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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평점 :
빌 게이츠의 회고록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워낙 유명인의 자서전이라 출간하자마다 반응이 뜨겁다!
책을 받아드니 이번 책은 시작을 알리는 1권으로, 앞으로 2, 3권이 더 나온다고 하는데 1권도 꽤 두께가 두껍다.

이번 1권은 빌 게이츠의 인생 초반과 가족, 주변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그리고 하버드 대학 초년 시절을 이야기하며, 사업적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태동하려는 시점까지 나온다.
어린 시절의 빌 게이츠는 그야말로 부적응아와 같았다. 빌 게이츠 본인도 오늘날 어린 시절을 보낸다면, 아마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을 거라 말한다.
그의 가족은 다정하고 현명한 할머니부터 언제나 체계적인 계획이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붓한 가족만큼 넉넉한 집안 경제 사정과 괜찮은 사회적 배경을 갖췄음에도 빌 게이츠 그 자신이 일반적인 어린아이와 같지 않음에 여러 가지 갈등의 장면이 나온다.
"초등학교 초기에 나는 집에서 혼자 많은 책을 읽었다. 혼자서 학습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고, 삽화가 들어간 이야기책을 즐기며 새로운 사실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학교는 느리게 느껴졌다. 배우는 내용에 흥미를 유지하기가 어려워 생각이 이리저리로 방황했다. 무언가가 내 관심을 끌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손을 흔들거나 답을 외치기도 했다. 수업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억제되지 않는 활기찬 상태로 마음이 쉽게 전환되었다. 동시에 나는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64쪽"


어린 시절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강렬한 열정을 보이지만 다른 데에는 반항과 짜증, 불만족을 드러내곤 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기를 즐기는 반면 사회적 상호 작용에는 무관심했다. 학교에서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똑똑한 광대 포지션을 자처했다. 집에서의 반항과 투쟁은 점점 심해졌고 학교 성적도 떨어졌다.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발현되는 반항적인 10대 시절에는 부모님과 많은 부분에서 부딪쳐 2년간 정기적인 상담을 받으러 다닌 일화도 나온다. 그나마 5학년부터 시작된 상담사와의 소통을 통해 차츰 개선된다.
"내가 부모님과의 상상 속 전쟁에서 승리할 운명이었다. 해가 갈수록 내 독립심은 더욱 커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혼자 살게 될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내내(그리고 이후로도 쭉)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사랑해 줄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전쟁도 이기고 사랑도 잃지 않는다! 크레시 박사는 규정하지도 지시하지도 않으면서(A)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고(B) 내가 영원히 부모님 밑에서 살지는 않을 것이며, (C) 부모님은 정말 중요한 여러 사안에서 나의 동맹이고, (D) 부모님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부모님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세상에 나가면 필요하게 될 기술을 습득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126쪽 "
청소년기에 접어든 빌은 사립 중 고등학교인 레이크사이드 스쿨에 진학한다. 그러나 그의 학창 시절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빌은 인생을 바꿀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켄트 에번스였다. 켄트는 신체적 장애를 안고 태어났지만, 강한 의지로 이를 극복한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친해졌고, 어느 날 학교에서 전화선을 통해 메인 컴퓨터에 접속하는 시분할 시스템 단말기를 발견하게 된다. 이때부터 빌은 논리적 사고력과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깊이 빠져든다.

그 무렵, 상급생 폴 앨런이 빌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본다. 폴은 프로그래밍에 대한 빌의 열정을 더욱 자극하며 그의 실력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여기에 또 다른 상급생 릭까지 가세하면서, 빌, 폴, 켄트, 릭 네 명은 서로 협력하며 프로그래밍에 몰두하게 된다.
마침내 이들은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된다. 레이크사이드 학부모 중 한 명이 운영하는 벤처 기업을 통해 DEC 사의 컴퓨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은 시스템 오류를 발견하고 보고하는 역할을 맡아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다루기 시작한다. 빌은 점점 더 프로그래밍에 깊이 빠져들었고, 밤이면 몰래 집을 빠져나와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연구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켄트와 릭이 먼저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빌과 폴은 남아 밤을 새우며 새로운 코드와 프로그램을 연구했다. 프로그래머들이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며 배웠고, 버려진 컴퓨터 용지를 뒤져 소스 코드를 분석하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빌은 학업에도 열의를 보였다. 그는 도전적인 과제를 내주는 선생님들에게 자극받으며 더욱 집중했고, 과학과 수학에 대한 탐구심을 키워 나갔다. 특히 그는 기존의 개념에 의문을 던지며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법을 익혔다.
이후, 학교가 새로운 시분할 컴퓨터 업체와 계약을 맺으면서 빌은 또 한 번 중요한 기회를 얻는다. 그는 폴, 릭, 켄트와 함께 프로그램 개발을 맡게 되었고, 이를 통해 실력을 더욱 갈고닦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폴과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빌은 자신의 리더십과 실력을 인정받았고, 추가적인 업무를 맡으며 프로그래밍에 대한 경험을 한층 더 쌓아갔다.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였던 켄트의 사고사로 빌은 위기를 맞기도 한다.

그래도 하버드대학까지 진급한 빌은 그곳에서도 프로그래밍에 대한 열정을 이어나간다. 이 시기에는 다른 학교로 진학한 상급생 폴과 인연을 이어나가며, 아직까진 컴퓨터의 하드웨어에 쏠린 세상의 관심과 달리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 산업에 눈을 뜨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대학 2학년인 1975년에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무명 기업을 창업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라 할 만한 것은 역시 빌 게이츠를 나타내는 것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는 점이다. 아직 개인용 컴퓨터에 대해 여명이 트기 시작한 초창기에 이미 소프트웨어에 대한 그의 열정과 그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책 곳곳에서 일관되게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빌 게이츠를 믿어 주고, 성장하도록 밀어주며, 그의 특이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데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소설 속에서나 나올 거 같은 늘 카드 게임에서 이기는 게임의 최고수 외할머니부터 별난 아들을 키우지만 자식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아버지, 이런 아들을 마냥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보다 아들의 특성을 살피면서 헌신하지만 직장여성으로서도 발전하는 어머니까지 빌 게이츠의 주변인은 정말로 따뜻하고 온화하며, 인내하기까지 한다. 또한 프로그래밍을 함께 연구하는 레이크 사이드와 하버드 대학의 친구와 선배, 그리고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던 선생님들, 하버드 대학의 교수님들까지 빌 게이츠는 결코 혼자서 이 여정을 걸어온 게 아니었다.



만약 이 책의 독자가 학생이라면, 빌의 좌충우돌 학창기 시절부터 컴퓨터라는 확실한 진로를 향한 그 꿈의 여정에 즐겁게 동참하면 좋겠고, 부모라면 유별난 그를 어떻게 지원하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면 좋을 거 같다. 그리고 컴퓨터, 특히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은 어린 공학도들은 현재 컴퓨터가 상용화되기까지의 역사, 그리고 초기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등에 초점을 두고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인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