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1 대산세계문학총서 21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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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도교를 사상적 배경으로 깔고 권선징악적 요소를 가미한 본격적인 신마(神魔)소설이다. 신마소설이란 신화적인 요소를 기본으로 온갖 마귀들을 등장시키면서 그들을 하나하나 퇴치해나가는 형식의 소설, 오늘날 판타지 소설의 원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서유기(西遊記)라는 책은 저자가 명나라 시대의 오승은(1500 ~ 1582)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그의 시대에 와서 집대성한 것이라고 하여야 맞다. 서유기의 내용은 크게 삼장법사의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를 두고 거기에 중국과 인도의 설화와 민담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가미된 것이다.

이 책은 총 100개의 이야기를 한 권당 10편씩 넣어 10권짜리로 만든 대하소설이다. 무려 4000쪽에 달하는 원체 방대한 이야기인지라 어떻게 짧게 요약해서 책을 소개할 방법이 없어 서울대 중문과 성민엽 교수님께서 아주 간략하게 평한 내용을 소개하여 본다.

“<서유기>는 동양적 판타지와 동양적 상상력의 집대성이자 새로운 원천이다. ..3교와 그 이전 고대의 신화와 전설이 모두 이 소설에 녹아들었고, 훗날의 수많은 문학적 상상력이 이 소설로부터 흘러나왔다. 이 소설의 놀라운 환상과 상상은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조소와 맞물려 있고, 인간의 마음과 욕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이 책에는 한 명의 주인공과 세 명의 조연이 나온다. 주인공은 손오공이라는 원숭이인데 그는 하늘나라에서 옥황상제의 신임을 받던 중 지나친 장난질로 인하여 지상세계로 쫓겨 온 인물이다. 1권의 제4필마온의 벼슬이 어찌 그 욕심에 흡족하랴, 이름은 제천대성에 올랐어도 마음은 편치 못하다라는 제목의 이야기에서 손오공은 옥황상제가 자신에게 부여한 필마온이라는 말을 돌보는 직책이 영 성에 차지 않아 하늘나라에서 난장판을 벌이고 그 벌로 지상 세계로 쫓겨 내려온다. 9진광예는 부임 도중에 횡액을 당하고, 그 아들 강류승은 아비의 원수를 갚고 근본을 되찾다라는 제목의 이야기에서는 삼장법사의 탄생설화가 아주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실존 인물인 삼장법사의 이야기는 이렇다. 세상에는 사악한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석가여래는 사람들에게 착한 성품을 되찾아 주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깨달음의 책인 불경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관음보살에게 명하여 천축국으로 불경을 구하러 올 사람을 찾아보라고 명한다. 관음보살이 점찍어 두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승려 진현장이었다. 이 책은 결국 삼장법사라는 진현장이 당태종의 명을 받들어 그를 수행하는 세 명의 종자,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를 데리고 17년 간 27개국을 통과하여 마침내 불경 657부를 구해 온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주유한 나라들을 현대의 지명으로 살펴보자면 둔황 - 키르키르스탄 - 우즈베키스탄 - 투르크메니스탄 - 아프가니스탄 - 인도로 이어진다. 그들이 넘어야 했던 험지들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비롯하여 힌두쿠시 산맥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무려 100회에 걸쳐 이런 저런 요괴들을 만나고 수난을 당하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중 6권의 제54회에 서쪽으로 들어선 삼장 법사는 여인국에 봉착하고, 손오공은 계략을 세워 여난(女難)에서 벗어나다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마치 그리스신화에서 여인국인 아마조네스 이야기를 읽는 것만 같다.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여자들뿐이니 오랜 기간 여행에 지친 일행에게는 얼마나 기쁜 일인가. 기어이 저팔계가 스승에게 청혼하러 온 여인국 여왕을 자신이 차지하겠다고 나서다 퇴짜 맞는 장면이다. 그러자 저팔계는 그럴듯한 속담을 내세워 자신이 적임자임을 주장한다.

당신 아주 벽창호로군. 굵다란 버들가지로는 키를 만들고, 가느다란 버들가지로는 됫박을 만든어 쓰니, 도구의 쓰임새는 저마다 달라도 똑같은 버드나무요, 이 세상에 제아무리 추접하게 생겼어도 사내는 사내가 아닌가.”

이처럼 이 책에는 이런 저런 속담이나 고상성어가 수백 개도 더 나온다. 마치 <돈키호테>에서 산초 빤사의 유식함을 보는 것만 같다.

저팔계도 손오공과 마찬가지로 동물, 인간, 신령의 세 가지 형상이 교묘하게 융합된 인물이다. 비곗살이 찐 장대한 모습, 커다란 두 뒤에 비죽 나온 주둥이, 굼뜨고 우둔한 동작은 돼지를 형상화하였지만, 그 역시도 찬상에서 은하수를 다스리는 수군 제독인 천봉원수였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사오정은 손오공이나 저팔계처럼 그렇게 뚜렷한 형상은 없지만 두 사형 사이에서 적절하게 의견조율을 해주고 충돌을 막아주는 해결사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손오공이다. 제천대성, 미후왕 또는 필마온이라고도 불리고 스스로를 손선생이라고 칭하는 손오공은 고비 고비마다 그 위기를 둔갑술과 온갖 도술을 부리고 여의봉을 자유자재로 휘둘러가며 온갖 마귀들을 물리친다. 손오공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까닭은 천국과 지옥의 모든 우두머리들이 다 자기의 친구들이거나 부하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용궁의 대장들도 손오공에게는 다 머리를 조아린다. 그렇기에 그 수많은 마왕들과 잡귀들이 삼장법사 일행을 잡아먹으려고 하나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다.

이 책에 수없이 많은 마귀와 귀신들이 등장하는 것은 당시의 시대상과도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다. 온갖 종류의 마귀들이 유린과 수탈을 하며 잔혹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은 당시 관에서 백성들을 못살게 굴던 시대상을 반영하였다는 평가이다. 책에서 통천하의 영감대왕이 동남동녀들을 제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 청룡산의 코뿔소 요정들이 지방 관민을 핍박하고 막대한 재물을 수탈하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또한 원시인들은 만물에는 영혼이 있다라는 사상을 가졌는데, 그 결과 천둥과 벼락에서는 뇌신을, 밤과 낮, 여름과 겨울의 교체에서는 촉룡(燭龍)이라는 괴물을, 그리고 모래바람에서는 황풍괴라는 마귀를, 살구나무 선녀는 나무숲의 화신으로, 불이나 물로 인한 재난은 화덕장군과 수덕장군이라는 요괴로 둔갑시켜 일반 백성들의 환상을 충족시켜 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주인공의 성격 설정이 재미있다. 삼장법사는 전체를 이끄는 리더이지만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나약하다. 그래서 손오공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핀잔을 듣는다. 그의 인생철학은 착한 일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고, 악한 일은 한 번만 저질로도 차고 넘친다라는 유교적 관념으로 설명된다. 그런 사부님을 손오공은 흑백을 가리지 못하는 아둔한 사람정도로 평가하며 시시때때로 그를 조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장법사는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온갖 난관에도 물러서지 않는 굳센 의지, 불경을 얻지 못하면 죽더라도 귀국하지 않겠다는 집념, 불교의 계율을 엄격히 지키려고 하는 승려로서의 자세로 손오공을 비롯한 세 명의 부하들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무능하고 우유부단할 것만 같은 삼장법사에게도 말썽꾸러기 손오공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긴고주라는 주문이다. 삼장법사가 그 주문만 외우면 손오공의 머리통 위에 씌어져 있는 금테가 바짝 조여져서 손오공은 그 고통으로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러야만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묘미는 단연 주인공 손오공의 통쾌한 활약상에 있다고 하겠다. 단순에 108천리를 날아가는 근두운, 말 한마디에 귀 쑤시개 정도 크기에서 천하장사라도 들기 힘들 정도의 육중한 철봉으로 바뀌는 여의봉, 꿀벌로도 바뀌고 파리로도 변신할 수 있는 만능변신의 재주, 이런 것들을 무기 삼아 그 머나먼 서역 길의 온갖 마귀들을 물리치는 손오공의 활약상은 천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이 책이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는 근본 요소이다.

번역도 최고다. 무려 4천 쪽이나 되는 대하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군데도 오자를 찾을 수가 없다. 2백만부가 팔렸다는 이문열 삼국지에서도 틀린 곳이 서너 군데 있는데, 이 책은 아주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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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 - 감옥의 탄생, 번역개정 2판 나남신서 1857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 나남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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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훌륭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신체형, 처벌, 규율, 감옥의 4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설명의 대부분을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판옵티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1748 ~ 1832)은 소수의 감독자가 자신은 노출시키지 않은 채 모든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을 제안하면서,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말의 opticon을 합성하여 1791년 처음 이 말을 창안했다. 중앙에 높은 하나의 감시탑과 그 주변 둘레에 여러 방을 둔 건물구조로, 건물 안에서 진행되는 모든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이 감옥의 장점을 묘사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중앙 높은 곳에 위치한 감시탑은 조명을 어둡게 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변 수용자의 방은 밝게 만든다. 그러면 이러한 구조를 통해 감독자는 수용된 다수의 모든 사람을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으며, 수용자는 감독자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독자가 없는 경우에도 똑같은 감시효과를 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죄수들은 자신들이 늘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결국은 스스로가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서 자기 자신을 감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자인 벤담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비용 및 감시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판옵티콘을 이상적인 사회의 축소판으로 인식했다고 보이는데, 그런 면에서는 미셸 푸코도 같은 생각을 갖지 않았나 싶다. 왜냐하면, 그의 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판옵티콘이라는 용어가 계속 등장하며, 책을 읽다 보면 그 단어에 따라 책이 전개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책은 제1신체형에서지난 200여 년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서 신체형(단두대 처형, 사지 절단, 낙인, 채찍질 등)이 소멸되었으며 대신 정신적 형벌이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살핀다.

유럽에서는 1769년 러시아를 시작으로 하여 1810년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신체형이 점차 자취를 감춘 것으로 기록되었다. 과거 범죄자들의 육체를 재판하던 재판관들은 이제는 범죄자들의 정신을 재판하기 시작하였다. , 폭력이나 살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환각인가? 우발적 사건인가? 착란인가? 본능인가? 무의식인가? 환경인가? 유전인가? 그것을 교정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것이다.(pp53 ~ 55)

 

2처벌에서는 수많은 감옥의 교정제도를 미국의 글로스터 감화원, 필라델피아 감옥, 월넛스트리트 감옥 등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1779년 미국의 독립으로 죄수 유배가 어려워지자 형벌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일반원칙으로 정신과 품행의 변화를 목적으로 한 징역이 시민법의 구조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법안의 서두는 일벌백계의 정신, 개심의 수단, 직업훈련의 필요성 등, 3가지 기능으로 개인의 수감을 설명하고 있다. , 고립된 감금과 규칙적인 노동, 종교 교육의 강화를 감수하게 된 범죄자들의 존재는 그들을 모방하려는 자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고치고 노동의 습관을 붙이도록 할 것이다.(pp233 ~ 234)

 

3규율에서는 판옵티콘의 유용성을 여러 번 반복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판옵티콘의 건축양식이 많은 그림과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판옵티콘이라는 개념이 교도소뿐만이 아니라 병원, 수도원, 군대 막사, 학교 등등의 건축물이 오늘날에도 광범위하게 차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33판옵티콘 권력에는 판옵티콘의 장점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밴덤의 판옵티콘 원리는 잘 알려져 있다. 주위는 원형의 건물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에는 탑이 하나 있다. 탑에는 원형건물의 안쪽으로 향해 있는 여러 개의 큰 창문들이 뚫려 있다. 주위의 건물은 개체들로 나뉘어져 있고, 개체 하나하나는 앞면에서부터 뒷면까지 내부의 공간을 모두 차지한다. 독방에는 두 개의 창문이 있는데, 하나는 안쪽을 향하여 탑의 정면에 대응하는 위치에 있고, 다른 하나는 바깥쪽에 면해 있어서 이를 통하여 빛이 독방에 구석구석 스며들어 갈 수 있다. 따라서 중앙의 탑 속에는 감시인을 한 명 배치하고, 모든 독방 안에는 광인이나 병자, 죄수, 노동자, 학생 등 누구든지 한 사람씩 감금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역광선의 효과를 이용하여 주위 건물의 독방 안에 있는 수감자의 윤곽이 정확하게 빛 속에 떠오르는 모습을 탑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pp366 ~ 367)

 

4감옥에서 저자는 구금이 재범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수감자들의 가족을 극빈층으로 몰아넣음으로 해서 간접적으로 범죄자를 길러낸다고 주장하면서, 감옥형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다. 그러면서 여러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의 결론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구금은 개인의 태도 변화를 본질적 기능으로 삼아야 한다.

수감자들은 그들이 범한 행위에 합당한 형벌에 따라 그들의 나이, 기질, 교정기술, 변화 단계에 따라 격리되거나 분류되어야 한다.

수감자들이 개선되건 다시 타락하건, 그들의 수감생활 결과에 따라 형벌의 형기가 조절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은 수감자들의 변화와 점진적 사회화를 낳는 근본적 부분들 가운데 하나여야 한다.

공권력의 입장에서 볼 때, 수감자 교육은 사회의 이익에 꼭 필요한 예방조치이면서 동시에 수감자에 대한 의무이다.

감옥의 체제는 수감자의 인간교육에 유념하고, 정신적, 기술적 역량을 지닌 전문요원이 책임지고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수감자가 감옥에서 풀려난 뒤에도 그를 감시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에게 지원과 도움을 주어야 한다.

 

큰 판형에 550쪽에 달하는 책으로 결코 쉽지 않지만, 끈기를 갖고 읽으면 지식함양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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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생애 에버그린북스 10
로맹 롤랑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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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로맹 롤랑이 <미켈란젤로의 생애> <톨스토이의 생애>에 이어 심혈을 기울여 저술한 천재 음악가 베토벤의 일대기이다. 나는 아주 얇은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분량과는 상관없이 엄청난 감동을 느꼈다. 어떤 대목에서는 눈물이 나기까지 했다.

얼마 전,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발이 공개되어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 적이 있었다. 발가락이 보기 흉하게 변형되도록 끊임없이 연습에 또 연습을 하였기에 세계적인 발레리나라는 찬사를 받을 수가 있었다고 언론마다 극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이 책의 84쪽에는 요셉 단하우저라는 사람이 스케치한 베토벤의 손가락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바로 엑스레이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베토벤이 그런 노력을 한 사람이었기에 세계 제1의 악성(樂聖)이라는 찬사를 받는 것이 아닐까.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177012월 퀼른 인근의 본에서 태어났다. 베토벤은 어린 나이부터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을 꾸려나가야 하는 소년 가장이었다. 열한 살에 극장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었으며 열세 살에는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열일곱 살에 사랑하던 어머니마저 폐병으로 돌아가시고부터는 두 동생의 교육까지도 떠맡았다.

베토벤은 열아홉 살인 1789년에 본 대학의 청강생이 되었으며 20대 중반부터는 청각장애와 위장병으로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신의 음악이 인류에게 주는 선물이 될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이 시절 친구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나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에 이바지 하여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활동하고 있던 빈이라는 도시는 음악가들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는 베토벤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를 잃게 되는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는 음악 애호가들이 있었다. 1809년에는 빈에서 가장 부유한 세 귀족인 루돌프 대공, 로코비츠 공, 그리고 킨스키 공이 베토벤에게 빈을 떠나지 않겠다는 조건 대신 해마다 4천 플로렌의 연금을 지급하겠다고 하였다.

사람이란 물질적 근심이 없어야만 전적으로 예술에 헌신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비로소 예술의 영예를 빛내는 숭고한 작품을 창조할 수 있음은 자명한 이치이므로, 본인들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생활을 보장하여 그의 천재적 자질의 발휘를 막아버릴지도 모를 야속한 장애를 제거하기로 결의한다.”

30대 중반인 1806, 베토벤은 사랑하는 여인 테레제와 거의 결혼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온갖 열정을 다 바쳐 사랑했던 여인은 끝내 베토벤을 버렸다.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아마도 신분의 차이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베토벤에게 재산이 없었다는 게 그 이유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베토벤의 만년에 어떤 친구가 그를 찾아가 본즉, 베토벤은 혼자 테레제의 초상에 키스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40대 중반이 되자 그의 귀는 완전히 막혀 버렸다. 1822년의 <피델리오> 공연 후 쉰들러의 증언은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베토벤은 총 연습 때 자신이 지휘하고 싶어 했다. 1막의 2중창에서부터 그가 도무지 듣지 못한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오케스트라는 그의 지휘봉대로 움직였지만 가수들은 제멋대로 나갔다. 전반적으로 혼란이 일어났다. 평상시의 지휘자 움라우프가 잠시 휴식할 것을 제안하였다. 가수들과 몇 마디 주고받은 후 다시 연주가 시작되었다. 아까보다 더한 혼란이 일어났다. 베토벤이 지휘를 계속할 수 없음은 명백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퇴장하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베토벤은 불안한 마음이 되어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여러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며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하려고 하는 눈치였다. 실내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내가 그의 곁으로 가서 수첩에다가 연주를 계속하지 말게. 이유는 돌아가서 설명하겠네라고 썼다. 그러자 그는 관중석으로 뛰어내리면서...”

 

동생 카를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신의 청각장애에 관한 비통한 마음과 동생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너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따로 살고 있는 나를 용서해 다오. (...)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내 병세를 남들이 알아차리지나 않을까 하는 무서운 불안에 사로잡힌단다. 지난 여섯 달 동안 내가 시골에서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청각을 정양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던 것인데 그것은 내 스스로 원하던 바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번 나는 시림들과 사귀고 싶어 하는 내 성미에 못 이겨서 사교모임에 발을 들여 놓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옆의 사람은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소리를 듣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던가, 또 그 사람은 양치는 목자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는데 내게는 여전히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때에, 그 굴욕감은 어떠하였으랴! 그러한 경험들로 하마터면 나는 스스로 내 목숨을 끊어 버릴 뻔하였다. 그것을 제지하여 준 것은 오직 예술뿐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이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는 이 세상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 내가 죽은 뒤에도 나를 잊지는 말아다오.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해서든지 너희들을 행복하게 해주고자 노력했으니, 나를 잊지는 말아다오.”

- 1802106일 하일리겐수타트에서 르트비히 판 베토벤

 

동생들을 극진히 아꼈던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했던 휴머니스트, 평생을 들리지 않는 귀 때문에 고생했던 음악가, 임종 시에 모르는 사람이 눈을 감겨주었을 만큼 쓸쓸하게 이 세상을 하직한 천재 음악가 베토벤, 그러나 그의 음악은 두고두고 인류의 사랑을 받는다.

그가 천재라는 사실은 5번 교향곡과 엘리제를 위하여를 비교하여 들어보거나, 9번교향곡과 월광소나타를 비교하여 들어보면 누구라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가 있다. 어떻게 그다지도 상반된 음악을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 누구보다도 자연을 사랑하고 숲속에 있기를 즐겨했던 사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전원교향곡을 들으며 그의 다음 글귀를 회상한다.

전원에 있으면 내 불행한 청각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거기서는 한 그루의 나무가 나를 향해서 신성하다신성하다라고 말을 건다. 숲속의 환희와 황홀, 누가 감히 이런 것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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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견문록 홍신사상신서 49
마르코 폴로 지음 / 홍신문화사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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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을 한다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다. 그것도 우리가 흔하게 갈 수 없는 중앙아시아 지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무려 800년 전에 그런 여행을, 그것도 단 몇 달이 아닌 장장 20여 년을 하였다면 어떨까? 여기에게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 줄 사람들이 있다. 바로 아버지 니콜로, 삼촌 마페오와 함께 1271년부터 1275년까지 장장 24 동안이나 중동, 중앙아시아, 중국, 몽골, 이란, 인도, 수마트라 등지를 여행하며 기록으로 남긴 마르코 폴로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그저 파란만장(波瀾萬丈)이라는 단어가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모진 풍파가 만 길이나 펼쳐져 있다는 뜻이니 그 고생이 오죽이나 심하였을까? 이제 본격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해 보자. 원체 이들의 여정이 복잡하므로 그냥 큰 줄기만 이야기하여야 하겠다.

무역상이었던 아버지 니콜로는 마르코 폴로가 태어나기 전 보석 무역을 위해 동생인 마페오 폴로와 함께 동쪽으로 떠났다가 전쟁이 일어나자 다시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올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도중에 원나라의 사신을 만났는데 그의 제안으로 원나라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1년을 여행하면서 동방의 이국적이고 신기한 풍물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원나라에 도착하여 쿠빌라이 황제를 알현하게 된다. 니콜로와 마페오는 쿠빌라이가 서방의 교황에게 파견하는 사신으로 임명되어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였지만 당시 교황이 사망하는 바람에 다시 선출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269년 아버지와 삼촌이 고향인 베니스로 돌아오자 마르코는 15년 만에 아버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새로 선출된 교황이 이들 3명을 만나 쿠빌라이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원나라에 파견한다. 이렇게 하여 1271년 지중해를 건너 터키를 지나 호르무즈해협에 도착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해로로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결국 육로를 이용하게 된다. 그리하여 파미르 고원을 경유하여 타림 분지에 이르렀고,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여러 도시를 지나,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쿠빌라이의 여름 궁전이 있는 상도(上都:현 네이멍구자치구의 도시)에 도착하여 쿠빌라이를 알현하였다. 그것이 1274년이었으니 길로 3년의 긴 여행이었다.

당시 20세가 채 되지 않은 마르코는 원체 총명하여 원나라의 말과 습관을 금세 익혔으며 그런 마르코를 쿠빌라이는 극진히 총애하였다. 마르코는 원(중국)에 머물며 여러 차례 황제의 특사로 외국에 파견되었다. 마르코는 17년간 원나라에서 머물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쿠빌라이칸에게 청하였지만 그를 총애한 칸은 번번히 거절하였다.

마침 마르코 폴로 일행은 이란의 몽골왕조인 일 한국(汗國)의 왕비가 사망하자 그 나라 왕에게 시집가는 원나라 공주의 여행 안내자로 선발되어 겨우 원나라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행은 이번에는 해로로 자바 ·말레이 ·스리랑카 ·말라바르 등을 경유하여 이란의 호르무즈에 도착하였는데, 또다시 우여곡절 끝에 1295년에야 겨우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그런 엄청난 거리를 당시 폭도, 산적, 해적, 풍토병의 위험이 도처에 널려있는 상황에서 20여 년을 여행하고 기록을 남겼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보아야 하겠다.

우리들이 읽는 이 책도 우여곡절 끝에 마르코 폴로가 옥에 갇혀 있을 때 옆 사람에게 구술한 것을, 원본은 없어지고 여러 사본들(F, FG, VA, P, R, Z본 등이 있다) 중에서 F본을 바탕으로 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다.

책에는 수백 가지의 진기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지면상 겨우 다섯 개 정도만 소개하겠다.

마르코 폴로 일행이 소재한 쿠빌라이 칸의 황금패자(일종의 마패로 46cm x 10cm2kg 무게의 순금)는 어느 곳에서든지 내보이기만 하면 필요한 모든 물품, 장비, 인원, 숙소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만약 어기는 족장, 성주, 국왕은 멸문지화를 당한다.

티베트의 어느 지방에서는 처녀를 아내로 맞지 않는다. 남자를 전혀 모르는 여자는 신이 잃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외지에서 손님들이 찾아오면 처녀의 어머니들은 그들에게 제발 자기의 딸과 동침하여 달라고 사정사정한다.

중국 사천성의 어느 부족은 lq에 손님이 찾아오면 자기 아내를 빌려주고 저기는 계속 외부에 머물러 지낸다. 부인은 손님이 갈 때까지 집 문 앞에 손님의 모자나 옷을 걸어 놓아 손님이 아직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데, 남편은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야 집에 돌아온다.

수마트라 섬에서는 병자가 죽으면 그 가족들이 죽은 시체를 뼈만 빼놓고 살은 모조리 발라 먹는다. 뼈에 조금이라도 살이 붙어 있으면 벌레들이 파먹게 되는데, 그러면 망자의 넋에 재앙이 닥친다고 믿는다.

인도의 바라문교도들 중 어떤 족속은 완전 나체로 지낸다. 남자건 여자건 그들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하기를, 인간은 원래 알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알몸으로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지팡구(일본)는 손바닥 두께의 황금으로 길이 뒤덮여 있다는 이야기며(이것은 저자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바그다드에서는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하여 산을 1km나 옮겼다는 이야기, 칸의 궁전에서는 술잔이 이리 저리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신하들에게 술을 전달한다는 등, 믿기 어려운 대목들도 여러 군데 있지만, 1280 ~ 1290년대 세계의 절반이나 되는 지역의 풍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진기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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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론 동서문화사 세계사상전집 26
맬서스 지음, 이서행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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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 스미스의 계보를 이으면서 후일 다윈(1809~), 마르크스(1818~), 케인즈(1883~)등의 후학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진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가레트 하딘의 1968년도 논문 공유지의 비극이론도 결국은 여기서 차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도 들 정도이다. 그만큼 이 책은 여러 학자들에게 두고두고 영향을 준 책이다.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1766 ~ 1834)는 런던 남부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집안은 꽤 잘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그가 후일 목사로 살았기 때문에 책에 지나치게 가정을 강조하고 난잡한 성 풍속을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케임브리지대학의 킹스칼리지에 입학하였는데 그가 1학년일 때 교재로 쓰였던 페일리의 <도덕철학 및 정치철학의 원리>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인들이 흔히 <인구론>하면 가장 잘 알고 있는 두 가지 핵심사항이 있다. 첫째,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밖에 증가하지 않으므로 인구와 식량 사이의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둘째, 여기에서 기근 ·빈곤 ·악덕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책은 맨 앞의 제1(인구와 식량증가율)에서 인구론의 핵심으로 위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이론을 풀어나간다.

    현재 세계인구가 10억이면 인류 총수는 1 - 2 - 4 - 8 - 16 - 32 - 64 - 128 - 256으로 늘어날 것이지만, 생존자원은 1 - 2 - 3 - 4 - 5 - 6 - 7 - 8 - 9로 늘어날 것이다. 200년 뒤에는 인구 대비 생존자원 비율은 256 9 ...(p22)

그러면서 그 해결책으로 타락한 풍습과 질병, 그리고 생존자원과 무관한 인간을 약화시키고 파괴하는 모든 정신적, 물질적 원인들을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론 이것이 인구론의 핵심주장은 맞다. 하지만 인구론에는 우리들이 막연히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다른 여러 가지의 주제들과 사상들이 담겨져 있다.

   우선은 인구론이 단 한 번에 완성된 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들이 인구론을 검색하면 1798년에 출판되었다고 나오지만 이것은 처음 초판본이 나온 때를 말함이다. 맬서스는 그 후에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6판을 26년 만인 1824년에야 완성하였는데, 이것은 분량으로 치자면 초판본 분량의 무려 다섯 배에 달한다. 그러니까 맬서스는 초판본에서 인구론의 아주 핵심적인 내용과 연구 방향만을 밝혔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인구론의 내용이 아주 방대하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위의 두 가지 명제(또는 핵심 사항)은 아주 단편적인 결론일 뿐이다. 그는 이러한 결론을 유도해 내기 위하여 2편과 3편에서(책은 모두 4편으로 되어 있다) 전 세계의 생활습관을 장장 300여 페이지에 걸쳐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야만사회의 경우, 아메리카 인디언의 경우, 미크로네시아 군도의 경우, 고대 북유럽의 경우, 북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근대 유목국가의 경우, 아프리카의 경우, 시베리아의 경우, 인도, 중국, 일본의 경우까지, 정말 거의 전 세계의 결혼 및 생활습관을 분석하고 있으며, 그들 각 지역의 출생과 사망에 관한 통계를 여러 학자들이나 선교사들의 보고서를 인용하여 분석하고 있다.

    프랑스의 인구 증가를 설명하는 통계가 재미있다. 1820년의 출생 수 957,875, 사망 수 764,848, 혼인 수 218,917, 사망 대비 초과 출생 수 193,027인데, 여기서 초과출생 수를 대략 20만으로 단순화 해 볼 경우 매 25년마다 인구가 두 배로 증가한다는(20년 후면 3천만) 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당시의 프랑스 인구가 3,045만 명이라고 하는 통계는 <프랑스 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구 숫자와도 일치한다.

그러면 책에서 강조하는 부분들을 아주 간략하게 살펴보자.

 

전쟁, 야만성, 폭력, 강간, 식인습관, 불결한 위생상태, 전염병 창궐과 같은 원인들이 인구를 감소시킨다.

유목민에게는 강한 이동능력이 있는데, 그것을 곧 전투능력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것도 결국은 훈족의 이동이 게르만족의 연쇄 이동을 불러 온 때문이었다.

중동-아프리카 지역에는 무더위로 인한 게으름이 만연해 있으며 여자들은 조혼으로 인하여 11살부터 아이를 낳기 시작한다.

중국은 땅이 비옥하고 통치자가 농업을 장려하는 문화가 있다. 이것이 인구 증가에 기여한다.

그리스-로마의 경우는 많은 숫자의 노예가 인구 증가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한다.

터키-페르시아의 경우는 일부다처제 때문에 남자의 정력이 30세 전후면 고갈된다.

조혼이 성행하는 가난한 나라의 사망률(1:20)은 교육이 좋고 부유한 나라의 사망률(1:40)보다 두 배의 차이가 난다.

질병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불결과 게으름 - 전염병 창궐 - 인구 다수 사망 - 하수도 확충 - 위생개선 - 통풍 개선 - 전염병 근절 - 인구증가의 선순환도 가능하다.

구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 속에서 양육되어야 한다. 사생아들은 일찍 죽는다.

 

    맬서스는 책의 제3편에서 책 전체 분량의 1/3을 할애하여 구빈법 제도를 설명하고 있다. ‘영국 엘리자베스 빈민법또는 구빈법으로 불리는 이 제도는 1500년대부터 시행되어 왔는데, 그는 영국뿐만이 아니라 아일랜드, 스웨덴, 프랑스, 네델란드, 독일, 노르웨이 등등의 다양한 제도를 연구하고 나서, 구빈법은 국가 전체의 자원을 감소시킴으로 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며, 극단적인 가난은 구빈제도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어떤 인간의 방법과 노력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기부금과 같은 강제행위는 결국 그것이 물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가장 먼저 지적할 것은, 기부금의 강제적 납부는 필연적으로 노동에 대한 간접세와 동일한 작용을 하며, 애덤 스미스가 적절히 언급한 바와 같이, 결국 이를 부담하는 것은, 그것도 더욱 값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노동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이라는 점이다. 결국 이 정책은 구빈세를 높아진 인건비와 물가로 대체하는 셈이 된다.(p515)

    요즘의 우리나라에서 만연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복지제도를 수립하고 집행하는 정부 부서들이 참고해 볼만한 구절이다. 물론 지금 우리는 인구증가가 문제가 아니라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맬서스의 인구론은 두고두고 곱씹어 보아야 할 명저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다음 결론은 반드시 명심해야 할 내용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p550 전체 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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