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을 휙휙 지나쳐가는 삶의 국면들에 사로잡혀 버리는 내 모습에서 삶 전체를 조감하고, 전체를 관통하는 정리된 생각 방식을 찾고 싶었다.
이를 찾기 위해 읽기 쉬운 책부터 읽어보았지만, 이 또한 기본적인 철학적 지식을 가지도 있어야 가능했다. 삶에 철학을 적용한 에세이 책을 찾던 중 제목부터 끌리는 <사이클을 탄 소크라테스>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제목도 흥미롭지만, 저자 기욤 마프랭 또한 현재 프로 사이클 선수이다. 저자가 사이클과 철학에 심취하여 양립하기 어려운 양 분야의 전문가라 더욱 끌렸다.
전에 어느 신문 칼럼에서 글을 참 잘 쓰는 축구선수(아마 일본의 정대세 선수였던 거 같다)를 알게 되어 그 뒤로 그 선수를 눈여겨본 적이 있을 만큼 운동선수이면서 인문학적 면모를 갖춘 사람들은 아무래도 별종처럼 보이는 거 같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을 운동선수도 이해했으니, 본인이 이해한 걸 쉽게 풀어썼으리라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설명을 기대한 나의 얄팍한 계산도 한몫했다.
-목차-
그런 나의 기대는 <1부 투르를 향하여> 부터 와르르 무너졌다. ㅠㅠ
철학자의 이름이나 사상도 어려운데, 사이클 대회의 준비 과정 및 낯선 스포츠 용어와 선수들의 이름까지….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가상의 사이클 대회에 나온 철학자들의 모습을 그려놓은 유쾌하고 코믹한 철학책을 기대했던 나는 읽다가 집중이 잘 안되었다고 고백한다.
<2부 경기>에서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읽어야 하나 고민하는 부담감을 좀 내려놓고 읽어나갔다. 철학에 대해 잘 모르니 이 벨로조프(사이클을 타는 철학자)들이 난관을 극복할 때 어떤 말이나 행동하는지 그 상황을 상상하며 읽었다.
그랬더니 나름 웃긴 부분도 있고, 밑줄 그을 말들이나 태도도 보였다.
아마도 '철학'이라는 단어에서 주는 부담감을 1부에서는 내려놓지 못하고, '이해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컸던 거 같다. 그냥 그들이 하는 말에 코웃음도 쳤다가, '아,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 대회는 이런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하는군.'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며 읽어나가면 좀 더 재미있었을 거 같다.
이 책에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부터 현대 사르트르까지 시대별 유명 철학자들이 나오고,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처럼 철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유명인들도 나와서 투르에 참가한다.
책을 읽으며, 경기 준비부터 스테이지21까지의 각 유명인들의 말과 태도를 가볍게 읽어나간다면 어렵던 철학도 조금은 가볍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책 속으로>
인상적이었던 몇몇 대목을 적어 보자면
니체를 사랑하는 스포츠맨으로서의 작가의 사심 가득한 이야기이다.
"운동선수로서 나는 이 근대 스포츠 깃발에 새겨진 정신 속에 있어 본 적이 별로 없다. 내가 보기에는 내가 알고 있는 월등한 실력의 프로 선수들에게 중요한 것은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 잘 그리고 멋지게 승리하는 것이다. 화합의 힘이 강조되려면 우선은 개인의 야망이 실현되어야 한다. 타고난 재능으로 이 야망이 실현된다고 믿는 것도 착각이다. 챔피언이 되려면 연구와 작업이 요구된다. 하나의 직업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현대 스포츠는 위선을 띠고 있다. 광고라는 병풍으로 스포츠가 정말 겪고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는 사력을 다하는 어떤 동물성을 띠고 있다. 땀조차 흘리지 않으면서 다만 '유 캔 두 잇'같은 광고 문구만 읊어댄다고 되지 않는다.
나는 니체 철학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올림픽 이데올로기보다 스포츠의 실질적 체험을 더 잘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 사이클 선수인 나는 오늘날 유행하는 이타주의보다 니체가 인정한 개인주의에 훨씬 공감한다. 경쟁과 이타주의는 하나로 결집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립된다. 왜 스포츠가 적과 죽을힘을 다해 맞붙어 싸우는 전투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는가? 그렇게 고백하는 것이 부끄러운가? 우리의 동물적 충동을 감추기보다 경쟁이라는 제도화된 틀 안에서 승화하는 게 낫지 않을까?" -100쪽
위기의 독일팀을 설득하는 감독 아인슈타인의 설명이다.
"시간과 공간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 아니 단 하나의 것이라 봐야 합니다. 전 우주에 펼쳐진 큰 천 같은 것을 떠올려보세요. 당신이 말하는 중력은 터진 구멍, 그러니까 그 어마어마한 천 속에 난 함몰 부분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지구 위에 있는 사이클 선수입니다. 당신은 이 지구 구멍 한 가운데 있습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십중팔구 그 구멍 속으로, 그 바닥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하지만 당신이 뭔가를 한다면! 페달을 밟으면 돼요. 할 수 있다면 페달링을 더 빨리, 더 세게, 더 높이! 왜냐하면 속도가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공간이 그만큼 수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그러니까 자전거는 간단해요. 거리가 줄도록 가속을 하면 됩니다. 이번엔 이해됐나요? 페달에 온몸을 의지하면 구릉의 길이가 좀 짧게 느껴질 겁니다!" -85쪽
아인슈타인은 속도가 증가할수록 공간이 수축된다면서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가속할 것을 요구한다. 한마디로 축지법이 가능하다! 단, 페달을 열심히 밟는다면….
그리스 팀을 이끌던 소크라테스에게 항상 애매모호한 발언으로 화가 난 제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거센 비난을 해오자 오히려 기뻐하며 코앞에 경기를 두고 홀연 자취를 감추는 장면이다.
"사실 난 이 순간을 정말 기다려왔소. 그대들이 나로부터 벗어나는 이 순간을 말이오. 중략. 내가 절대 분명하게 자르지 않고, 그저 질문을 하는 정도에 만족한 것은 그대들 스스로 답을 찾도록 자유롭게 놔두고 싶어서였소. 내 생각엔 그 순간이 이제 온 것 같소. 그대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페달링을 할 때가 온 거요. 자, 따라서 이제 난 엄숙히 선언하오. 벨로조피아의 삶에서 나는 이제 완전히 물러나겠소. "-130쪽
"...진실을 말하노니, 철학을 한다는 것은 해석을 하는 것일세.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게. 그런 게 철학이 아닐세. 세계를 변화시키려고도 하지 말게. 철학은 그런 게 아닐세. 철학은 그저 문제 속으로 각자 들어가는 거제. 자기 견해를 내기 위해서 말이지. 물론 일반적인 철학 이론들은 중요하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이론들을 스스로 실험하는 것일세. 철학은 직접 체험되는 것이네."-132쪽
오호~~철학은 이론들을 아는 것보다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라는 소크라테스 감독의 말이 와닿는다~~
다음은 수도원 생활까지 한 파스칼이 니체와 만나는 장면이다.
니체로부터 신은 없다는 엄청난 소식을 접하고 잠시 허무에 빠져 고뇌는 파스칼. 공허감과 무의미에 대항하기 위한 파스칼의 선택은 과연….
'(니체로부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는 잠시 의기소침하게 자전거 옆에 앉아 있다가 길을 찾으며 어떤 부름을 기다렸다. 그러나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신은 정말 죽었나 보다.
-중략- 이어 파스칼은 아까의 그 이상한 현현, 그러니까 니체가 그에게 했던 말을 다시 생각했다. 다음 투르 드 프랑스를 위해 훈련 중이라고 했다. 경쟁은 그의 새로운 절대라고 했다. 파스칼은 사이클 경기는 하찮은 것이며 사소한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중략- 바로 그런 사소함 또는 하찮음을 인정하고 그저 '놀이'로 하면 되었다. 그냥 하니까 하는 것이다. -중략- 신 없는 삶은 비참한 삶이다. 하지만 신은 더 이상 해결책이 돌 수 없다. 신이 사라지면서 공허가 남겨졌다. 그 공허에 흰 베일을 드리울 필요가 나에게는 있다. 그렇다면 투르가 이 베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140~147쪽
이 밖에도 상금을 공평하게 나누자는 마르크스로 인해 팀원들을 분개하게 만드는 장면까지…. 중간중간 웃음 포인트가 녹아져 있다.
철학에 대한 무거운 부담감은 버리고, 가볍게 다가가면 더 잘 읽히는 철학 코믹버전의 책이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