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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말을 걸 때 - 아트 스토리텔러와 함께하는 예술 인문학 산책
이수정 지음 / 리스컴 / 2025년 6월
평점 :
필자는 나이대별로 그림을 감상하는 방식이 달랐던 거 같다.
10대에는 유명화가의 그림을 감상하며 잘 모르지만, 외워야 할 대상인 양 부담을 가져가며 억지로 눈으로 찍듯 머리에 담았다면, 20대에는 객기 어린 마음에서인지 공부할 생각은커녕 느낌대로, 끌리는 대로 마구마구 마음에 담아두었다.
그렇다면 40대 후반인 지금은 어떠한가?
전시회에 가기에 앞서 기본 배경지식은 따로 검색하여 사전 공부도 하고, 관련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는 편이다. 그리고 전시회에서 한 번씩 훑듯이 그림을 감상한 뒤 마음에 들었던 그림에 머물러있는 방식을 택하는 거 같다. 즉, 머리와 가슴을 온전히 가동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을 울리는 그림도 꽤 많아지는 거 같다. 아마도 그림에 대한 배경을 알고 느끼기에 그러하지 않을까?
요즘은 예전보다 그림을 이해하기에 좋은 시기인 거 같다.
관련 정보도 다양해졌고, 예술 관련 종사자도 그 영역이 넓어지고, 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대중들의 미술에 관한 관심이 커져서인지 훌륭한 전시회가 자주 열리는 거 같아 내심 기쁘다.
이런 즐거운 예술 여행에 꼭 챙겨가고 싶은 책이 있어 소개한다.
아트 스토리텔러인 이수정 씨의 《그림이 말을 걸 때》라는 책인데, 서평을 쓰기 위해 배송받은 날에 읽기 시작해 이틀 만에 읽어버릴 정도로 매력적이다.

저자 이수정 씨는 홍익대 미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미술 전공자이자 경영을 따로 전공하여 기업의 강연가로 25년간 활동한 다소 어울리지 않은(?) 이력을 지닌 이다.
하지만 그간 강연 내용이 ‘아름다움을 읽는 힘’이었던 걸 보면, 예술과 동반한 삶을 직접 살아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녀가 표방하는 바도 예술에 대한 단순한 감상을 넘어, 예술을 통한 자신과 삶의 통찰로 이끄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은 그림 속에서 나를 찾고(1장, 그림 속에 내가 있었다), 삶을 견디며 그림을 그려낸 예술가를 바라보게 하고(2장, 예술가의 상처와 삶을 견디는 그림들), 언어만큼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듣게 하고(3장, 그림, 또 하나의 언어), 그림을 너머 그림 밖을 이해하도록(4장. 그림 너머의 모든 것) 구성되었다.
각 장마다 주제에 아우르는 저자의 이야기가 나오고, 작품마다 얽혀있는 이야기와 그림이 그려진 시기나 작가에 대한 정보를 담아냈다.
제일 처음 소개하는 작품이 고야의 것이라 더욱 끌렸다. 고야의 작품을 무척 흠모하는 필자는 그의 작품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도 다녀온 적도 있을 정도이다. 특히 저자가 풀어낸 고야의 작품 ‘산 이시도로 축제의 순례’와 ‘축제 날의 산 이시도로 초원’의 비교가 인상적이다.

젊은 시절 고야의 그림과 세월이 흐르고, 두 번의 전쟁을 목격한 뒤 그려낸 동일한 대상의 작품은 어찌 그리 달라졌는지. 말 그대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는 게 확 와닿았고, 이전 내 생각과 모든 판단에 대한 의심이 들면서 사람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여기에서 필자는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 그렇다면 어제와 다른, 일 년 전과 다른, 10년 전과는 다른 더 성숙해진, 깊어지는 나를 기대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자못 달라질 나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어본다.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될까? 지금보다는 더욱 현명해질 필자를 기대해 본다!
이와 비슷하게 또 울림을 주는 작품과 명문장이 있어 여기에 담아본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두 점이 그것인데, 첫 번째 작품인 피에타는 그의 젊은 시절에 조각되어 완벽한 조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89세의 죽기 직전까지 다듬던 피에타는 그야말로 미완이다. 하지만 그 미완의 작품에서도 저자는 삶의 무게와 고독, 그리고 깊은 성찰이 담겨있다고 본다.

마치 우리에게 우리만의 방식으로 상상해 보라는 기회를 주려는 거 같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을 마주했던 날의 그 감상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뒤늦게 저자의 마음을 대변한 듯한 글귀를 찾았다고 고백하였는데, 그것을 옮겨본다.
‘수십 년간 매일 매일의 시간 흔적이 세월의 흐름을 따라 점점 희미해지고 급기야 언젠가는 사라질 것을 짐작하는 일은 강한 울림을 준다. 영원하지 않은 인간이 영원한 시간 속에서 되풀이해 묵묵히 쌓은 흔적은 왜 하나같이 뭉클한가.’(출처: 김은경<습관의 말들>, 도서 출판 유유) - 133쪽
그리고 2장 예술가의 상처와 삶을 견디는 그림들 파트에서는 가슴 아픈 로세티의 연인 베아트릭스의 이야기와 낮은 계급과 여성이라는 벽을 당당히 부수고 앞으로 나아간 멋진 여성 화가 수잔 발라동의 자화상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프리다와 디에고와의 사랑은 가슴 아팠다. 여기서 어쩔 수 없이 그와의 질긴 인연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말을 옮겨 적어본다.
‘디에고는 하나의 우주였다, 우주가 아무리 나를 아프게 해도, 우주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 167쪽
프리다 칼로의 작품 <우주, 대지, 디에고, 나,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을 보면서 저 말의 뜻을 곱씹어 본다. 정녕 그들 사이는 불가분의 관계였나 보다.

3장에서는 낯선 이름을 만나게 되지만, 곧 그의 작품은 인쇄물만 보고도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가슴에 스며들었다. 바로 월터 랭글리.
특히 그의 <고아>라는 작품은 가슴 아프지만 연대의 힘을 느끼게 하는 묘한 희망을 주는 작품이다. 아이의 상실을 넘어 앞으로 서로 보듬으며 살아갈 이야기가 전해져 깊은 감동을 느낀다. 아이는 잘 자랐겠지?

이처럼 그림이 말을 걸어올 때, 내 삶은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워진다. 그 감동을 미술관에 가지 않고도 이 작은 책 하나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어 정말 멋진 경험을 선사해 준 저자에게 감사하다. 전시회에 가기 전, 여행을 준비하기 전, 무엇보다 그림 너머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가 궁금해질 때 읽으면 더없이 좋은 책이다. 모든 이에게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