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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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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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이 책은 도나 해러웨이가 1978년에서 1989년에 걸쳐 발표한 10편의 논문을 담은 책으로, 그 유명한 '사이보그 선언문'이 8장에 실려있다.

첫 장부터 익숙지 않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용어들과 정의, 이해하기 쉽지 않은 문장들이 허들을 이룬다.  페미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하는 책이지만 쉽게 쓰인 책은 절대 아니다.  기존 관념의 전복이 수차례 등장하고 해러웨이의 글은 거침없이 달려나간다.

❝ 경계에 있는 특이한 존재들, 즉 영장류, 사이보그, 여성이 이 책을 채운다. 이들은 모두 진화와 기술, 생물학이라는 서구의 거대 서사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총 3부에 걸쳐서 기존 유럽계 미국인 페미니스트의 와해되는 과정과 이후 사이보그 페미니즘의 가능성의 문을 연다.

🔖생물학은 아버지의 말에 의해 잉태되고 창시된 생명과학이다.(128p)

객관적 과학과 이데올로기적 오용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없는 가부장적 지식 및 관행과 관련된 공학으로서의 생물학의 변종들이 있다. '과학과 인본주의는 언제나 협력자'였고 '그들의 결합으로 가부장적인 목소리가 탄생하게 된다.' 자연과학 분야의 페미니스트들의 좋은 학문과 과학을 정의하는 조건을 위한 투쟁을 위해 발화의 조건에 관한 수사학적인 전략은 흥미롭다.

비교적 흥미롭게 읽은 7장에서는 젠더와 섹스의 복잡한 분화와 융합과정을 통해 페미니즘 담론을 엿본다. '젠더에 관한 모든 근대 페미니즘적 의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을 집단적.역사적 과정 중의 주체로서 구성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던 사회적 조건 속에서,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1949)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에 토대했다. 젠더는 수많은 투쟁의 장에서 성차를 자연화하는 것에 반발함으로써 발전된 개념이다.' (237p) 젠더는 <무엇을 여성으로 간주하는가>를 탐구하며 당연시됐던 것에 문제 제기를 하면서 발전했다.

8장에는 사이보그 선언문을 실었다.

❝ 우리 모두는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으로 이론화되고 제작된 키메라다. 한마디로, 우리는 사이보그다. ❞

'사이보그는 오이디푸스적 기획 없는, 유기체적 가족 모델을 따라 공동체를 꿈꾸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유기체와 기계의 혼종이며 페미니스트 주체성을 형상화하는 이미지다.

🔖사이보그 이미지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몸과 도구를 설명해 왔던 이원론의 미로에서 탈출하는 길을 보여 줄 수 있다. 이것은 공통언어를 향한 꿈이 아니라, 불신앙을 통한 강력한 이종 언어를 향한 꿈이다. 이것은 신우파의 초구세주 회로에 두려움을 심는, 페미니스트 방언의 상상력이다. 이것은 기계, 정체성, 법주, 관계, 우주 설화를 구축하는 동시에 파괴하는 언어이다. 나선의 춤에 같혀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328p)

줄쳐가며 인덱스 붙여가며 읽긴 했으나 제대로 읽은 건지,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최근 몇 년 전에야 겨우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오물거리고 관련 책들을 읽은 내가, 오래전 부터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넘나들며 앎의 체계를 만드는 주체로서 페미니즘을 구체화하고 체계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여성들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이다.

무엇이 여성을 만드는가?

🔖구성적이고 인공적이며, 역사적으로 우연적인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성의 본성을 음미하는 행위는 불가능하지만 너무나 강고한 현실에 저해 있는 우리를, 가능하지만 좀처럼 만날 수 없는 다른
곳(elsewhere)으로 이끌어 줄까? 우리 괴물들은 기존과 다른 의미화의 질서를 밝혀낼 수 있을까? 우리, 사이보그가 되어 지구에서 살아남아 보자!

🔖정치화된 신체 겸 정치제도, 즉 정체(body politic)의 개념은 새롭지 않다.

🔖정치와 생리학의 결합은 과거와 현대에 지배 (domination)를 정당화해 온 방식, 특히 차이에 따른 지배를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불가피하고 따라서 도덕적이라고 보게 만든 주요 원천이 되었다.

#영장류사이보그그리고여자
#도나해러웨이 #아르테 #아르테북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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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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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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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결정적인 순간들 이후 우리는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난도질당한 삶들, 그림자의 피조물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운명의 꼭두각시들.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

<운명의 꼭두각시>는 잉글랜드의 우드컴 가문의 삼대에 걸친 세 명의 여성들이 아일랜드 킬네이 집안의 퀸턴 남자들과 결혼하면서 벌어지는 사랑과 비극적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1900년대 초 영국 잉글랜드와 식민지 아일랜드의 뿌리 깊은 반목의 역사를 생각하면 잉글랜드 여성이 아일랜드 남성과 결혼하는 것은 배신행위와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신교, 구교 갈등, 아일랜드 내에서도 독립에 대한 여러 의견으로 갈등이 심했던 시대다. 영국이 파견한 '블랙 앤 탠즈' 스파이가 혁명군에 의해 퀸턴가에서 목매달아 교수형에 처해지면서 '블랙 앤 탠즈' 군인들은 퀸턴가를 급습해 아버지와 그의 딸들, 그리고 같이 살던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어머니와 아들 윌리는 극적으로 살아남지만 어머니는 비극의 그림자에 자신을 함몰시키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업보처럼 아들 윌리 또한 우드컴 가문의 사촌, 메리앤을 사랑하게 되고 비극은 자신의 시간을 이어 나가지만, 윌리와 메리앤은 자신들의 운명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려 한다.

삼대에 걸쳐 이어진 두 가문의 사랑,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알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들은 사랑의 운명을, 운명의 장난을 받아들인 후 삶을 송두리째 유린당하고 말지만 결국 패배하지 않는다. 망명생활 끝에 72세가 되어서야 자신의 고향 땅을 다시 밟은 윌리, 윌리를 한평생 기다린 메리앤, 그리고 그들의 미쳐버린 딸 이멜다는 결국 가혹한 운명의 꼭두각시의 끈을 끊어버리고야 만다.

❝ 성인들의 삶을 연구해 보면... 공포와 비극이 그들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주님의 삶도 그러하지요.❞

작가들의 작가, 윌리엄 트레버는 야속하고 불가해한 삶이라도 그 안에서 희망과 위로를 찾아내려는 사람들의 힘을 소설 속에서 가느다란 한줄기 빛처럼 끊임없이 드러내다. 그 빛은 어둠이 있어야 드러난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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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꼭두각시 #윌리엄트레버 #김연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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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 SHG EP 코판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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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원두는 신선해서 향이 좋고 맛도 깔큼합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원두고 기대가 크고 우유와도 잘 어울릴 것 같아 따뜻한 라테를 만들어 마시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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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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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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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성향이 서로 다른 네 식구가 틀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이야기이며, 소설 속 정희와 영한의 가족의 모습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난다.

좌파 성향의 부모와 이대남으로 2를 찍은 아들, 그리고 정의당을 지지하는 딸. 윤정권으로 바뀐 후, 다들 정치 얘기에 더욱 민감해져있다. 급기야 아들 동민과 영환은 관계가 틀어지게 되고 동민은 집을 나가버린다. 가족을 다시 화해시키고자 딸 하민은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하는데 하민은 자신이 레즈비언이고,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며, 그 상대는 터키인이라는 폭탄선언을 한다.

네 식구가 서로의 진심과 고민을 조금씩 드러내며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면서 겨울이 지나고 봄은 다시 시작된다.

젠더 이슈, 젊은 세대의 취업난과 현실적인 결혼 문제, 혐오 스피치, 코로나 이슈, 핼러윈 이태원 사건, 세대갈등과 양극화 등 대한민국이 현재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과 이슈들을 신랄하게 이야기한다. 이니셜 없고 실명을 깐다.

지구본에서 찾아도 작고 작은 나라가 경제와 문화면에서 우등생 반열에 올라섰으나 정치는 여전히 뒷걸음치는 것 같다. '민주주의는 결코 간단한 질서가 아니다. 법 제도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상식과 문화가 받쳐줘야 한다.' '이게 나라냐?' 소리가 절로 나오는 요즘, 파시즘일지라도 현재의 정치 경험도 민주주의 학습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정치혐오나 정치 무관심에 빠지지 않아야 함을 우리는 잊지 않는 게 중요하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나라에도 독일의 보이텔스바흐협약같은 정치 협약이 만들어지는 날이 오기를. 정치에도 꽃 피는 봄이 찾아오기를 바라고 믿고 싶다.


🔖혐오 팬데믹은 한 사회가 공유하는 상식을 무너뜨리고 있고 이것은 민주주의 위기 이전에 한 시대의 정신이 당면한 위기다. 혐오가 분별심을 삼켜버린 다음, 정치적 판단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좋으냐 싫으냐'가 된다. 내 편에 유리하면 옳고 저들 편에 유리하면 틀린 것이다. 수만 개 매체가 난립하는 미디어 과포화 상태에선 정보가 많기 때문에 전체를 보기는 더 힘들어지고 균형감각을 갖기 더 어려워진다. 편향된 정보의 개미지옥, 일용할 양식이 무한 공급되는 병커에 틀어박혀 생각의 히키코모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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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루스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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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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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대 흑사병이 유행하던 중세 러시아의 루키나 마을에서 태어난 아르세니는 할아버지로부터 약초의 효능을 배워 사람들을 치료하며 살아간다. 그의 마법 같은 의술은 사람들의 신망을 얻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임신한 몸으로 나타난 우스티나라는 여인을 돌보며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가 아이를 낳을 때 제대로 처치하지 못해 그녀는 아이를 낳다 아이와 함께 죽고 만다. 정작 자신이 사랑한 여인을 죽게 만든 죄책감에 빠진 아르세니는 집을 나와 유럽을 떠돌아다니면서 회개와 연인 우스티나와 그의 아들의 구원을 위한 수도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 그는 여러 시대를 살면서 서로 다른 네 개의 이름으로 불렸다. ❞

오만한 마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며 마치, 네 명의 인생을 살듯 아르세니는 유로디비 우스틴, 친구 암브로조의 이름을 딴 암브로시우스, 그리고 수도자 라우루스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인생을 살아간다. 의술을 펼치며 명성을 얻지만 부유와 편리한 삶을 탐하지 않는다. 다양한 인연과 죽음을 마주하며 그의 삶에 대한 성찰은 깊어간다.

그의 인생은 선한 희생을 통한 삶과 죽음, 믿음과 구원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여정이었다. 삶 속의 시간은 선형적이 아닌 와선을 그리며 순환하는 원을 그린다. 우스티나와 그의 아들은 마지막 아나스타시야와 그의 아들과 대칭을 이루고, 늙은 라우루스가 자신의 모습에서 할아버지 흐리스토포르를 본 것도 대칭을 이룬다.

❝ 라우루스는 삶이 시작 지점을 향해 이동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삶은 모자이크 같다. 처음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수없이 만들어낸 조각들(만남, 사건, 등)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모자이크를 만들어 나간다.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삶은 신비 자체다.

#커다란초록천막 을 번역한 승주연 역자의 번역도 매끄럽고 좋았다. 번역이 좋았던 것도 이 책을 온전히 즐기는데 한몫했다. 👍

📍416p 150킬로미터->150미터가 아닐지..

🔖'마치 내가 방금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어른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는데 지금껏 내 삶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고 싶은 걸까? 혹은 기억이라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으니 지금까지 겪은 것 중에서 좋은 것만 기억하고 싶은 것일까? 내 기억은 이따금 나를 버리며, 머지않아 나를 영원히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잊히는 것만으로 용서와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은 사실과 다르며 내 질문도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다. 내 삶에서 가장 큰 행복이자 고통인 우스티나 없이는 내 구원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느님,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제게서 우스티나를 구원할 희망이 존재하는 기억을 앗아 가지 말아주십시오. 만약 제 영혼을 거두시어 당신께로 인도하신다면 부디 제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녀가 이 땅에서 한 일로 인해 심판하지 마시고, 그녀를 구원하고 싶어 한 제 간절한 바람으로 심판하여주십시오. 그리고 제가한 일 중 얼마 안 되는 착한 일은 그녀가 한 것으로 기록해주십시오. (213p)

🔖알고 보니 사건들이 늘 시간 안에서 흘러가는 것은 아니더군. 이따금 사건들은 독자적으로 흘러가곤 하오. (256p)

🔖"내가 좀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해볼까 합니다. 나 역시 시간이 없는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알 수는 없을 테니까요. 내 생각에 시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며, 우리가 혼돈에 빠지지 않기 위함인데, 인간의 의식은 모든 사건을 동시에 기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나약함으로 인해 시간 안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345p)

🔖"담수가 염분이 있는 바닷물로 유입되는 것은 이 세계의 달콤함이 결국은 짜고 쓴 것으로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395p)

🔖"바로 그겁니다. 기하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시간의 움직임은 와선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복이긴 하지만 무언가 새롭고 조금 더 높은 수준에서의 반복인 것입니다. 혹은 새로운 사건을 겪긴 하지만 완전히 새롭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겪은 일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4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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