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제공
.
.
🎭

❝ 그 결정적인 순간들 이후 우리는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난도질당한 삶들, 그림자의 피조물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운명의 꼭두각시들.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

<운명의 꼭두각시>는 잉글랜드의 우드컴 가문의 삼대에 걸친 세 명의 여성들이 아일랜드 킬네이 집안의 퀸턴 남자들과 결혼하면서 벌어지는 사랑과 비극적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1900년대 초 영국 잉글랜드와 식민지 아일랜드의 뿌리 깊은 반목의 역사를 생각하면 잉글랜드 여성이 아일랜드 남성과 결혼하는 것은 배신행위와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신교, 구교 갈등, 아일랜드 내에서도 독립에 대한 여러 의견으로 갈등이 심했던 시대다. 영국이 파견한 '블랙 앤 탠즈' 스파이가 혁명군에 의해 퀸턴가에서 목매달아 교수형에 처해지면서 '블랙 앤 탠즈' 군인들은 퀸턴가를 급습해 아버지와 그의 딸들, 그리고 같이 살던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어머니와 아들 윌리는 극적으로 살아남지만 어머니는 비극의 그림자에 자신을 함몰시키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업보처럼 아들 윌리 또한 우드컴 가문의 사촌, 메리앤을 사랑하게 되고 비극은 자신의 시간을 이어 나가지만, 윌리와 메리앤은 자신들의 운명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려 한다.

삼대에 걸쳐 이어진 두 가문의 사랑,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알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들은 사랑의 운명을, 운명의 장난을 받아들인 후 삶을 송두리째 유린당하고 말지만 결국 패배하지 않는다. 망명생활 끝에 72세가 되어서야 자신의 고향 땅을 다시 밟은 윌리, 윌리를 한평생 기다린 메리앤, 그리고 그들의 미쳐버린 딸 이멜다는 결국 가혹한 운명의 꼭두각시의 끈을 끊어버리고야 만다.

❝ 성인들의 삶을 연구해 보면... 공포와 비극이 그들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주님의 삶도 그러하지요.❞

작가들의 작가, 윌리엄 트레버는 야속하고 불가해한 삶이라도 그 안에서 희망과 위로를 찾아내려는 사람들의 힘을 소설 속에서 가느다란 한줄기 빛처럼 끊임없이 드러내다. 그 빛은 어둠이 있어야 드러난다는 듯이.
.
.

#운명의꼭두각시 #윌리엄트레버 #김연옮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온두라스 SHG EP 코판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0월
평점 :
품절


알라딘 원두는 신선해서 향이 좋고 맛도 깔큼합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원두고 기대가 크고 우유와도 잘 어울릴 것 같아 따뜻한 라테를 만들어 마시고 싶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제공
.
정치 성향이 서로 다른 네 식구가 틀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이야기이며, 소설 속 정희와 영한의 가족의 모습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난다.

좌파 성향의 부모와 이대남으로 2를 찍은 아들, 그리고 정의당을 지지하는 딸. 윤정권으로 바뀐 후, 다들 정치 얘기에 더욱 민감해져있다. 급기야 아들 동민과 영환은 관계가 틀어지게 되고 동민은 집을 나가버린다. 가족을 다시 화해시키고자 딸 하민은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하는데 하민은 자신이 레즈비언이고,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며, 그 상대는 터키인이라는 폭탄선언을 한다.

네 식구가 서로의 진심과 고민을 조금씩 드러내며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면서 겨울이 지나고 봄은 다시 시작된다.

젠더 이슈, 젊은 세대의 취업난과 현실적인 결혼 문제, 혐오 스피치, 코로나 이슈, 핼러윈 이태원 사건, 세대갈등과 양극화 등 대한민국이 현재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과 이슈들을 신랄하게 이야기한다. 이니셜 없고 실명을 깐다.

지구본에서 찾아도 작고 작은 나라가 경제와 문화면에서 우등생 반열에 올라섰으나 정치는 여전히 뒷걸음치는 것 같다. '민주주의는 결코 간단한 질서가 아니다. 법 제도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상식과 문화가 받쳐줘야 한다.' '이게 나라냐?' 소리가 절로 나오는 요즘, 파시즘일지라도 현재의 정치 경험도 민주주의 학습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정치혐오나 정치 무관심에 빠지지 않아야 함을 우리는 잊지 않는 게 중요하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나라에도 독일의 보이텔스바흐협약같은 정치 협약이 만들어지는 날이 오기를. 정치에도 꽃 피는 봄이 찾아오기를 바라고 믿고 싶다.


🔖혐오 팬데믹은 한 사회가 공유하는 상식을 무너뜨리고 있고 이것은 민주주의 위기 이전에 한 시대의 정신이 당면한 위기다. 혐오가 분별심을 삼켜버린 다음, 정치적 판단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좋으냐 싫으냐'가 된다. 내 편에 유리하면 옳고 저들 편에 유리하면 틀린 것이다. 수만 개 매체가 난립하는 미디어 과포화 상태에선 정보가 많기 때문에 전체를 보기는 더 힘들어지고 균형감각을 갖기 더 어려워진다. 편향된 정보의 개미지옥, 일용할 양식이 무한 공급되는 병커에 틀어박혀 생각의 히키코모리가 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우루스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공도서
.
1400년대 흑사병이 유행하던 중세 러시아의 루키나 마을에서 태어난 아르세니는 할아버지로부터 약초의 효능을 배워 사람들을 치료하며 살아간다. 그의 마법 같은 의술은 사람들의 신망을 얻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임신한 몸으로 나타난 우스티나라는 여인을 돌보며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가 아이를 낳을 때 제대로 처치하지 못해 그녀는 아이를 낳다 아이와 함께 죽고 만다. 정작 자신이 사랑한 여인을 죽게 만든 죄책감에 빠진 아르세니는 집을 나와 유럽을 떠돌아다니면서 회개와 연인 우스티나와 그의 아들의 구원을 위한 수도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 그는 여러 시대를 살면서 서로 다른 네 개의 이름으로 불렸다. ❞

오만한 마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며 마치, 네 명의 인생을 살듯 아르세니는 유로디비 우스틴, 친구 암브로조의 이름을 딴 암브로시우스, 그리고 수도자 라우루스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인생을 살아간다. 의술을 펼치며 명성을 얻지만 부유와 편리한 삶을 탐하지 않는다. 다양한 인연과 죽음을 마주하며 그의 삶에 대한 성찰은 깊어간다.

그의 인생은 선한 희생을 통한 삶과 죽음, 믿음과 구원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여정이었다. 삶 속의 시간은 선형적이 아닌 와선을 그리며 순환하는 원을 그린다. 우스티나와 그의 아들은 마지막 아나스타시야와 그의 아들과 대칭을 이루고, 늙은 라우루스가 자신의 모습에서 할아버지 흐리스토포르를 본 것도 대칭을 이룬다.

❝ 라우루스는 삶이 시작 지점을 향해 이동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삶은 모자이크 같다. 처음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수없이 만들어낸 조각들(만남, 사건, 등)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모자이크를 만들어 나간다.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삶은 신비 자체다.

#커다란초록천막 을 번역한 승주연 역자의 번역도 매끄럽고 좋았다. 번역이 좋았던 것도 이 책을 온전히 즐기는데 한몫했다. 👍

📍416p 150킬로미터->150미터가 아닐지..

🔖'마치 내가 방금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어른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는데 지금껏 내 삶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고 싶은 걸까? 혹은 기억이라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으니 지금까지 겪은 것 중에서 좋은 것만 기억하고 싶은 것일까? 내 기억은 이따금 나를 버리며, 머지않아 나를 영원히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잊히는 것만으로 용서와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은 사실과 다르며 내 질문도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다. 내 삶에서 가장 큰 행복이자 고통인 우스티나 없이는 내 구원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느님,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제게서 우스티나를 구원할 희망이 존재하는 기억을 앗아 가지 말아주십시오. 만약 제 영혼을 거두시어 당신께로 인도하신다면 부디 제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녀가 이 땅에서 한 일로 인해 심판하지 마시고, 그녀를 구원하고 싶어 한 제 간절한 바람으로 심판하여주십시오. 그리고 제가한 일 중 얼마 안 되는 착한 일은 그녀가 한 것으로 기록해주십시오. (213p)

🔖알고 보니 사건들이 늘 시간 안에서 흘러가는 것은 아니더군. 이따금 사건들은 독자적으로 흘러가곤 하오. (256p)

🔖"내가 좀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해볼까 합니다. 나 역시 시간이 없는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알 수는 없을 테니까요. 내 생각에 시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며, 우리가 혼돈에 빠지지 않기 위함인데, 인간의 의식은 모든 사건을 동시에 기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나약함으로 인해 시간 안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345p)

🔖"담수가 염분이 있는 바닷물로 유입되는 것은 이 세계의 달콤함이 결국은 짜고 쓴 것으로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395p)

🔖"바로 그겁니다. 기하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시간의 움직임은 와선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복이긴 하지만 무언가 새롭고 조금 더 높은 수준에서의 반복인 것입니다. 혹은 새로운 사건을 겪긴 하지만 완전히 새롭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겪은 일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46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반 문병욱
이상교 지음, 한연진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공도서.
.
매 학년 시작될 때 친한 친구들과 같은 반 배정을 받으면 왠지 그 한 해가 멋지게 펼쳐질 것 같았고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으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첫 달은 긴장하며 학교를 다녀야 했다. 초반에 만들어진 친구관계가 일 년을 좌우하기에 나에겐 중요한 시기였다. 그때의 긴장과 떨림, 어색함은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진다.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아 온새로미 반으로 배정된 친구들이 새 교실로 들어온다. 예지는 같은 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교실은 벌써 친해진 친구들로 시끌벅적하다. 창가에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혼자 화분을 바라보는 문병욱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친구들이 문병욱의 험담을 한다.

❝ 너 문병욱 바보인 거 알아?❞ 💬💬

항상 주머니에 손을 넣고 혼자 다니는 문병욱을 친구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한다. 그러나 예지는 바보가 아니라고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한다.

미술 시간 문병욱이 그린 예지 얼굴이 마음에 든 예지는 몰래 병욱의 화분에 물을 듬뿍 주며 애정을 쏟는다. 예지는 용기 내 만화책을 읽는 병욱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그 모습을 본 반 친구들도 병욱에게 말을 걸게 된다. 병욱이는 이제 친구들과 잘 지낼 것 같다.

❝ 내일 또 봐!❞

다시 그림책의 첫 부분을 넘겨보다 재밌는 장면을 발견했다. 첫날, 문병욱에 관심 있던 한 친구가 병욱이의 주변을 맴맴 돌면서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혼자 놀고 있다. 이 친구도 쑥스럽고 긴장돼 병욱이에게 말을 못 거는 것 같다. 그러다 예지가 병욱이에게 말을 거는 것을 보고 용기 내 병욱이를 위해 만든 노란 종이비행기를 병욱이에게 날리게 된다. 💭


친구에게 용기 내 말을 거는 게 두렵고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말을 건네다보면 그 친구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 학기의 긴장감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고 용기를 주는 멋진 그림책이다.
.
.

#우리반문병욱 #이상교 #한연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