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의심스러운 철학 수업 - 주도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는 50가지 철학적 질문들
움베르토 갈림베르티.루카 모리 지음, 김현주 옮김 / 풀빛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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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AI와 문답을 나누는 경우가 주변에 많이 보인다. 질문을 살펴보면 단순한 생활 연계형 질문부터 깊은 인생의 고민까지 있어, 인공지능에 꽤 많이 의존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장관 후보로 나온 인물의 논문이 78% 정도 AI의 도움을 받은 표절 논문이라는 점과 유명 대학 연구자들이 논문 평가를 인간이 하지 않고 인공지능에 맡기는 것을 알고, AI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이를 유도하는 명령문을 의도적으로 논문에 넣었다는 내용을 접하고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동물과 다른 인간의 고유 영역인 사고의 영역까지 인공지능에 지배당하는 모습을 발견한 거 같아 씁쓸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점점 떨어지고, 귀찮아지고, 중요하지 않게 되어가는 현실을 보는 거 같다.

이럴수록 내 아이는 좀 더 디지털 세상과 거리를 두게 하고 싶고, 생각하는 시간을 더 주고 싶어 인문학 서적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생각할 거리를 제공할 책을 찾다가 《매우 의심스러운 철학 수업》을 만났다.


이 책에는 주도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 줄 수 있는 50가지 철학적 질문이 나온다. 이 책의 저자는 움베르토 갈림베르티라는 철학자인데,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철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이며, 카 포스카리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공동 저자로 루카 모리라는 이탈리아의 철학자도 있다. 루카 모리 씨는 유치원에서 중등학교까지 철학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여러 아이디어를 여러 저서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국내 발간 도서로는 《청소년을 위한 철학 질문의 힘》이 있다.


책은 50가지의 철학적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질문은, 자아/내면/행복에 관한 철학적 질문들, 삶의 가치/목적/도덕에 관한 철학적 질문들, 진리 탐구/성찰에 관한 질문들, 사문/문화에 관한 질문들, 이성/감정에 관한 철학적 질문들로 짜여있다.


질문들 면면을 살펴보면, ‘나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일까?’라는 거의 날마다 되풀이되는 질문부터 ‘적당한 선은 무엇일까?’, ‘왜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걸까?’,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뒤처진 걸까?’ 등등의 실생활과 관련한 재미난 질문도 발견하고,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등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질문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질문 목록을 보고 있자니, 누구나 다 한 번쯤은 해봤을 그런 고민이 많다. 늘 고민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까지 그 답은 아직 뚜렷하게 가지고 있지 못한 질문들.

하지만 책에서는 이런 고민을 하는 데 평생 걸릴 거라는 힌트를 주기도 한다.

두 번째 질문인 ‘나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의 질문에 대한 본문의 내용을 읽어보면,


스스로에 대한 탐구는 평생이 걸릴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것이 쓸데없는 짓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어요. 이 과제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꼭 스스로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걸까요?

고대의 위대한 철학자들 중에서, 특히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스스로 알고자 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적절하게 돌볼 줄도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무엇을 돌봐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매우 표면적이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렇듯 스스로에 대해 알아내는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과 신발, 그리고 갖고 있는 물건을 관리하는 데만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외적인 것에 더 신경을 쓰게 되겠죠.” - 31쪽


책을 읽다 보면 철학이라는 게 대단한 이을 머리에 탑재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늘 갖고 있는 질문에서 시작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평생 이어간다면 우리는 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것이리라.


고백하자면, 그간 필자에게 철학이란 특정 철학자의 어려운 논리를 이해하기에 바쁜, ‘철학을 하는 것’보다 ‘철학을 아는 것’에 급급한 지식의 영역으로 여겨왔던 거 같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스스로 질문을 해보면, 또는 주변인들에게 해보면서 대화를 시작하면, 그 자체가 철학이 되는 것이다. 비록 책의 목적이 청소년들을 생각하게 할 요량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고자 원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이 책의 질문을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가졌던 의문이, 질문에 대한 뚜렷한 답을 본문에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는 거다. 깊고 넓게 고민을 해보도록 관련 질문을 더 하거나 사회 현상이나 역사, 철학자, 심리학자 등등을 가볍게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의 의도가 철학을 하기 위하여 질문을 던지면 그에 대해 우리가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 진실을 길어 올리기를 원하기에, 이런 형식을 취한 거 같다.

뭔가 여운도 많고, 더 알아야 할 거 같은데 책의 내용이 끝난다. 아마도 학교나 학원의 일방적인 강의 형태에 익숙한 한국 청소년들은 책이 질문을 해놓고선 덜 해결해 준 듯한 느낌마저 들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이 질문이 나만 하던 고민은 아니었다는 묘한 동질감과 함께 이 고민을 스스로 더 풀어나가 보자는 의욕이 생기게도 한다.



그래서 부담 없이 책을 들었다가 어느덧 깊은 사색의 길로 산책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 같다. 나를 돌보고, 나를 지킬 수 있는, 진정한 나를 가꾸는 내 안의 사유의 힘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철학을 위한 입문서로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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