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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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밤하늘에 걸린 초승달처럼 배시시 웃고 있는 편안한 미소가 그려진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다 늦깎이 소설가로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지만 수필가로서도 뛰어나 읽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작품들도 함께 떠오른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여행'의 즐거움을 알려준 멋진 기행문 작가이기도 하다.

책표지


이번에 나온 책 '사랑이 무게로 느껴지지 않게'는 작가의 오래된 1977년의 수필집인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의 2002년 판을 재편집하여 나온 것이다. 각 글의 말미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글의 발표 연대를 함께 표기하였다. 그래서 글을 읽을 때마다 이 글이 언제 쓰여졌는지 연대를 확인하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책의 내용 중


출간된 지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독자를 끌어당기는 박완서의 수필만이 지닌 매력에 대해 생각해 봤다.

아마도 한국에서, 7,80년대를 여성작가로서 일상을 살아내며 부지런히 써 내려간 그녀의 글을 통해 그 시대의 이야기를 잔잔히 들어볼 수 있어서 아닐까?

그리고 그때마다 느꼈을 감정이나 생각은 가식적이지 않고 정갈한 그녀의 글귀 곳곳에서 전해져 깊은 공감과 감동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은 이렇듯 시골에서 초등학교 때 상경하여 겪은 소심했던 소녀의 상경기부터 네 아이들을 키우고 뒷바라지하며 북적 북적 정신없던 가정주부로서의 삶. 커다란 불행을 겪으며 고통을 마주하던 시기부터 뒤늦게 등단하였지만 여전히 자신의 글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주부가 아닌 작가로서의 고뇌 등등을 시기별로 살펴볼 수 있다.


-내가 남보다 도덕적으로 살았대서가 아니라 부모가 먼저 죽고 자식이 나중에 죽는 것은 평범한 사람 누구나가 누릴 수 있는 순리라고 여겨서이다. 그래서 더욱 내가 당한 남다른 역리가 부끄럽고 사람을 피해 혼자 있어도 하늘 땅이 부끄럽다. 예전부터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것들이 그 애를 읽고 나자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된 것도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낯섦이어서 남들과 조화를 이루는 데 불편할 적이 많다. 다행히 남은 자식들이 창의 불빛을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지척에서, 수프가 식지 않을 만한 이웃에서, 이 나라 끝에서, 혹은 지구의 반대 방향에서 돌봐 주고 걱정해 주어 살아 나가는 데에 힘이 돼 주고 있다. 나는 자식들과 이런 멀고 가까운 거리를 좋아하고, 가장 멀리, 우주 밖으로 사라진 자식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도 있는 신비 또한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남겨진 자유가 소중하여 그 안에는 자식들도 들이고 싶지 않다. 내가 한사코 혼자 살고 싶어 하는 걸 보고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 순순히 외롭다고 대답한다. 그게 묻는 이가 기대하는 대답 같아서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너는 안 외롭냐? 안 외로우면 바보'라는 맹랑한 대답을 하고 있으니, 이 오기를 어찌할 거나.

- 내가 걸어온 길, 58, 59쪽-


두 번째로 꼽는 것은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읽을 수 있어서다. 작가는 실로 격동의 대한민국의 시기를 모두 겪었다. 1931년에 태어나 2011년에 작고하였으니, 굵직한 현대사를 여성으로서 살아냈다.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유년기의 일제 강점 시기 이야기나 한국전쟁, 이산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시골을 유난히 좋아하고 시골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작가가 시골에서 생활하던 유년시절을 신나서 이야기할 때마다, 시대와 맞물린 암울했던 가족사를 살짝 꺼낼 때마다 언뜻 그 시절의 어려움을 짐작할 뿐이다.

7, 80년대 아이를 다섯이나 키우며 가정주부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이지만 그 시대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얘기할 때는 외부로 향한 주파수가 항상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성동본 금혼법에 대해 역사적 과학적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그 근거 없음을 이야기하거나 동네 할머니들의 한담 속에서 찾아낸 지독한 시집살이로 새색시가 담배를 시작한 예를 들어 장발 단속에 대해 한마디 할 때는 속이 다 시원하다. 사람의 내면과 외부로 향한 시선은 매우 정확해서 핵심을 짚어내어 지혜롭게 글로 풀어낸다.

사람의 마음 속엔 이런 용수철 같은 게 있는 법이다. 이 용수철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오르지 않게 법의 규제에도 묘미가 있어야지 미련해서는 안 되겠다. 그중에도 미니스커트나 장발족 단속은 좀 어떨까 싶다. 젊은이들의 옷이나 머리란 어차피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게 마련 아닐까?                               

                                          -노상 방뇨와 비로드 치마, 177쪽-


책에는 작가의 여생이 담긴 사진, 사용하던 물건, 

손편지, 육필 원고 등도 담겨있다.


그리고 부모가 되어 박완서의 수필을 읽으니 또다른 내용들도 눈에 들어온다. 자식을 키우며 지녔던 부모로서의 견고한 철학도 있지만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은, 오히려 앞서가는 시각도 볼 수 있다. 대학에 들어간 딸들에게는 자유로운 연애를 권하거나 아이들과 주고받은 메모나 편지 등에서 권위적이지 않지만 품위 있는 부모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또 어쩔 수 없이 몇 안 되는 갈림길 중 선택을 강요받던 그 시기를 부모로서, 작가로서 어떻게 지나갔는지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된다. 어찌보면 개인주의적이고, 현실참여에 소극적인 지식인이라는 비난을 들을지언정, 자신의 옷이 아니면 절대 입지 않았던 작가 나름의 소신과 우직함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작가의 밑바탕은 이념이나 사상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인정, 그리고 희망에 더 닿아있던 게 아닐까?

나는 또 대학에 다니는 애들이 아침에 학교 갈 때마다 데모하지 말라고 이른다. 혹시 데모에 휩쓸리게 되더라도 행여 앞장서지는 말고 중간쯤에서 어물쩍거리다가 뒷구멍으로 살금살금 빠지라고 이른다. 그 애들의 경멸의 시선이 다소 따갑지만 웅얼웅얼 그런 소리를 한다. 나는 올 1년 내내 이렇게 가족들에게 비겁과 보신을 가르쳤다. 잠 안 오는 밤 문득 이런 내가 싫어진다. 구역질 나게 싫어진다. 이런 1년을 보내고, 또 한 살 미운 나이를 먹고, 추한 나이테를 두를 내가 싫다. 잠 안 오는 밤, 나는 또 1년 동안 내가 작가랍시고 쏟아 놓은 말들이 싫어진다. 나는 또 작가랍시고 느닷없이 선택을 강요당했던 찬반 앞에서 무력하게 떨던 내가 싫다. 찬반 중 어느 쪽이 내 소인인가 보다는 어느 쪽이 보신에 이로울까부터 생각했던 내가 싫다. 실상 나는 내가 작가임에 손톱만큼의 긍지를 못 가진 채 다만 두려워하고 있다. 왜 이렇게 두려워해야만 하는 것일까. 내가 처음 얻어들은 작가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이광수였다. -중략- 내가 그를 용서할 수 없는 한 나는 내가 작가임을 두려워할밖에 없을 것이다.                          

 - 추한 나이테가 싫다, 246, 247쪽 -


그럼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하게 사는 걸까.

나는 어려운 것은 잘 몰라도

사는 행복 중에서 필요하고 갖고 싶은 물건을

벼르고 별러서 장만하는 재미, 

또 그렇게 해서 장만한 것에 대해 갖는 애착 등도

꼭 맛볼 만한 중요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너무 아쉬운 것 없이 다 갖춰 주는 것은

자식에게서 중요한 행복 중의 하나를 빼앗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없는 것 없이 다 갖춰 놓은 곳에 몸만 들어가 생활한다, 그게 무슨 재미란 말인가.

생활에 맥이 풀리면 권태로울 것은 당연하고

자연히 딴 곳에서 재미나 자극을 구할 밖에 없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줘야 할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 아닐까.

완성되고 구비된 물건이나 행복이 아니라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 말이다.

-난 단박에 잘살 테야, 227, 228쪽-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380쪽-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느 연대의 에세이를 읽더라도 인간을 향한 따뜻하고 진심 어린 작가의 애정을 볼 수 있어 그녀의 글에 끌리는 게 아닐까 싶다. 시간이 지나서도 오래 묵은 그녀의 따뜻한 글귀 하나하나가 다시 읽고 싶어지는 건 글 안에 담겨진 그녀의 따뜻한 고백, 응원, 위로 등 진정성이 느껴지기에 더욱 그러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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