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어스맨 - A Serious M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하나의 근심이 가고 나면 또 다른 근심이 찾아온다. 
  

<시리어스 맨>은 한 줄로 마음에 새겨지는 격언처럼 느껴지는 작품이다. 코엔 브라더스의 다른 영화처럼 늘 정체를 숨긴 채 코미디로 위장하여 다가오지만, 결국엔 뒤통수를 울리는 일갈을 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이 형제 감독의 전작과 비슷한 스타일의 연출 방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영화이기는 하다. 그러나 코엔 브라더스가 여러 작품들에 녹여온 삶에 대한 운명론적 시선이 그리 뻔하지 않은 울림을 준다. 이번에는 마피아도 아니고,  탈출한 죄수도 아니고, 카지노를 노리는 사기꾼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일상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주인공이 나온다. 너무 안락해서 지루해 미칠 듯한 그 느릿한 균열 속에서 삶의 파국은 서서히 진전되며 우리 곁으로 다가 온다는 것을 전해준다. 오프닝은 그들의 90년작 <밀러스 크로싱>과 닮아있다. 하나의 모자가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며 비주체적인 행위를 보여준다. 그러나 모자는 이리저리 굴러나오면서도 꽤 나름 주체적이고 아리송한 삶의 장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결국 한 인간의 삶도 이 거대한 구조적 세계 속에서는 결국 하나의 부속품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리어스 맨>을 보고 나면 비슷한 감흥이 일어나며 나 자신이 서 있는 이 거대한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도, 결코, 이 세계를 가늠할 수 없다.

 

<밀러스 크로싱>의 모자는 <시리어스 맨>에서 유대 랍비의 존재로 대체된다. 사람들은 인생의 큰 고비를 맞이할 때 신이건, 가족이건, 애인이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한다. 그럴 때 나의 짐을 함께 들 수 있는 누군가, 내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고스란히 내가 혼자 해결해야 한다면 그만큼 절실한 외로움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은 너무나 바빠서 결코 우리의 시름을 들어줄리 만무하고, 게다가 그들의 대체자인 랍비 조차 바쁘다. 영화 <시리어스 맨>의 주인공 래리는 중년의 남성으로 외각 도시에서 살며 중산층으로서 적절한 삶을 영위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새로운 사랑과 이혼에 대한 발언을 기점으로 그의 삶은 도미노처럼 무너지며 사건들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 도미노가 역진행으로 다시 다른 방향으로 터닝을 하기도 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래리는 몸이 안 좋아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신체 부위 중 어디가 본격적으로 아파서 병원을 찾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검진'을 하고 있던 그를 떠올려 본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신에게 닥칠 불길한 기운에 대해 의심하고 겁내며 살아간다. 그것이 건강이 되었건, 금전적인 것이 되었건. 자신을 위협하는 것은 알고 보면 자신 주변에서 시작 되는 법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하다. 그런데 그의 건강 검진으로 시작된 '검진'에 대한 의혹은 처음 아내가 던진 폭탄 발언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래리를 안하무인 격으로 새로운 애인과 살게 될테니 집을 옮겨달라고 한다. 그리고 이혼장 요구. 성실하고 진지한 래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저명한 랍비들의 조언을 들으며 시간을 버는 일 뿐이다. 하지만 신은 있나보다. 같은 시간에 차 사고가 나서 아내의 애인은 죽고, 래리는 다치기만 했다. 이것도 다행이라면 다행(래리 역의 배우 마이클 스터버그가 아들에게 이 소식을 들은 뒤 짓는 표정이 압권이다). 곧 아내의 애인은 유령이 되어 <허드서커 대리인>속의 죽은 사장처럼 래리 앞에 등장하고 나름 그의 위치를 설정해주는 코치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래리를 위기에 빠트리는 인물들이 다른 한편에선 또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래리의 또 다른 위기는 그가 교수직을 유지하는데 걸림돌이 될 듯한 한국 학생의 등장이다. 자신이 이해 못하고 낮은 성적을 받은 학생은 성적 정정을 요구하며 돈봉투(아 이런!)를 두고 나간다. 그런데 성실한 교수 래리는 그것으로 인해 여러 가지 모색을 벌일 수 있었다. 관객들은 그가 소박하게 C-를 그리는 순간 실망이 아닌, 자그마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벌이는 내심의 타협이 비열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 소심함으로서 삶을 우회하는 지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상에나! 미국 같은데서 진짜 탈무드, 랍비같은 인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담?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래리의 근심 거리들이 꿈에 까지 비추어지는 장면들이다. 그가 꿈에서 동생을 배에 태워 캐나다로 보내고 싶어하는 장면. 그가 현재의 근심을 얼마나 힘겨워하는지, 그것을 꼭 떼어내 버리고 싶어하는지 절실히 느껴지고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우리의 삶을 누르는 절실한 그것은 무엇일까? 그러나 아무리 아둥바둥 거려도 소용이 없다. 다 시간과 때가 기다려 해결을 해주는 법. 래리의 아들은 또 아들 나름대로 친구에게 진 빚을 못 갚아 걱정이다. 매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하나의 위기가 가고 나면 또 다른 위기가 오는 법임을 코엔 형제는 재치와 지혜로움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결코 삶의 시련은 하나의 마무리로 그것이 끝이 아니다. 솔직히, 위기가 하나로 끝나면 재미 없는 인생이다. 그리고 갈수록 장나스럽고 지혜로워지는 코엔 브라더스의 원숙함과 이들의 콤비 카터 버웰의 영화음악 마저 경지에 올라선 듯 느껴진다. 이들은 가끔 평범한 영화를 내놓지만 한번씩 이렇게 높은 시선에 서있는 생각하는 영화들을 만들어낸다.   

 


by 명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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