건가요.’

아들의 짐을 트렁크에서 내려주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내게 물어봐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네 어미에게 물어보지 그랬냐. 그런 말도 해주지 못했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맑은 눈동자를 지닌 아들의 시선을 피해 나는 도망치듯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오늘은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두 눈에서 나오는 밝은 빛이 어두컴컴한 색을 지닌 천을 걷어낸다.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다가오는 도로들을 뒤로 보내며 생각한다. ‘오늘은 정말 조용한 날이구나.’ 라고.

자동차의 엔진이 부르르 몸을 떠는 소리. 타이어와 도로가 살을 맞대며 내는 마찰음.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의 휘파람. 사정없이 전면 유리를 두들기는 빗줄기의 우울한 가락. 일정한 간격으로 리듬을 깨트리는 와이퍼의 잡음.

운전자와 일심동체가 된 이런 소리들은 내 사고를 전혀 방해하지 못한다. 새벽 2시. 이따금 방해되는 건 반대편 차선을 지나가는 트럭 같은 자동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강물은 이쪽의 흐름에 전혀 관여할 수는 없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얻어지는 권리. 고맙다고 생각한다.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비로소 고독해질 수가 있다.

아들은 옆자리에 있다. 녀석의 손때가 묻어있는 책들은 결국 트렁크에 넣지 못했다. 조수석에 놓인 박스를 흘긋 쳐다보며 생각한다. 저 자리에 아들이 앉은 게 얼마만인지.

미련이란 녀석은 예고도 없이 곧장 잘도 찾아온다.

가슴 깊숙한 곳으로 통하는 방에 뒷문을 만들어놓고서 열쇠 구멍으로 이쪽의 사정을 엿듣다가 불쑥 튀어나온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뻔뻔한 낯짝을 들이 내밀며 친절한 태도로 말한다.

‘위로해드릴까요?’ 라고.

그 뻔뻔한 태도가 싫어서 저리 꺼져. 라고 말하면 썩 괜찮은 표정을 짓는다. 고놈 참,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면 천직이란 소리 듣겠다.

시답잖은 자기성찰이 한 차례 지나가고 나면 여태껏 수면을 두들기던 후회의 손가락들이 멈춘다. 이미 지나간 일들. 어찌하겠는가. 아무리 두들겨도 아들과 관련된 추억만 더럽혀질 뿐이다.

살짝 수면을 손가락으로 찔러 넣는다.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감촉이 손가락 끝을 통해서 뇌로 전해진다. 지금이 아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추억의 온도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휴가를 떠난 것처럼 따뜻해진다. 욕조에 몸을 담근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지만 그리 오래 머물 수는 없다. 과거의 기억은 또렷하지 않아서 한정되어 있다. 결국은 다시 차디찬 북방으로 올라오기 마련이다. 차가울수록 기억은 선명하고 고통스러우며 잔인해진다. 아들과 관련된 최근의 몇몇 기억은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다. 수면에 직접 머리를 담구고 뒤져봐도 따뜻한 기억들이란 없다.

그제야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뿐이 아니다. 인정하는 것은 물론 자책까지 한다. 나는 왜 아들에게 그런 차가운 기억만 안겨주고 세상을 떠나가게 만들었을까. 내 안에 있는 무엇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을까.

잘못된 것은 없다. 고시 공부를 하는 아이가 어디 우리 집 아이뿐이겠는가. 이 세상에 그런 아이는 수를 헤아릴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짓을 반복할 아이들도 많다. 다를 건 전혀 없다. 태어나면 부모의 기대를 받으며 자라나고, 학교를 가기도 전에 예습하고, 학교를 가서는 복습하고, 학교에 나와서는 학원으로 가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잘못된 것은 없다. 남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 모두가 옳다고 믿고, 모두가 무난하다고 생각하고, 모두가 당연하다고 따르는 수순이다. 아이들의 미래는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가 툭 내뱉은 말에 의해 정해진다. 내 아들의 짧은 인생을 정의하자면 이렇게 된다.

잘못된 것은 없다. 어디선가 이건 오류라고 울부짖는 회로 속에 경고하는 어조로 강하게 말해놓는다. 대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면 과연 진정으로 옳은 것은 무엇이고, 그것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가를 따져본다. 확률은 가히 절망적이다. 희망을 바란다면 조금 더 가망성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게 좋잖아?

「아버지, 정말로 그것 말고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요.」

머릿속에서 아들의 목소리로 짐작되는 음성이 울렸다. 아까 환각을 보더니 이제는 환청이 들리는구나. 아무래도 휴게소를 만나면 그곳에서 한숨 자고 출발해야겠다.

「아버지.」

녀석의 목소리는 다시 한 번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저리 꺼져!’ 라고 외칠 뻔 했다. 그걸 깨달았을 때 나는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로 강하게 악물고 있었다. 살아있었다면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어버린 지금, 아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비록 아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아버지, 전 여기 있어요.」

아들이 그렇게 말했다. 사실 어딘지는 알고 있었다. 이 좁은 차에서 달리 떠올릴 수 있는 장소도 없다. 나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고개를 살짝 돌려 조수석에 앉아있을 아들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아들은 고등학교 시절에 입었던 교복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2시간 전에 봤었던 것처럼 뒤의 풍경이 비치는 희뿌연 아들의 몸을 보니 왈칵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이 자식, 정말로 죽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감성을 자극했다. 아들의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그건 묘한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밥은 먹고 다니냐?”

나는 오밤중에 미련처럼 불쑥 나타난 아들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아들은 빙긋 웃었다. 여태 보지 못한 환한 미소였다. 지금 아들이 느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등학교 때 입었던 교복차림. 사실 저것을 유심히 본 적은 없었다. 나도 집에는 꽤 늦게 들어오는 편이었고, 때로는 업무의 과중으로 다음날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했던 경우가 허다했었다. 그래도 어쩌다가 집에 들어가는 날이면 아들의 방은 늘 불이 꺼져있었다. 아들은 나보다도 늦게 들어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야간학습이 끝나면 곧장 학원으로 갔었다. 마치 학교 수업의 연장인 것처럼 교복을 입고 학원에서 강의를 듣는다. 그리고 12시가 넘어서야 학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기억하는 아들의 모습이다. 대학교를 가고 나서는 거의 본적이 없다. 그래. 내 기억 속에 남은 아들은 저런 모습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건 영락없는 거짓이구나. 저건 내가 바라는 아들의 모습을 가시화시킨 것일 뿐이다. 이해해버리니 우습게도 마음은 아주 편해졌다.

내가 던진 첫 질문에 아들은 소탈한 웃음을 터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 세상도 그리 몰인정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 이후로 어색한 침묵이 우리 사이의 대화를 가로막았다.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물리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대화의 첫 단어를 선택하는 데 있어 정신적으로 꽤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했지만 결국 도달하는 결론은 하나였다.

담담하다는 얼굴로 조수석에 앉아 끝이 보이지 않는 전방의 도로를 주시하는 아들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왜 그런 몹쓸 선택을 했냐.”

그러자 아들은 나타났을 때 했던 말을 반복했다.

「정말로 그것 말고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요.」

아들이 말하는 「그것」이 뭘까. 섣부른 대답으로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의 앞에서라면 언제나 현명한 조언자가 되고 싶어 한다.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그런 모습을 욕망하지만 나는 그게 아버지들만이 가질 수 있는 환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살던 시대와 아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같으나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문화를 받아드리기에 가치관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렇기에 아버지들의 말은 아이들에게는 강압적인 명령으로 들릴 수도 있다. 아무리 완곡한 표현을 쓴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내가 알고 싶어 하는 이유보다는 아들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생각해본다.

“공부 말이냐.”

실망스럽게도, 아들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아들의 희뿌연 눈동자는 옅은 베일에 휩싸여있어 감정의 변화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공부가 아니라면 뭐냐. 진로? 법을 공부하는 네 미래의 모습 말이냐?”

희망을 언급하는 아들의 질문을 떠올리자 연관되는 단어로는 아들의 장래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들은 고개를 가로젓지도, 끄덕이지도 않았다.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을 일관하던 녀석은 허공을 비웃는 것과도 같은 건조한 음성으로 메마른 대기를 두들겼다.

「누구의 미래를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내 미래요? 아니면 어머니의 미래? 부모님의 미래라고 말할까요.」

뻔뻔스럽게도 책임을 전가하려고 한다.

“웃기지 마라. 어느 누구도 네게 강요하지는 않았어. 네 죽음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겠다고? 그건 비겁한 짓이다.”

「네. 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잘못을 인정하는 아들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들어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강요하지는 않았죠. 다른 길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렸고, 다른 길을 걷지 못하도록 다리를 부러트려 책상 앞에 앉히고, 다른 길을 상상하지 못하도록 상상의 산물들을 방에서 치워버렸죠. 어른들은 그걸 권유라고 하던가요.」

제길. 대기를 두들긴 것은 살짝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지, 아들의 목소리가 절대 아니다. 저건 내 아들이 아니다. 그저 내가 상상한 아들의 모습일 뿐이다. 녀석이 왜 죽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만들어낸 일종의 도깨비다.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만들어낸 허깨비의 말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고자 했다면! 나는 네가 무엇을 원하던 전적으로 지원했을 거다.”

말끝이 약간 떨렸지만 방금 내뱉은 말은 진심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었다. 부모의 말에 한 번도 거역한 적 없었던 성실한 녀석이었고 그런 착한 심성을 가진 아이였기에 어떤 꿈을 꿔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아버지는 내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지도 않았잖아요.」

“물어봤다. 너는 분명 검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물어보기도 전에 법대에 집어넣었잖아요.」

숨이 턱 막힐 뻔 했지만 그런 빈약한 이유로 내 논리를 헤집어놓을 수는 없었다.

“너 말고도 법대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애는 많다. 그 아이들이 법대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게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야. 너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했다. 나약해서……. 그래서―”

죽어버린 것이냐. 나는 끝내 그 말을 내뱉지 못했다. 입안에서 맴도는 말을 씹어 삼킨 다음 헛기침을 했다. 목구멍에 걸린 모양이다. 아들은 그런 나를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보았다.

“너는 도망쳤을 뿐이다. 눈앞에 놓인 현실에서 도망쳤어. 네 스스로 다른 길을 찾아 걸을 수 있었으면서도 도망쳤을 뿐이야. 자신의 선택을 미화하지 말거라.”

놀랍게도 아들은 순순히 인정했다.

「아버지 말씀은 틀리지 않았어요. 네, 저는 현실에서 도망쳤어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그것……. 드디어 중심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가슴에 도달하자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밀려왔다. 내가 침묵하고 있자 아들은 멈추지 않고 이어 말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태어났어요. 누군가가 앞서 닦아놓은 길을 다시 걸어갈 뿐이죠. 그 길의 끝에 뭐가 있을 지도 알아요. 잘못된 것은 없어요. 그게 옳은 세상이잖아요. 그렇게 만든 세상이잖아요. 그렇죠?」

옳다고?

녀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세상이 옳다고 인정하는 아들의 태도에 참을 수 없는 화가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두 손으로 거칠게 운전대를 때렸다. 차가 살짝 흔들렸지만 화는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모른다. 밀려오는 시대의 파도를 노려본다고 무너지거나 물러서는 일은 없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어서 포기했잖아. 어떻게, 어떻게 널 죽게 만든 것들이 옳다고 말할 수 있지?”

잘못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것들을 요구하는 세상을 만들어버린 어른들의 잘못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해도 그건 명명백백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 아들은 그게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는 시대에 치여서 죽은 게 아니니까요. 아버지들이 만든 세상을 부정해버리면 아버지는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래요.」

아들은 싱긋 웃으며 핸들을 붙잡은 오른손 위로 자신의 왼손을 겹쳤다. 녀석의 손바닥은 꽤 차갑다. 가까이 다가온 아들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다가 눈동자에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녀석을 빼앗아간 세상에 대해 분노하는 나에게 보내는 시선에는 차가운 손과 달리 온전한 따스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세상은 처음부터 혼자였죠. 그네들은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 세상을 탓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제가 정말로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외로움이었어요.」

뭐라고?

「친구들은 자기 살길을 찾아가기 바빠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정말 많은 애들을 만난 거 같은데 끝까지 곁에 있어주는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죠.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정말 외롭다는 걸 느껴요.」

아니, 그건―

「가족도 마찬가지죠.」

무엇인가 말하려다가 거침없이 몰아치는 아들의 말에 숨이 멎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가로등이 자주 꺼져 있어서 어두웠어요. 문은 항상 열쇠로 열었죠. 아무도 기다리지 않으니까요. 캄캄한 거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정리하면서 생각해요. 내일도 똑같겠지. 아무도 기다리지 않겠지. 다녀왔니, 고생했어, 푹 쉬렴. ……그 한 마디면 만족했을 텐데.」

아들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 녀석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어른들은 다 마찬가지더군요. 아무도 제 생각에는 관심이 없어요. 다들 미래에만 관심을 갖죠. 사람은 한치 앞도 제대로 못 보는 생물인데. 벌써 몇 년 후의 일을 내다보며 생활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괜찮아요. 그런 건. 당연한 거니까요. 그냥 어깨에 손을 올려줬으면 좋겠어요. 아닌 거 같아도 그럴지도 모른다며 다독여줬으면 좋겠어요. 그저 그런 걸 원했을 뿐인데…….」

고개를 숙인 아들의 머리카락 사이에는 푸르스름한 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뿔 하나가 돋아나 있었다.


해남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그 사이에 또 울었는지 아내의 목소리는 전보다 더 탁해졌다.

“말해.”

“내가, 내가 죽으라고 했나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그냥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나봐.”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서 다시 흐느끼는 아내를 위로했다. 당신만의 잘못이 아니야. 잘못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그런 짓거리를 강요한 세상을 만든 우리들이니까. 우리 아이를 외롭게 내버려둔 것도 우리들이니까. 당신만의 잘못이 아니야.

후회된다.

왜 좀 더 일찍 아들의 머리에 난 뿔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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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방

빈 방을 지키고 있다.

한 달 전까지 이 방에 머물고 있었던 사람은 한 여자였다.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따라가야 하는 미사어구가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단 한 사람, 연인으로서 사랑하고 싶은 너이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당신이며, 내 마음의 반을 비워두고 그 안에 담아두고 싶은 사람이 바로 너야.’

그런 여자가 이 방에 머물렀다가 떠나갔다. 그녀가 그리워 남아있는 추억을 되짚어보고자 이곳에 들어오면 저절로 코끝이 찡해진다. 방에는 빨간 꽃송이가 피어오른 동백나무를 심은 화분 하나가 창문 근처 바닥에 놓여있다. 동백은 그녀가 좋아하던 꽃이었다. 눈가에 괜한 물이 고인 까닭은 향기 때문이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겨울의 냉대를 이겨내는 동백꽃은 향기가 없으니까.

왜 동백꽃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내가 첫눈에 반해버렸던 그 신비로운 미소를 만면에 띠우며 대답했었다.

‘동백은 온전히 자신의 자태만으로 사람들의 앞에 나서잖아. 난 그 당당함이 좋더라.’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설령 부족하더라도 사람들의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다던 그녀는 결국 한 달 전에 이 방에서 나갔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나와의 관계보다 자신의 꿈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그렇게 떠났다. 그래도 나는 이 방을 지키고 있다. 그녀와의 추억으로 도배된 벽을 마주하고, 그녀가 남긴 꽃을 돌보며, 아직 방바닥에 남아있는 온기를 의식적으로 착각하면서 방문을 열어놓고 기다린다.

그녀가 아니다. 그녀가 이 방에 머물기 훨씬 전부터 살아왔던 원래 주인에게서 이제 돌아가겠으니 기다려달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벌써 한 달이 지나도록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머물 곳을 마련하기 위해, 분명히 싫었으면서도 싫다는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나를 배려하여 스스로 바깥세상으로 여행을 떠난 그는 아직도 자신이 머물 자리를 찾아 이 세상 어딘가를 방황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 돌아올 때가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가 빙긋 웃고 있는 얼굴이 그려진 벽지를 손으로 쓰다듬는다. 아려한 추억이 아픔이 되어 가슴에서 피어오른다. 나는 웃으며 눈물을 흘린다. 내 손으로는 이 방을 새로 꾸미지 못한다. 그녀가 머물렀던 장소이기에 손끝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충분히 추억을 되짚고 나는 방에서 나왔다.


문을 닫고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

방을 막아버린다



진정으로 나와 평생을 함께 할 내 반쪽. 그녀가 잠깐 머물다가 갈 손님인줄도 모르고 언제쯤 돌아오면 된다는 약속조차 하지 않고 매정하게 내쫓아버렸던 내 마음의 절반. 녀석이 긴 방황을 끝내고 다시 원래부터 있어야했었던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이 방은 불침이다.

마르지 않는 시멘트 위로 계지(季指)로 글씨를 새겨놓는다.

「빈 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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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이야기다.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니,

애지중지 자신을 키우던 주인에게 화를 낸다.

그러자 다시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말하니,

좋아서 히죽거린다는 이야기.

간교한 꾀로 남을 속인다는 뜻이란다.


웃기지 마라.

원숭이는 주인보다 현명했다.

아침에 네 개를 먹고 저녁에 세 개를 먹는 것은

아침은 든든하게, 저녁은 소탈하게 먹어 장수와 다이어트를 병행하기 위함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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