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이 세상에 투사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으로 세상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 의식은 존재에 우선한다.(바클라프
하벨)
당신의 의식과 나의 의식은 세상을 창조할 수도, 해체할 수도, 개혁할 수도 있다. 우리가 바로 세상을 끔찍하고 때로는 괴로운 책임의 근원지, 그리고 변화에 대한 절실한 희망의 근원지로 만드는 데공모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리더십이 요구되는 이유이며우리 모두를 리더로 만드는 진실이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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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랜 세월 동안 나를 부르던 친구의 모습이 바로 토마스 머튼이 얘기한 ‘참자아‘ 이다. 이것은 우리를 우쭐거리게 부풀리고 싶어하거나, 또 다른 형태인 자기 왜곡으로 우리를 위축시키고 싶어하는에고가 아니다.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허공을 떠돌고 싶어하는 지성도 아니며, 추상적인 규범에 따라 살기를 바라는 도덕적 자아도 아니다.
그것은 신이 당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할 때 우리 안에 심어 놓은 바로 그 자아이다. 그 자아는 우리에게 더도 덜도 원하는 것이 없다. 우리가 타고난 그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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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충만하게 살고 싶다면 반대의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며, 한계와 능력 사이의 창조적 긴장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본성을 왜곡시키지 않도록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타고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재능을 믿어야 한다.
길이 닫힐 때면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것이 주는 가르침을 발견해야 한다. 길이 열릴 때면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우리 인생의 가능성에 화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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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내 약점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와 함께 춤추고 싶어하지 않을 때는 솔로로 춤추는 법을 배운다. 왜냐하면 자칫 그것은 내 재능을 망가뜨릴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나와 춤추기를 거부하는 학생들에게더 품위 있게 대응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내 한계를 그들 탓으로 돌리는 대신 나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한사코 춤추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학생들에게까지 좋은 선생님 노릇을 할 수는 없다. 그게 나의 한계다. 하지만 그런 학생들을계속해서 춤추자고 불러낼 수 있는 이해심을 키울 수는 있다.

교사로서 내가 가진 재능은 학생들과 함께 ‘춤출 수 있는 능력,
대화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음으로써 학생들을 가르치며 또 함께 배우는 능력이다. 학생들이 기꺼이 나와 함께 춤추면 그 결과는아름답다. 그들이 춤추기를 거부하고 내 재능이 거부당하면 일은 엉망이 되기 시작한다. 나는 괴롭고 화가 나며 학생들을 원망한다. 내곤경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 다음엔 나는 그들을 대할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함께 춤춘다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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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누군가에게 주고 있다면 나는 잘못되고 위험한 선물, 사랑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랑이 담겨 있지 않은 선물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돌보기 위해서보다는 나 자신을 내세우려는 필요에서 나온 선물이다. 그런 베풂에는사랑도 믿음도 없으며, 사랑의 전달통로는 나 말고는 없다는 오만과 착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를 위해서 창조되었다. 사랑 안에서 서로를 위해 존재하도록 창조되었다. 하지만 공동체는 양쪽으로 열려 있다. 자기가 가진 사랑의 용량이 한계에 다다르면, 공동체는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그 책임을 맡겨 필요한 사람을 돕도록한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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