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
리처드 파인만 지음, 정무광.정재승 옮김 / 승산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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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는 1963년 강연록으로, 과학의 불확실성 강조, 사회·종교에 대한 비판적 통찰, 구어체 중심의 가벼운 형식의 소책자이다. 


파인만이 말하는 과학의 본질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태도’이다. 


• 무지의 인정:  과학은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 의심의 유산:  과거의 권위나 정설에 끊임없이 의문(의심)을 제기하는 것이 과학의 핵심이다.

• 경험적 검증:  관찰과 실험을 통해 증명되지 않은 것은 과학적 사실이 될 수 없다.

• 과정으로서의 과학:  과학은 고정된 정답이 아니라, 오류를 수정해 나가는 동적인 과정이다.  


이 책은 과학을 상아탑 밖으로 끌어내어 대중적 민주주의와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종교나 정치적 권위가 내세우는 ‘절대 진리’의 권위와 허구성을 폭로한다. 

또한 의심하는 능력은 유능한 시민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임을 역설한다.

생각의 자유와 오류를 범할 자유를 과학의 이름으로 지지한다. 


다만, 파인만은 철학적 체계를 정교하게 쌓기보다 직관에 의존하여 과학의 가치를 다소 낭만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복잡한 사회·정치·종교적 갈등을 과학적 회의주의나 계산 가능한 모델로 단순화하려 한다는 지적도 가능할 것이다. 


냉전 시대의 미국 중심적 합리주의에 기반하여, 과학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이나 위험성을 간과한 채 과학적 사고의 계몽적 효과를 지나치게 낙관하는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과학을 딱딱한 학문이 아닌 '삶을 대하는 정직한 방식'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닌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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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 임계 질량에서 이어지는 사건들
필립 볼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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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볼의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복잡계 물리학과 통계역학의 개념을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에 접목한 '사회 물리학'을 다룬 저작이다. 


저자는 도로 위의 자동차들이 일정 밀도를 넘어서면 급격히 정체되는 현상을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상전이(Phase Transition)'에 비유하기도 하고, 금융 시장의 변동, 거주지 분리 현상, 소셜 네트워크의 구조, 비즈니스 사이클 등을 단순화된 물리학적 모델과 복잡계 이론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분석의 핵심을 사회 현상이 일어나는 궁극적인 의도나 원인보다는, 개개인의 상호작용 속에서 현상이 '어떻게 발현(Emergence)되는지'에 집중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전통 사회과학이 간과하기 쉬웠던 '상호작용이 만드는 구조적 패턴'을 명쾌하게 시각화하는 특색이 있다. 개개인의 심리를 분석하는 대신 집단의 통계적 규칙성을 찾아냄으로써, 도시 계획, 교통 통제, 금융 위기 예측 등 실용적인 영역에서 과학이 기여할 수 있는 통찰을 성공적으로 보여준다. 


물리학의 추상적 모델이 현실 사회의 정치·경제적 특수성을 완벽히 반영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수는 없다. 또한 경제학의 수학적 모델이 지닌 한계를 사회물리학 역시 답습할 위험도 존재한다. 


다양한 주제(게임이론, 네트워크, 카오스 등)를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쏟아붓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논점이 분산되고 일반 독자가 소화하기에는 다소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렌즈를 '개인'에서 '관계와 시스템'으로 확장시킨 명저라 할 만하다.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해 보이는 세상 속에서 '숨겨진 질서'를 찾아내는 과학의 경이로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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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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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과학 전공자가 마땅히 있어야 할 주무장관의 자리에 서울대 문과 출신 정치인이 임명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환경부는 물론이요, 해양수산부, 중소벤처기업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특허청, 기상청 등의 부서 책임자에 엉뚱한 인물이 ‘정치적’ 인선 과정을 거쳐 낙하산으로 임명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유시민 역시 노무현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에 올랐는데, 경제학 전공자가 질병관리 및 예방과 국가 의료체계를 통괄하는 자리에, 그것도 해당 분야에 대한 경력 하나 없이 등용되는 것에 대하여 당시의 청문회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은 인선으로 비판 받은 바 있었다.


당시의 세태가, ‘서울대 문과 출신이면 웬만한 대학 과학 전공자보다 못할 게 없을 것이다’ 라는 암묵적 사회 인식이 한몫 거들었든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서울대 문과 출신들의 이러한 ‘선민 의식’은 사회 곳곳에서 지금도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지만, 유시민의 시대에는 그러한 ‘서울대 프리미엄’을 최대한 누렸던 시기이기도 했었다. 


이 책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일견 스스로를 ‘바보’로 낮추며 과학적 사고에 대한 찬사를 가미하고 있지만, 과거 과학 전공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정치적 프리미엄으로 십분 누렸던 저자가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과학 전공자의 입장에서는 ‘뜬금없다’ 혹은 ‘누릴 것 다 누려 놓고 왜 이제 와서?’ 하는 느낌이 든다. 


IAEA에 의하여 과학적으로 안전이 검증된 후쿠시마 방류를 정치적인 이유로 비판했던 저자의 이력을 감안하면, 평소엔 과학에 대한 찬사를 말하더라도 유사시 정치적 우선순위 선택의 상황에선 과학적 사고를 뒷전으로 물리는 자의적 전략이 언제든 재등장할 수 있음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 책,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문과생들의 호응을 유도하면서, 이과생들과의 외연 강화를 동시에 노리는, 일종의 유시민식 갈라치기 혹은 벤다이어그램적 분류 전략이 느껴진다. 아직도 빨아먹을 단물이 남았는지, 과학계의 밥상에 숟가락을 슬며시 들이미는 모양새가 영 미덥지 않다.


진정코 과학적 사고방식을 존중한다면, 지금도 사회 전반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서울대 문과 프리미엄의 작용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었어야 할 것이며, 과학 전공자들이 문과 출신 정치인 때문에 감수해야 했던 불이익과 처우에 대한 재고를 언급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자기 성찰 없는, 뜬금없는 과학 찬양은 과학 전공자가 듣기엔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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