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고 이야기 - 공교육의 비밀 병기
임혜림 외 지음 / 포르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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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아이가 초등학생 시절,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SKY 입학을 꿈꾸며 고등학교는 특목, 자사고 진학부터 고민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학업 수준을 평가하는 시험을 아직 치룬 적이 없고, 부모 세대보다는 많이 똘똘해진 아이들을 보며 꿈을 꾸게 되는 게 아닐까? 나 또한 특목고, 국제고 등등의 정보부터 찾아보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전국에 있는 특목, 자사고에 대해서는 알아도 내가 사는 지역의 공립 고등학교의 특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아무래도 공립 학교, 공립 고등학교에 대해서는 특목, 자사고보다 이미지가 좋지 않은 편 같다. 엎드려 자는 학생이 많은, 교사들은 순환 배정이니 학교나 학생에는 크게 애정이나 관심이 떨어지는….


나 또한 공립 학교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매년 서울대 입학자를 15명 안팎으로 내는 시골 공립 고등학교가 있다고 해서 궁금해졌다. 바로 한민고등학교이다. 첫 졸업자를 2017년 배출한 후 매년 일반고 중에서 특목, 자사고에 버금가는 입시 실적을 내는 학교이다. 또한 학원을 전혀 이용할 수 없는 환경으로 공교육의 힘만으로 이뤄냈다는 점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


구조적으로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환경이라 해서 학교의 위치를 찾아보니, 경기도 파주, 주변에 아~~~무 시설도 없는 산골 중의 산골이었다.

정말 이곳으로 경기도의 우수한 아이들이 면접시험까지 보고 들어온다고 하니…. 과연 어떤 장점이 있는 곳일까?


우선 한민고를 간략히 소개하면, 2014년에 군인 자녀 교육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설립된 고등학교이며, 정원의 70%를 군인 자녀, 30% 경기도 거주 학생을 선발한다. 특이한 점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는 거다.

그리고 최근에는 비평준화된 경기도 일반고에서 서울대 등을 포함한 주요 상위 대학의 진학률이 높아 상위권 학생들이 많이 지원한다는 것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공교육 비밀 병기 <한민고 이야기>라는 책에는 이러한 한민고의 교육과정과 학생, 교사, 학부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솔직히 책을 받아 들고 며칠은 읽다가 멈추기를 반복하였다. 마치 교육부 자료처럼 정형화된 디자인과 글씨체, 빡빡한 내용으로 처음부터 빠져들어 읽기 힘들었다. 교육과정 연수 자료를 보는 듯한 많은 양의 정보가 담겨 있어 더욱 그랬던 거 같다.


하지만 책의 중반을 넘어서고, 장마다 실은 학생들의 수기를 읽어가며 조금씩 빠져들어 갔다. 그리고 중간중간 메모를 할 만큼 소중한 대입 관련 정보와 원칙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한민고의 특징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자면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자기 주도와 탐구력을 기르는 학교 교육과정,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 사람들이었다. 그중 개인적으로 꼽은 특징이나 장점 위주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물론 내가 선택한 내용 외에도 책에는 많은 정보가 들어있다. 부단히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골라 정리해 본다.


한민고의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탄탄한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해야 한다.

일단 학교가 구조적으로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환경이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며, 월 1회 귀가가 허용되는 구조이기에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학교에서 지내야 한다. 그리고 휴대전화 사용도 학교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하니 규칙적인 생활과 자기 주도 학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학교와 조금 다른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1학년 때에는 공통 교육과정, 2학년 때에는 진로 선택 교육과정, 3학년 때는 심화 과목 선택 운영을 한다. 이 중 선택 교과에서 이 학교만의 차별성이 드러난다.

수학과 과학에서 보면 보통 3학년까지 운영하는 과정을 1, 2학년에 거쳐 운영한 뒤 3학년부터는 관련 고급 교과를 수강하는 것이다.


고급 교과 과정을 이수하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이나 진로를 정할 때 자신의 관심사를 더욱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을 거 같다. 실제 학생 수기를 보면, 의예과에 진학한 학생이 고3 때 심층 교과로 배운 과정을 다시 대학에 와서 접하게 되었다는 사례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과제 연구 수업이나 학술제 등 장기적인 탐구 프로젝트들도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관심을 가는 분야를 1년 가까이 시간을 쏟아가며 연구해 보는 것이 고등학교 때 가능하다는 것도 신선했지만 이를 통해 많이 성장했다는 학생들의 수기를 보면서 살아있는 교육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창 혈기 왕성할 나이에 그 에너지를 연구 주제를 탐구하면서 보내는 모습을 떠올리니 정말 행복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시에 찌들어 있기보다, 자신이 선택한 연구 주제에 푹 빠져 준비하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좌절, 희열을 느끼며 성장하게 될까? 아주 부러웠던 고등 시절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학생들 전원이 시골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니 학교에서는 더욱 특별한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 학술 대회뿐 아니라 다양한 동아리 부서 운영과 자율 동아리 활동, 15개의 악기 강좌와 오케스트라 운영, 해외 유수 대학과 연계한 국제반 운영, AI 반 운영, 주말의 다양한 종교 프로그램, JROTC반(Junior ROTC) 운영,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초청 강연, 학생 주도의 해외 탐방 프로그램, 도서관 행사인 불광불독의 날 등등

학생들은 학교에서 마련한 다양한 특별 프로그램들을 통해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탐색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특목고, 자사고도 아닌, 더군다나 든든한 재정의 사립고도 아닌 일반 공립 고등학교에서 이 모든 프로그램이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바로 이런 시스템이 가능하게 한 사람들에게 주목해 보았다.

한민고에는 우선 하나부터 열까지 학생들 스스로가 시작하고, 관리하고, 진행한다. 아침에 일어나 시작하는 아침 운동 참여부터 방과 후 활동, 동아리 부서 구성, 연구 주제 선정 등등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여 하는 것이다. 말로만 자기 주도가 아니었다. 스스로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3년간 붙어 다니는 친구들은 경쟁자가 아닌 든든한 동료가 되어준다. 졸업생들의 수기를 보면 다른 학교와 달리 친구들끼리 졸업 후에도 고민을 함께 나누고 연락하며 지내는 등 인생에 있어 '내 편을 얻었다', '함께 나아가는 공생 관계'라고 표현할 정도다. 서로 고등학교 3년을 동고동락하며 진정한 우정과 건전한 경쟁을 하는 바람직한 친구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사들은 교육은 물론 때론 인생과 진로의 멘토 역할을 병행하는 든든한 조력자를 담당하고 있었다. 고교학점제의 선도학교로 다양한 주문형 강좌를 마련하려는 관리자와 교사들의 노력과 개설이 어려운 전문 분야의 과정도 다양한 방법으로 수강하게끔 고민하는 모습에서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지원해 주려는 어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고민하는 연구 주제나 신변 상담 등을 일과 시작 전에 하거나 관심 있는 분야의 전문 강사를 인맥 등을 총동원해 섭외하려는 등의 모습에서 교사로서의 열의가 느껴져 감동스럽기도 했다.


친구들끼리 서로 윈윈하며, 선후배 간에, 앞뒤에서 끌어주며 도와주고, 선생님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니 한민고 사람들 간의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외부와 차단한 뒤, 우수한 학생들만 골라 선별하여 교육하면 이런 이상적인 모습이 나올 수 있을 거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졸업하고 나서도 자발적으로 학교로 찾아와서 후배들에게 애정을 듬뿍 쏟는 졸업생들을 보며 학교에 대한 ‘애정’, ‘신뢰’, 나아가 ‘한민고 사람’이라는 ‘정체성’, ‘프라이드’ 등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학생들, 학부모, 교사들이 서로 신뢰하며, 스스로 그러나 함께 성장하려는 한 마음이기에 가능한 거 같다. 결국 교육이란 훌륭한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사람인 것 같다.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서로를 그리워하고 함께 한다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었다. 개인이 한민고등학교 졸업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고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10주년이지만 앞으로의 한민고 20주년, 30주년이 더욱 기대된다. 그래서 내가 한민고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역시 사람이다.” 225쪽 학생의 수기 중


특히 요즘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힘들어하는 학생, 학부모, 교사에 대한 소식이 많이 들려오는데, 이렇게 한마음으로 사회에 공헌하려는 인재를 길러내는 한민고의 모습을 보니 우리나라의 공교육에 대해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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