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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우울증 영수증
류정인 지음 / 라브리끄 / 2024년 11월
평점 :
꾸준한 블로그 글쓰기를 위해 시작한 요일별 주제 중 하나인 <우울증 언박싱>시리즈를 엮어낸 책인 <알록달록 우울증 영수증>.
저자는 우울증을 겪은 (현재 진행 중) 이삼십 대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풀어냈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한국에서 살게 된 저자의 학창 시절은 어눌한 한국말만큼 부적응의 연속이었다. 성인이 된 뒤에도 대학원 진학을 하면서 힘들게 논문을 완성하지만 우울증과 성인 ADHD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20대의 대부분을 우울증과 보내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를 동반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덤덤하게 써 내려가고 있어, 읽는 내내 우울증과 ADHD 증상을 지닌 이의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저자가 그려낸 그의 하루는 아침 잠자리에서부터 사투가 벌어진다. 우울증 치료가 어느 정도 진행된 어떤 하루를 그려낸 부분을 읽어보면, 나름 루틴을 만들어보고자 모닝 미라클을 시작하는 것으로 출발하지만 아침 미션이 끝난 뒤 잠깐 눕는다는 게 4시간을 훌쩍 넘긴다. 아침 루틴인 산책은 생략되고 정크푸드로 끼니를 챙긴다. 또다시 취침... 늦은 밤까지 게임 모드... 우울과 무기력에 취한 하루 일과를 간단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잠과 정크푸드로 가득 찬 저자의 일과를 적어가며 본인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려 한다.
또한 경제적,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현재의 위치 또한 분석한다.
2년간의 직장 열등감과 욕망을 소비로 해소하는 모습들과 어머니로부터 온전히 독립하지 못한 심리적인 상태를 알게 된다.
이제 얼룩덜룩 잡다한 물건들로 어수선한 자신의 방 안을 둘러보며, 마치 해결되지 못한 우울증의 증표 같다 여기며 방과 더불어 마음속 혼란도 정돈을 시작하려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를 하며, 앞이 캄캄한 미래를 바라보던 시선을 자신이 숨 쉬고 살아가는 현재와 연결되는 쪽으로 돌리도록 노력한다. 저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암담함보다 나와 다른 생물과 현재에 연결되는 감각을 최대한 많이, 자주 느끼려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저자가 우울증과 함께한 20대의 실수와 시행착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의 일상을 엮어낸 기록이지만, 우울증 극복 방법이나 완치의 비결을 전하려는 목적은 아니다. 오히려 평생 동안 정신적인 어려움과 함께 살아가야 할 수도 있는 개인의 일상적이면서도 독특한 삶의 방식과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솔직히 담았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우울증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음에도 이를 받아들이고 정리해 나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 책은 정신적 질환을 거부하거나 극복하려는 시선은 아닌 거 같다.
완벽한 정리나 극복이 아니라, 불완전한 자신을 인정하고 글을 쓰면서(저자는 글쓰기를 탈출구로 삼음) 자신의 삶과 내면을 표현하며, 느리지만 구석구석 살핀 우울증을 다시 잘 박싱하고 보관하려 한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함께 할 우울증을 받아들일 공간을 마련한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우울의 일상을 들여다보느라 조금 지친 느낌도 들었지만, 책을 읽으며, 그리고 덮으며, 뭐랄까 햇빛이 쨍한 겨울날을 창을 통해 밖을 보는 기분이었다. 비록 겨울이라 밖은 춥겠지만 단단히 여미고 나가면 맑은 겨울날을 즐길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아마도 저자만의 독특하고 솔직한 우울증 언박싱에 어느덧 공감하게 되어 이런 기분이 드는 게 아닐는지.
한없이 무겁지도, 그렇다고 발랄하지도 않은 좌충우돌 저자의 우울증 경험은 특별한 조언을 주기보다는, 우울증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와 공감을 전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