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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미스터 타이거 ㅣ 창비청소년문학 148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망한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든 로맨스에서 사랑의 성취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별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처럼 그려질 때가 많다. 그러나 어떤 사랑은 폐허가 아닌, 한 인간의 세계를 새로 짓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별이 폐허 상태가 아닌 재건축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 것이다.
『안녕, 미스터 타이거』는 기녀인 계손향이 미리견(미국)에서 온 노월을 만나며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독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계손향이 하나의 사랑을 하며 그녀의 세계가 얼마나 넓어져 가는지 잘 느낄 수 있다.
계손향은 양인이라는 노월에게 큰 호기심을 가진다. 그녀는 연회에서 맨 먼저 노월의 옆을 차지해 그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온 그녀에게, 자신이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땅에서 온 남자는 얼마나 미지의 존재였을까.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별세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노월도 손향에게 조선어를 배우고 싶다며 다가갔고 둘은 계속해서 말을 나눈다. 그들의 서툰 조선어, 미국어의 나눔에도 확연히 다른 두 언어는 계손향에게 새로운 자극들이 되었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영원한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와의 짧은 시간과 마음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단순히 추억으로만 남지 않고 계손향에게 구체적으로 남긴 것들이 많다. 노월과의 교감 속 배웠던 영어, 사진에 대한 짤막한 지식과 관심을 얻기도 했다. 또한 전세계를 유랑했다는 노월을 통해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고 과감히 떠날 줄 아는 태도를 가지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계손향이 삶의 반경을 넓혀갈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남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계손향의 이름이 지닌 의미가 여러 차례 강조된다. 식당 주인과 그의 손녀딸, 그녀의 가족이 처음 지어준 이름, 목단이 지어준 이름, 노월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 이름, 향원당이 불러준 이름까지, 계손향의 이름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주변 인물들 또한 그 이름의 의미를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름의 변화에 따라 그녀의 삶 역시 달라진다.
먼저, 가장 처음 붙여진 이름인 ‘란’은 부모가 무심하게 지은 이름이다. 그리고 그 이름처럼 그녀의 부모는 란을 함부로 대한다. 결국 란이라는 삶은 부모에 의해 기녀로 팔려 가며 지워진다. 이후 목단이 기녀명으로 지어준 ‘계손향’은 겉으로는 붓꽃을 뜻하는 계손과 향기의 향처럼 보이지만, 목단은 소설 속에서 그 이름을 다르게 설명한다. “골짜기 계에 향풀 손.” 골짜기에 핀 향초라는 뜻으로, 세상은 기생을 길가에 늘어진 버드나무라 말하지만 기녀들의 마음속에는 누구도 쉽게 닿지 못할 깊은 골짜기가 있다는 것이다. 계손향 역시 그 이름을 꽤 마음에 들어 한다. 흥미롭게도 그녀의 삶은 붓꽃의 꽃말과도 닮아간다. 붓꽃은 대체로 ‘좋은 소식’, ‘사랑의 메시지’라는 꽃말을 지니는데, 이는 훗날 사진반원이 되어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고 소식을 전하는 그녀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 보인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소냐’로 바꾸게 된다. 조선어 발음이 서툴던 노월이 손향을 소냐라고 부르며 생겨난 일종의 애칭이 결국 그녀의 진짜 이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이름의 의미를 다시 그녀에게 들려준다. 소피아 대성당 이름의 기원이 된 성녀의 러시아식 애칭,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알고 헤아리는 지혜’라는 뜻 말이다. 노월과 헤어진 뒤 기녀에서 사진사, 또 사진반원으로 살아가며 주체적인 삶을 개척해 나가던 계손향은 해외에 국내 소식을 전하는 일을 제안받는다. 그리고 스스로 ‘소냐’라는 이름을 선택하며 국경 너머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다. 사랑 이후 남겨진 유산을, 그녀는 결국 자신만의 지혜로 체화하게 되는 것이다.
『안녕, 미스터 타이거』는 노월과 계손향이 가까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설렘을 느낄 수 있는 로맨스이기도 하다. 동시에 노월이라는 이방인을 통과하며 란에서 계손향으로, 다시 소냐로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한 여성의 성장을 응원하게 만드는 소설이기도 하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 폐허만 남았다고 낙담하는 이들에게, 이 소설은 그 잔해 위에 얼마든지 더 넓고 단단한 지혜의 건물을 지어 올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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