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메시지가 왔습니다
조피 크라머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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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모든 생명들이 꿈틀대다 못해 에너지가 넘쳐 환희에 몸부림치는 봄.

봄에 어울리는 생명력 넘치는 알콩달콩 로맨스가 보고 싶었다.

독일에서 날아온 로맨스 소설이라 해서 골랐던 책! <메시지가 왔습니다.>

표지는 건조한 메시지들의 나열처럼 재미없게도 디자인되었다. 얼핏 봐서는 가슴 떨리는 사랑 이야기라기 보다 메시지를 예의 바르게 잘 보내는 법이 쓰였을 법한 표지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선입견을 가지고 펼쳐본 소설.



 

프롤로그 시작 지점에서 사랑하는 벤이 1월 어느 날 추락사했다는 주인공 클라라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클라라는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연인이 죽은 이후 내버려진 기분, 혼자 남겨진 기분, 압도당할 만큼 거대한 그림자 형상의 온갖 상념들에 쫓겨 밤이 되면 더욱 심해지는 우울감으로 일상에 내던져진 채로 지낸다.

하지만 출근은 해야 하는 현실. 오히려 일상적인 루틴이 그녀를 연인의 장례식 이후 평온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오도록 해줄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혼자 살아가야 하는 인생에 적응하면서도, 밤이 되면 예전 벤에게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 듯 그의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내본다. 이렇게 보낸 수신인이 없어야 하는 문자는 엉뚱한 이에게 전송된다.

스벤 레만. 유명 잡지사의 경제부 기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사랑하던 연인 피오나의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한 비참한 상황이다.

처음에는 다른 이의 감성 어린 문자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잘못 온 줄 알고 무시하고 지나간다.

 

벤의 죽음 이후로 클라라는 현실 속에 적응하려는 자신과 벤의 죽음에 얽힌 생각에 잠기지 않으면 느껴지는 양식의 가책 사이를 오가면 지낸다. 또한 그녀가 머무는 공간과 도시 곳곳에서는 불쑥불쑥 그와 함께했던 추억이 따뜻하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내민다. 아마도 벤과 함께 했던 시간과 공간에서 공유했던 그 행복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그녀의 일방적인 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도 한몫하는 것이리라.

 

"벤은 클라라가 스스로를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여자라고 느끼며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걸 가장 잘 하는 남자였다. 클라라를 칭찬할 때도 늘 호들갑을 떨며 흥분했다. ... 그런 벤이 어떻게 클라라의 곁을 떠날 수 있었을까? 그토록 클라라를 사랑했는데? 클라라는 내면의 절망감이 점점 고조되는 것을 느꼈다. ...

이보다 더 처참한 일이 또 있을까? 연인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던 한 젊은이의 인생이 비극적인 사고 한 번으로 망가져버린 사건보다 더 처참한 일이?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상을 나누던 단 한 명의 연인에 대해 사실상 거의 아는 게 없었다는 느낌보다 비참한 기분이? 벤은 얼마나 오랜 시간 불안감을 겪었던 걸까?- 34쪽"

 

하지만 이런 그녀의 불안한 심정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위로받지 못한다. 가족을 비롯한 친구, 직장 동료 등 주변인들은 그녀를 도우려 하지만 이들에게 짐을 지우기에는 그녀는 너무나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 타입이다. 외로움과 슬픔, 공허함이 밀려오는 순간마다 하늘에 있는 벤에게 혹시라도 올지 모를 신호를 기다리며 문자를 보낸다. 이젠 매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처럼 자리 잡은 벤을 향한 문자.

 

"계속 자기 생각만 하고 있어. 잘 지내는지 신호라도 보내줘. 대신 날 너무 놀라게 하지는 말고! 영원히 사랑해. 당신의 사샤가. -40쪽"

 

스벤은 또 어떤가? 연인은 떠났고, 직장에서도 예전 명성만큼의 기사를 쓰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던 중 누군가로부터 잘못 온 문자를 직장동료 힐케와 농담처럼 주고받으며 웃음의 소재로 가볍게 삼고 넘어가고자 하지만 어느새 이 문자를 기다리게 된다.

누구보다 사랑을 믿지 않는 냉소적인 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수상한 발신인의 문자를 모아 다시 읽고, 또 읽으며 미소까지 짓게 된다. 마치 첫사랑을 시작하는 십 대 소년의 두근거림이 느껴지기도 한다.

 

"의도치 않았지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핑크 플로이드의 그 음반은 스벤이 이미 오래전부터 모은 컬렉션 중 하나였다... LP 판을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 과연 그 기계가 아직도 작동할까 기대하며 바늘을 앨범의 세 번째 곡인 '타임'에 올렸다. 잠시 후 깜짝 놀랄 만큼 좋은 음질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스벤은 음량을 조금 높이고 병에 남은 와인을 전부 잔에 따른 다음 쭉 들이켰다. 그런 다음 옥상 테라스로 연결된 문을 열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맞은편에 줄지어 늘어선 집 중에는 불빛이 켜진 곳이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달빛이 평소와 달리 높고 밝게 빛나 보였다. 인생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군, 하고 스벤은 문득 생각했다.-57쪽"

 

이렇게 코끝을 간질이는 차가운 밤공기처럼 스며든 스벤의 클라라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될까?

참고로 책의 절반을 넘어서까지 둘은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는 가득 차고, 때로는 가슴 설레기도 했다. 아마도 이미 불행에서 시작한 이야기라서 그런가?사랑하던 연인의 죽음과 그나마 자신의 인생에서 존재감을 확인하던, 어쩌면 자신의 전부라 여기던 직장에서의 실직을 겪은 뒤 이미 바닥까지 내려앉은 클라라가 점점 자신을 찾아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에서 희망에서 발견할 수 있어서? 진정한 사랑을 이제야 하게 되어서?

중년이 되어 오랜만에 읽게 된 로맨스 소설은, 간질거리는 사랑의 시작 단계보다 주변인의 따뜻한 시선(열정 친구 카트야의 든든한 조력, 걱정 어린 어머니와 조부모님들...)과 연인의 죽음 이후의 클라라의 심경 변화와 섬세하게 때로는 클라라와 함께 위안까지 느끼게 하는 작가의 필력에 더욱 집중하며 읽게 하였다.

무엇보다 소설 곳곳에 나오는 핑크 플로이드의 곡명을 검색하며 소설을 읽는 내내 함께 듣는 소소한 즐거움도 느끼게 해주어 정신없던 2023년의 봄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네이버 미자모 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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