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야라 AA TOP #5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9월
평점 :
품절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싶어 주문했어요. 이전에 핸드드립용으로 마실 땐 늘 산미가 있는 걸 주문해서 이번엔 너트맛이 강한 다크로스팅으로 주문했어요. 생각만큼 강하진 않았으나 은은하게 산미도 느껴지고 무엇보다 향이 너무 좋습니다. 알라딘 원두는 늘 가성비 갑이라고 생각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렘 입숨의 책 - 구병모 미니픽션
구병모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공도서
.
🔖......로렘 입숨 같은 더미가 되었다. 행간에 무언가가 숨어 있는 듯하나 실은 그 무엇도 없는 말들.  콘텐츠가 아닌 폼과 셰이프를 위해 만들어진 말들. (71p)

'로렘 입숨의 책'은 원고지 30장 내외의  미니픽션(엽편소설, 초단편소설) 13편으로 이루어졌다.  매 단편이 끝나면 작가노트가 짧게 이어진다.  책 커버를 벗기면 보이는 표지아트는 단편들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깨알같이 그렸 넣었다. 

이 책은 손에 들고 읽기 시작해 밤이 새는 줄도 모르게 쭉 읽어나갔다.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다양한 이야기가 판타지와 현실을 오간다.  초단편이라 가볍지 않을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두세 번 재독할 때마다 행간에 숨은 것들이 보인다. 마치 건빵에서 별사탕을 찾는 것 같다.  인간과 신, 전쟁과 환경, 선악 등 철학적인 주제에서 현실적인 문제까지 넘나들며 이에 대한 작가의 거침없는 사유가 노골적이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특히, '동사를 가질 권리'에서는 소설 즉, '이야기 짓기'라는 것에 대한 생각과 주장이 드러난다.  마치 공해와도 같은,비슷한 콘텐츠와 스토리의 홍수 속에서 작가는 지속적으로 '낯설기'를 시도한다.  주어에 합당하지 않더라도 모든 동사를 대입해 볼 시도 같은 것.  작가는 보편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을 지속적으로 말한다.

구병모 작가의 독특한 문체는 이 책에서도 두드러진다.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단어(한자어)들은 초단편이 가질 수 있는 가벼움을 묵직하게 하고 독백하는듯한 문장들은 이야기에 더 쉽게 몰입하게 한다.  화장(花葬)과 화장(火葬), 조화(造化)와 조화(調和), 꿈, 서바이벌(생존, 경연)등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언어유희도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책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은 '겪어본 적 없는, 흔들림과 기울어짐. 그러나 그 진동과 요동, 가파른 경사 안에서 자신에게 찾아오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스카의 지상화처럼 우리에게 흔적을 남긴다.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조금씩이라도 더럽고 악한 인간(24p)임을, 자연이야말로 얼마나 정직하며 스스로의 실체를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이 담담하게 드러내는지를(25p) 

🔖인간은 하나하나 서로 다른 환경과 내성을 지니고 있어서, 장기간의 가뭄 속에 죽음의 형벌을 받는 자들은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며, 사악하고 부유한 죄인들은 그런 와중에도 기갈을 모르고 아사로부터 자유롭다(30p)

🔖협력, 통솔, 적대관계를 맺음으로써 존재 의미가 확립되는 인간과 달리 신은 그 누구와도 관계 맺지 않는 존재, 그리하여 자신의 역사나 기획 의도에 대해 누구에게도 세세히 설명하고 가르쳐줄 의무가 없었으므로.(32p)

🔖세상의 어떤 글도 존재하지 않음이야말로 자신이 꿈꾸던 궁극의 글쓰기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정적보다 완벽한 음악이 없듯이, 점 하나 찍지 않은 흰 도화지가 화려한 그림을 압도하듯이, 태어나지 않음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삶이듯이. (74p)

🔖아름다움과 기분 좋음에 대한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진 이들이, 무엇을 도구 삼아 타인의 기량과 예술성을 판단한다는 말인가. (103p)

🔖이렇게 실체가 있고 무거운 말을, 인간은 그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난사한다. 허공에 값 없이 흩어지는 말들도 있으며 어떤 말들은 사람의 심장에 가서 박히고 그를 죽인다. 드문 일이지만 특정한 말은 듣고 죽어가거나 반대로 죽어가다가 살아나는 꽃도 있는 것처럼. (203p)

#로렘입숨의책 #구병모 #안온북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로렘입숨은 1500년대부터 인쇄와 조판 산업에서 레이아웃을 편집하는 데 쓰인무작위 더미 텍스트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지만, 읽었을 때 별다른 의미가 없다.
고 하여 아무 글자나 얹어놓은 것은 아니다. 최초의 로렘 입숨은 기원전 45년 키케로의 《선악론》에서 발췌한 문구를 뒤섞어 놓은 것이라고 하며 그 문구는 다음과 같다. Neque porro quisquam est qui dolorem ipsum quia dolor sit amet,
consectetur, adipisci velit고통 그 자체를 사랑하거나 그것을 추구하거나 원하는사람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자이언트 픽
이유리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제공
.
사랑은 오로지 환상이고
오로지 열정이고 오로지 소망이고
오로지 흠모이며 의무이며 복종이며
오로지 겸손함이고 인내이고 조바심이죠
피비에 대한 내 사랑 역시 그렇답니다.
ㅡ 윌리엄 셰익스피어, <뜻대로 하세요>

표제작인 이유리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는 사랑이 지나고 남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이 찾아오면 기존의 감정에 많은 변이들이 일어난다.  그 변이는 그 사랑을 특정하게 하고 고유성을 가지게 한다.  내게 무가치하고 쓸모 없어진 사랑이라고 해서 그것이 단지 '사랑'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유용한 사랑이 된다고 단언할 수 없다.  우리가 무수한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이 여전히 어렵고 힘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진이 친구 영인에게 돈을 받고 성재가 떠난 이후 자신에게 남겨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랑'을 감정전이를 통해 팔았지만 그 감정을 전이 받은 영인이 느낀 사랑이라는 감정은 자신의 감정이 균열되고 변이를 일으켜가며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이물감을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유일성과 일대일성을 가지기에 그 대상에만 유효하고 그렇기에 고통스럽지만 아름답다.  이전 사랑이 떠나면 다른 대상을 향한 또 다른 모양의 사랑이 다시 만들어진다.  영인이 이미 만들어진 타인의 사랑을 전이받고 남편에 대한 사랑이 회복했다고 믿지만, 그 불완전하고 어딘가 불편함을 느끼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인간의 재료가 달라진다면 인간과 세계의 상호작용도 바뀌지 않을까?' (131p)

김초엽의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에서 수브다니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인간화 시술을 받은 안드로이드이다. 그는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인간화 시술을 받았지만 오히려 이후 사랑은 깨지고 만다. 수브다니는 인간화 시술로 바뀐 피부를 원래의 부식이 되는 금속으로 다시 바꾸길 원한다. 수브다니는 자신의 본질을 찾으려 한다. 애초 사랑은 자신의 그 원래 본질 속에서 태어났기에.  금속성 피부로 다시 돌아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마지막 작품 <변화의 실행>의 재현하며 자신의 피부가 부식되도록 하는 것은 그가 가장 아름다웠던 사랑의 순간을 영원히 박제하고자 하는 열망이며 사랑이 변할 수 있음을, 그 빛을 잃어갈 수 있음을 인정하는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진짜 내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란 대체 뭘까요? 그것은 어떻게 태어나서 자라서 한 사람의 뼈를 이루는 걸까요?'(134p)

천선란의 '뼈의 기록'에서 염을 하는 안드로이드 로비스는 자살한 레나의 시신을 염하면서 남과는 다른 그녀의 고유한 뼈가 말하는 것을 읽어 나간다.  피부라는 외피에 가려진 아무도 볼 수 없는 그녀의 뼈들은 그녀의 본질을 대변하고, '뼈는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모두 다르며, 존재하지만 볼 수 없다는 불가능성'(254p)을 가진 점에서 아름답다.  뼈에 대한 이러한 속성은 앞서 말한 사랑이라는 감정과도 닿아있다.

로비스가 모미를 위해 그녀가 죽고나서지만 우주를 유영할 수 있도록 큰 용기를 냈던 마음, 김서해의 '폴터가이스트'에서 사고 트라우마로 왕따를 당하며 유령처럼 지내던 세인에게 먼저 다가간 현수의 마음, 과거 자신을 떠올리며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주경을 구해내려는 설재인의 '미림 한 스푼'의 미림의 마음, 우리가 세상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드는 건 이런 마음들이다. 밤새도록 책의 감상을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단편들이었다.

사랑을 주제로 한 앤솔러지에 담긴 5편의 단편들 사이에는 다양한 사랑의 빛깔과 서로를 보듬는 마음들이 흐르고 있다.  나는 이 따뜻함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 세익스피어의 인용글은 '사랑이었고 사랑이며 사랑이 될 것' (바버라 H.로젠와인, 서해문집)의 제사를 재인용

#내게남은사랑을드릴게요
#자이언트픽 #자이언트북스
#이유리 #김서해 #김초엽 #설재인
#천선란 #독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험이 언어가 될 때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이소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공도서
이 책은 페미니스트로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페미니스트 인식론)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 결과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불편했던 점들이 어디에서 기인하게 됐는지를 좀 더 명확히 알게 됐고 5년도 채 되지 않은 나의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관심의 수준을 벗어나 필수적으로 내가 맞춰야 하는 삶의 방향이고, 저자가 말한 대로 페미니즘은 실천적 학문이기에 내 삶과 동떨어질 수 없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균열을 반가워해야 함을 알게 됐다.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은 내가 못난 사람일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가 나만의 생각에 갖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21p)

1. 페미니즘 인식론
(보편×특수, 지식x, 나×너)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1장 보편×특수 파트는 우리가 쉽게 쓰는 '보편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그 뒤에 가려진 존재들을 상기시킨다. 보편은 사회의 기준점이다. 남성 중심 사고의 결과물인 보편엔 여성과 소수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이 보편에 이르면 이 세상은 페미니즘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목소리를 내는 스피커에 따라 같은 여성들 안에서도 잊힌 존재들이 있다. (이 사실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보편적인 여성을 대표해서 말한다고 할 때 그 보편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게 '나'일수도 있다는 것을.) 소수자나 장애인들이 사회의 보편적 시스템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특수로 밀려났기에 그들의 운동은 인정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보편의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편으로 설정하면 우리는 모두 편한 세상에 살 수 있다.(47p).

'지식은 권력 없이 존재할 수 없다.'(49p) 권력과 영합한 지식은 어떤 이들을 배제한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지식은 특정한 삶의 방식대로 사는 여성들을 칭찬하고 어떤 여성들은 주변부로 몰아간다.' 지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그러한 지식이 어떠한 존재들을 없는 존재로 가려내어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는지에 대해 사유해야 한다. 모든 신념들에 질문을 던지면서 성찰의 과정을 끊임없이 밟아 나가야 한다.

타자에 대한 무관심은 무지로 이어지며 폭력이 될 수 있다. 페미니즘 안에서 '타자화'와 '이분법적 사고'에서 발생되는 문제점들은 내가 평소 불편해했던 지점들이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대립쌍으로 구성된 이분법적 토대위에서 분노가 구성될 때 우리가 제안할 수 있는 대안이란 고작 파괴에 지나지 않는다.'(83p)

2. 페미니즘 인식론으로 세상을 바라본 결과
(계급x여성, 자본×시간, 생산×소비)

저자는 자원 분배의 불평등과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물질적 자원의 차이로 여전히 계급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예를 들어 '계급은 여성의 현실을 가로지르며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여성만을 이야기하는 일이 어떤 여성의 삶을 지우는 일이 될 수 있다.'(99p)고 말한다. 계급은 성별만큼 사람들의 생각을 주조한다. 이는 파트 1에서 읽은 '보편'의 문제와도 닿아있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돌봄 노동자 모두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제공돼야 한다는 주장에 깊은 공감을 하며 돌봄의 시간을 여성에게 한정하지 않고 보편적 노동자를 돌봄 노동자로 설정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있다. '돌봄의 위기는 자본주의 위기이자 우리 자신의 위기이다.'

소비가 어떤 물건을 소유하는 의미를 떠나 타인과의 차별화의 욕구라는 주장은 흥미로웠다. 소비에 따른 다양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소비에서 찾는 것보다 거울상인 생산에서 찾는 것과 노동과 소비라는 것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얽혔는지에 관한 내용 등 생산x소비 파트는 보다 넓게, 미래를 위한 우리의 태도를 성찰하게 하는 부분이기다.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의 첫 책으로 읽게 된 '경험이 언어가 될 때'는 에세이보다는 다소 무겁고 인문서보다는 쉽게 서술됐다. 저자는 페미니스트가 되면서 지금까지 겪어왔던 성장의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는 솔직한 저자의 자기 고백에서 글의 진정성과 힘을 느꼈다. 그 점들이 나를,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을 추동하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폭력관계에서 갈등의 해소는 일반적인 불화에서 늘 그렇듯 서로에 대한 화해나 용서가 아니다. 진정한 갈등의 해결은 피해자의 성장이다. 존재에 매여 있지 않게 되는 것. 가해자의 존재를 나의 삶에서 쫓아내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폭력의 경험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자, 폭력의 경험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23p)

페미니즘적 시각은 단순히 여성으로 태어난다고 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면서 훈련되고 학습된다. 그 지점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어쩌면 내가 마주하기 싫었던 나의 민낯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196p)

#경험이언어가될때 #이소진 #채석장그라운드
#문학과지성사 #채석장그라운드서포터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