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부터 시작하는 나이 공부 - 세 번에 한 번은 죽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루시 폴록 지음, 소슬기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시대보다 가장 오래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노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대한민국에서는, ‘노인’은 미리 대비해야 하는 떠오르는 사회 문제이자 돌봄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거 같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나도 중년이다. 나도 곧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이에 누구나 노인이 되기에 앞서 누구나 이 부분에 대해 마음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준비해 두어야 한다.

노후를 위한 준비는 여러 가지가 있다. 노후자금 준비, 건강관리, 멘탈의 관리, 꾸준히 지속할 관계들, 죽음에 대비한 준비 등등

이는 젊을 때부터 준비해야 한다.

그중에서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와 준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십부터 시작하는 나이 공부>의 저자 루시 폴록은 누구보다 노인의 죽음을 자주 다루고, 그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노인의학 전문의다.


그는 이 책에서 제목과 같이 비록 '오십'이라는 특정 나이를 설정하지는 않았지만, 가급적 이르게 노후에 대해 직면하고 죽음을 준비하고, 이에 관해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말하고 싶지 않은 이 주제는 미리 말해두지 않으면 당연히 오게 될 순간에 대해 미처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게 되기에, 저자는 자신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그간 쌓아온 것들을 설명하며 본격적인 노후에 관한 대화를 돕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피하고 싶지만, 이제는 조심스럽고 까다로운 주제에 발을 내디디며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라고 있다.

2022. 9. 16. 자 신문에서는 혈액으로 암을 발견하는 갈레리 검사가 획기적인 암 치료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인가에 대해 기사가 실렸다. 아이러니하게 바로 뒤이어 부고란에는 프랑스의 누벨바그 거장 장뤼크 고다르 감독이 스위스에서 조력사를 선택해 92년의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도 실렸다.

기사에서는 "고다르가 여러 질환을 진단받은 뒤 자발적으로 생을 끝내고자 했다."라고 한다.

각 정부에서는 매년 기대수명에 대해 발표한다. 이는 그 나라의 보건 의료수준을 나타내기에 의료기술의 지표인 셈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기대수명뿐 아니라 '건강 기대수명' 또는 독립적인고 건강상의 불편함 없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 보여주는 이와 유사한 척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눈부신 의학기술 발달로 인해 급히 죽을 수도 있는 암이나 심장마비와 같은 거물 살인마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만, 새롭게 얻은 긴 삶은 각종 노인 질환들과 함께 힘겹게 오래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고다르 감독처럼 어쩌면 조력사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힘겨운 시간일 수 있다.

<3장. 곡선을 사각형으로 만들기>에서는 이 이환 기간에 대해 나온다. '이환'이란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이르는 개념이다.

삶의 곡선 그래프-세로축은 독립성을, 가로축은 나이를 나타낸다.


위의 삶의 곡선 그래프는 이환 기간이 표현되지 않은 이상적인 그래프이다 건강하게 독립적으로 살다가 죽는 걸 표현했다. 건강하게 살다가 사망할수록 이 그래프는 사각형에 가까워진다.

아래의 그래프는 실제 이환 기간이 표현된 그래프이다. 그래프 모습이 사각형에서 곡선에 가까워질수록 어려운 상황을 나타낸다.

삶의 이환 기간을 표현한 그래프


어쩌면 이 기간을 통제해 볼 수도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 읽어갔다.

물론 여러 가지가 나온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금연하고, 칼슘을 충분히 섭취하고, 여름마다 몇 시간씩 햇살 아래에서 소매를 걷어 올린 채 볕을 쬐며 비타민D를 얻고......

이 모든 걸 아주 어린 나이인 아동기, 더 이르게는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

읽다가 힘이 빠졌다.

이 책은 수많은 노인질환 예방법에 대해 당부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수십 년간 노인들을 관찰하면서 저자가 내놓은 임상에 근거한 잠정적 결론은 특정 식단표나 알약보다 계속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정도이다.

"안심되는 점은, 사소한 변화(신체활동)로 가장 큰 혜택을 얻는 사람은 운동을 제일 덜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보다 더 위로되는 점은 이미 초고령에 접어들었어도 신체 활동을 늘리면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활발하게 움직이면 건강을 유지하고 독립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62p

노인 전문 의사이기에 '뚜렷한 어떤 게 가장 효과가 있다. 이것이 좋다.'라고 강하게 어필하기보다 임상과 여러 믿을 만한 연구에 기반을 둔 조심스러운 제안이라 오히려 더 신뢰가 간다.

다시 아까의 삶의 곡선으로 돌아가면 그 늘어난 기대수명 동안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는 기간도 늘어 우리가 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이 많다.

이 책에서는 이 시기의 여러 명의 노인과 보호자들의 다양한 사례가 소개된다. 이들은 물론 가상의 인물이지만 사연은 노인 의학 전문가로서 실제 겪은 사실에 기반을 둔다. 여러 사례를 중심으로 우리가 이 시기의 노인에 대해 관심을 쏟아야 할 질문과 그 대답, 설명, 해결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다.

주로 고민해 봄직한 주제를 중심으로 챕터를 나누어 이야기한다.

이 책의 차례


낙상, 딱 알맞은 약, 지혜로운 선택(치료에 대해), 사전 연명치료 계획, 치매, 운전, 사전 돌봄 계획, 대리인... 그러나 <4장. 좋은 소식이다!>에서는 이 모든 것에 앞서 가장 중요한 질문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대상은 노인, 그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보고 시작하라고 한다. 노인을 독립성을 상실한 그저 돌봄의 대상으로만 보려는 태도를 경계했다.

우리도 어쩌다 병원의 환자로 신분이 바뀔 때 흔히 이런 대우를 직간접적으로 받을 때가 있다. 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는 빠진 채, 내 증상으로 나를 분류하고, 이에 따른 의료적으로는 합당한 치료만 행해지며, 이에 관해서 일방적인 전달만 받을 뿐이며 대화는 '나'를 제외한 보호자와 이루어질 뿐이다.

귄위있는 노인의학 전문의인 메리 티네티 박사는 노인 치료에 있어 중요한 5M을 말한다.

" 정신 상태 마인드/ 이동성 모빌리티/ 약물치료 메디케이션/ 다중복합성-다양한 상황을 고려한 정확한 진단/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83, 89p

이 마지막 질문인 노인에게 무엇이 중요한가에 관해서는 첨단 정밀 검사가 없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진단과 치료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중요한 질문에 의해 치료 계획도 변경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부분을 읽다 보면 병원 치료만이 절대 선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관절 말고는 상태가 굉장히 좋은 96세의 잭 할아버지는 장수의 비결을 묻는 저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단 한 번도 술이나... 담배나... 여자를 건드려본 적이 없다오. 열 살 때까지는."

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평소 대화하며, 미리 파악해 두는 것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각 장에서 새롭게 안 사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5. 낙상에 관한 네 가지 사실>에서는 노인에게 흔히 일어나는 낙상은 한 가지 원인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낙상이라는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사례에서는 치료에만 초점을 맞춘 현재 의학적 대처를 꼬집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7. 딱 알맞은 약>에서는 지나친 약물 복용과 약으로 인한 다양한 부작용의 사례가 나와있다. 부모님의 평소 복용하던 협심증 약물로 인해 자칫 위험할 뻔한 일이 최근에 있어 더 유심히 보게 된 장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의료보험 제도가 잘 되어있고, 각자 의사들이 분업화되어 서로 고려하지 않고 약을 처방한다. 사슬처럼 약은 더 많은 약으로 연계되어 그 양이 늘어난다. 다약제 복용은 자칫 약물 간 위험한 상호작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남기는 약'과 '버리는 약'으로 복용하던 약을 분류하는 작업이 인상적이었다.

<9장. 우리는 그걸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10장. 치매 대응하기>에서는 치매에 관해 말한다. 우선 치매가 의외로 정확한 진단 검사가 없다는 것에 놀랐다. 치매라는 게 사실 질병이 아니라 여러 증상을 한데 모아서 일컫는 말이고, 치매로 이르게 된 다양한 원인의 질병이 따로 있어서라고 한다. 주변에서 흔히 권하는 영상검사나 기억검사로 일부 질병으로 인한 치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치매가 아닌 다른 문제로 병원에 오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오히려 주변의 이야기와 "우리는 그걸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시작되는 가족의 이야기 속에서 치매를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한다.

이 장에 나와있는 탄자니아의 어느 마을의 치매 방별률을 측정하기 위해 했던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마침내 정식 질문(치매 판단을 위한) 몇 가지를 만들어내긴 했는데, 막상 시작해 보니 그냥 사람들한테 '예전이라면 조언을 구하러 갔겠지만 이제 더는 조언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이 마을에 있냐'라고 묻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214p

아울러 사람들이 끔찍하게 인식하는 치매의 증상은 대부분 병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황이기에 미리 가족들이나 주변인의 관심으로 치매를 조기에 발견하여 증상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대응할 수도 있겠다.

그 밖에도 우리가 미리 결정한 사전 연명의료의향서가 막상 의학적 처치에 들어서면 생각보다 매우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과 이를 위해서는 가족과 의료진과 미리 사전에 아주 자세한 대화를 해두어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노인, 노인을 부양하는 가정, 노인을 다루는 종사자들, 그리고 노인이 될 우리들 모두가 읽어보아야 한다. 누구도 나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기에.

2022년 한국 평균 기대수명 83.5세.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인 1936년의 평균수명은 42.6세였다고 하니 평균수명만으로 가히 의학의 눈부신 발전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100년 동안 의학 기술은 발전하였으나 노인의 삶에 대한 고민은 이제 시작인 거 같다. 패러다임 자체가 아직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해보지 않던, 전에 없던 고민이기에 이제부터라도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이런 고민을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오십부터 시작하는 나이 공부>는 그 길을 자세하게 안내해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