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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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어 라이프』에 실린 소설들의 인물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작은 타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아간다. 현실에서의 우리가 각자의 터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시간 때문에 혹은 어떤 관성 때문에 삶에서 보고도 보지 못했던, 보고도 느끼지 못했던 삶의 장면들은『디어 라이프』안에서 보고 느끼게 된다.

 

 

 

   1.

   “확대경을 보냈으니 돈을 주세요.”

 

 

 

  「코리」에서 코리는 자신과 불륜관계에 있는 하워드에게 이집트에서 엽서를 보낸다. 하지만 그 엽서에는 우리가 흔히 이집트를 생각하면 떠올리게 되는 피라미드도, 스핑크스도 없다. 대신 ‘무너진 피라미드’라 적혀 있는 지보롤터 암벽 혹은 ‘멜랑콜리아의 바다’라는 말과 함께 있는 갈색 들판 같은 것들이 있을 뿐이다. 엽서를 보낸 발신자 코리는 수신자 하워드에게 이런 모습들과 함께 “확대경을 보냈으니 돈을 주세요.”라는 말을 보탠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디어 라이프』에 실린 14편의 소설들은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14개의 확대경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워드는 위와 같은 코리의 말에 “확대경에 결함이 있으니 환불해주세요.”라는 농담 섞인 답을 내놓는다. 코리는 이 엽서를 통해 하워드가 있는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그 풍경이 담긴 엽서로 확대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먼 곳에서 보내는 ‘엽서’라는 형식 자체로 하워드에 대한 코리 자신의 마음을 확대해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돈을 달라는 코리의 말은 사실 자신이 보여준 마음에 대한, 그 마음에 맞는 대답을 달라는 얘기와 같다.

 

   비단 이 소설에서만이 아닌, 작가는 소설들의 다양한 장면들을 통해 인물들의 심리를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삶의 어떤 순간들을 확대해서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돌리」에서 남편 프랭클린이 돌리와의 시간을 가지는 걸 보고 집을 나온 ‘나’는 혼자 레스토랑 화장실에 들렀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 뒤의 문장들을 보면 그녀가 놀라는 이유는 자신이 너무 늙었고 초라해 보이기 때문에 자신을 유혹할 어떤 남자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앨리스 먼로는 이 장면 뿐 아니라 어떤 장면에서도 인물의 심리를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만의 섬세한 문장들을 통해 인물의 어떤 절망을, 두려움을 확대해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2.

   ‘내가 아는 건 이게 전부다.’

 

 

   역시 실제의 우리 삶이 그러하듯, 이 책의 소설들은 시작을 하면 어디로 갈지 어느 곳을 통과 할지 모르고 앞으로 간다. 그것은 소설을 읽는 독자 역시 마찬가진데 이것은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기차를 타고 달리는 일과 비슷하다. 물론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이 탄 기차가 어느 역을 거쳐 어느 역을 향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표면적인 도착지일 뿐이다. 실제로 인물들은 거기에 가기까지의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일을 겪는지, 그 일로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 알지 못한다.

   이 소설집의 첫 소설「일본에 가 닿기를」이란 소설에서 주인공 그레타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남편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딸과 함께 기차에 오른다. 도착하는 곳에 그 남자가 있을지 없을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그레타는 그 기차에서 그레그라는 남자를 만나 충동적으로 사랑을 나누게 된다.

 

 

   ‘사람들은 그곳을 통과할 때 늘 걸음을 서둘렀다. 덜컹대는 소리와 흔들림을, 결국 세상 모든 것이 그리 필연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사람들은 무심한 듯, 하지만 다급하게 덜컹대는 소리와 흔들림을 통과한다.’

 

 

   딸이 잠든 사이 그레타는 그레그와 충동적으로 사랑을 나누고는 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딸은 자리에 없고 그레타는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생각에 사로잡히며 딸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 기차의 칸과 칸 사이, 흔들림이 심한 그 곳에서 딸을 발견한다. 흔들리고 덜컹대는 그곳은 마치 우리 누구에게나 내재해 있는 어떤 시간 또는 어떤 감정처럼 보인다.

그레타와 딸은 마침내 도착지에서 내리고 그곳에서 하워드와 마주하게 된다. 위에 인용한 장면은「일본에 가 닿기를」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레타는 자신도 모르게 멀어지는 딸의 손을 느끼며 그저 다음에 다가올 일을 기다린다는 말은 이 소설의 인물만이 아닌 소설집 대부분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태도처럼 보였다.

 

 

   이 소설 뿐 아니라「자갈」에서 ‘나’는 언니가 물 속에 뛰어든 장면을 떠올리며 자신이 왜 그 때 바로 어른들에게 그 사실을 않은 것인지,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이 기억하고 알고 있는 전부― 그것이 한 없이 부족하고 불완전하다고 해도 ―를 가진 채 앞으로 간다. 거기서 ‘나’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다만 ‘뭐가 어떻든 간에’ ‘행복해지는 것이다.’

 

 

 

    3.

   “그건 사람 때문이 아니야. 어떤 기운 때문이지. 주문에 걸리는 거야.”

 

 

   우리는 살면서 분명 내가 했지만 내가 했다고는 믿기 힘들 일들을 겪기도 한다. 또 내가 했지만 내가 했다고 믿기 싫은 일들을 만나게 된다.『디어 라이프』를 읽다 보면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어떤 것에 이끌려 삶의 궤적이 달라진 인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못하겠어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끝까지 감당할 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설명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실수라는 말뿐.‘

 

 

   하지만 이런 인물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하지 못한다. 굳이 어떤 이유를 대자면 그것은 ‘어떤 기운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에 인용된 부분은「아문센」에서 가져온 것이다. 소설에서 ‘나’와 ‘그’는 결혼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지만 ‘그’는 느닷없이 그 결혼을 하지 못하겠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고는 그는 그저 실수였다는 말만 남길 뿐이다.

또한 다른 소설「자갈」에서 물에 빠져 결국 죽음을 맞이한 코리는 소설에서 왜 그런 짓을 한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소설 속의 ‘나’도 그 소설을 읽는 우리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밤」에서 ‘나’가 밤마다 느끼는, 동생의 목을 조르고 싶은 것 역시 어떤 이유도 없다. 그저 그것은 ‘일식이나 월식처럼 갑자기 덮치’어 소설 속 인물의 목숨을 뺏기도 하고 삶을 돌이킬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작가 앨리스 먼로는「자갈」이라는 소설에서 닐을 묘사하며 ‘완벽한 체격. 형체를 갖춘 유령’이라고 이야기 한다. 나는 작가가 닐에게 가지는 이 시선이 작가가 인간을 바라보는 혹은 생각하는 시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멀쩡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사실 얼마 되지 않음을 작가는 이런 장면들을 통해 표현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이처럼 14편의 소설들을 통해 인간이나 겪어야 하는, 혹은 겪을 수 있는 감정들을 기품 있게 보여준다. 더한 것도 뺄 것도 없어 보이는 그녀만의 언어들을 통해서 말이다.

   작가가 그려 내고 있는 생을, 인물들을 통과해 나오면서 처음에 나는 ‘놀랐고, 그 다음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고, 이어서 한없이 마음이 놓’이게 된다. 이런 작가가 있어 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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