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작가 - The Ghost Writ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속의 한 장면에서 대필작가는 전 수상의 자서전을 쓰고 있는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기자 무리를 뚫고 나가야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에게 한 기자가 어디 소속이냐고 묻자 음료를 한잔 들이키며 태연하게 대답한다. "난 혼자 일합니다." <유령 작가>의 주인공은 영화 속에서 정확한 이름이 불리지 않은 스스로를 '유령'으로 부르는 인물이다. 어떤 존재로서 불리지 않는 존재,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그는 철저히 일로 만난 사람들 틈에서 외로움과 의문 속에 작업을 한다.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이 스릴러의 공기 안에서 한 인간의 고립감과 위기, 고독이 더 도드라지는 것은 어쩌면 로만 폴란스키의 인생사와도 겹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폴란스키는 어린 시절 나치에 끌려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았고, 두 번째 아내를 극악한 살인마들에게 끔찍하게 살해 된 채 잃게 되었다. 그 후엔 성범죄를 짓고 타국으로 도피한 뒤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는 그야말로 영화적이며 더없는 악몽의 연속이다. 그래서 그가 <유령 작가>안에서 그리는 두 인물의 묘사력에 밀접한 개인적 태도가 느껴진다. 
 
영화 속 대필 작가인 '유령'과 자서전의 주인공인 전 영국 수상 월터 랭이 겪는 언론의 공격과 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더없이 탁월하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정치스릴러를 미디어와의 대립만으로 묘사하거나, 캐릭터 대립의 방법으로만 모색하지 않는 점이다. 대필을 위해 수상의 별장이 있는 외딴 섬에 묵게 된 유령은 공포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보인다. 그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이야 말로 모두 귀신처럼, 그들이 살고 있는 거대한 저택은 귀신의 집처럼 느껴진다.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도 선임 대필 작가의 죽음에서 출발하고, 외딴 곳의 귀신들이 사람을 불러들이는 공포영화의 전철을 밟고 있다. 폴란스키는 이 섬 전체를 귀신의 섬처럼 묘사한다. 어두운 하늘, 바람이 휘몰아치는 섬의 위용은 결코 그가 이 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암시하는 공간 묘사이다. 그것은 동시에 전범으로 지목되며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월터 랭의 진실을 숨기고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 품고 있던 비밀을 외부로 유출하려 할 때 인물들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은 비밀스레 포장된 채(자서전에 비밀이 있다)이 세계에 남겨진다. 그 '유령'이 쫓던 그 비밀이 또 다시 세계의 유령이 되어 떠돌게 된 것이다. 정치적 음모론은 다소 식상하지만 폴란스키는 흥미진진한 원작을 바탕으로 그에 흠을 내지 않는, 역시 흥미진진한 영화를 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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