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리커버)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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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에서 발견하는 사람 사는 진리를 진솔하게 때로는 유머 있게 이야기한다. 힘을 뺀 솔직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가슴속이 많은 별들로 빛난다. 책을 읽고 나면, 어제와 오늘의 밤하늘이 달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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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의 시간 -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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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이해해 보고자, 야구를 좋아하는 남편을 이해해 보고자 이 책을 제목만 보고 집어 들었다.  그러나, 준삼, 혁오, 기현의 야구판 같은 인생을 읽고 나는 그들이 던진 각종 커브볼, 빈볼, 땅볼, 스트라이크를 맞으며 인생의 진짜 의미들을 하나씩 생각해 보게 됐다.

준삼이는 타고난 야구 실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인생의 다른 길을 택했지만, 그 역시 만만치 않다. 성과 아닌 것이 성과가 되고, 암묵적인 계급이 존재하고, 각종 눈치게임이 판치는 회사라는 곳은 변화는 없고 악취나 풍기고 구역질만 날뿐이다.  도대체 성과라는 게 뭔가.

죽은 진호에게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는 혁오는 야구판에서 정규 리그가 아닌 자기만의 진호 리그를 펼치며 죄책감을 씻어 나가려 애쓴다.  그러나, 진심이나 진실과는 상관없는 오해와 질타의 화살을 맞으며 마운드에 서는 것이 점점 힘들다.

여자라는 이유로 야구선수의 꿈을 일찍부터 포기당한 기현은 스포츠기자라는 판에서 못 다 푼 꿈을 회생시키려 하지만, 정치 이해관계와 권력의 그늘에서 기자라는 직업을 상징하는 정의는 퇴색되고, 여자라는 것이 도구처럼 쓰일 수 있다는 남자들의 시각이 혐오스럽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선발투수의 자리를 진즉 빼앗긴 이들 세명이 불펜의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이라는 포수를 향해 다시 공을 던진다.  그들이 겪은 불편함과 불평등과 죄책감을 씻어가는 과정을 보며 응원했다.  결국 그들을 향한 응원은 비슷한 처지의 우리들을 향한 응원이기도 하다. 스트라이크가 늘 정답은 아니다.  볼 넷이 정답일 수도 있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들의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어서 기뻤다.

인생은 야구다. 야구 경기에서 계투 선수들이 불펜에서 몸을 풀듯 우리 인생에도 불펜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대에 희망이 있나 없나를 논하기 전에, 희망이 없을 수밖에 없는 곳으로 우리를 몰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선발투수가 될 수 없고, 남은 인생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인생은 아직 한참 남았다. 

야구에 인생을 빗댄 것이 식상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구성이나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고 결말을 향해 내달리는 흐름이 꼭 극적으로 만루홈런을 날려 승기를 올린 야구 한 경기를 본 기분이었다. 마지막이  준삼, 혁오, 기현의 웃는 얼굴이어서 더더욱 좋았다.

📖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살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는 놓쳐보기로 했다. 비열해질 기회까지 잡을 필요는 없다고, 놓쳐도 되는 기회도 있다고 일부러 볼넷을 던지는 사람이 알려주었다.(210p)

📖 혁오가 필사적으로 지킨 아름다움이 자신의 조각을 자극했음을, 누구나 아름다움의 조각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겐 서로의 조각을 자극할 힘이 있음을 (2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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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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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라는 이름이 생소해 찾아보니 독특하고 참신한 글쓰기로 문단에 신선한 화제가 됐으나 31살의 나이에 요절해 버린 안타까운 작가였다. 그녀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이어서 그런지 본 수상작 또한 독특하고 이야기가 참신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다.

이야기 구조와 상황 묘사가 무척 탄탄해서 환상적인 상황들이 머릿 속에서 그려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19세 수정은 대학도 들어가지 못하고 요절하게 된다는 점쟁이의 말을 듣는다. 연명을 위한 방법을 알아내고 연명을 위한 투쟁길에 오른다. 연명을 위한 투쟁길은 판타지 영역이다. 판타지 영역으로 들어 온 수정은 이안을 만나 함께 투쟁에 나서고 매단계를 넘어갈수록 투쟁은 힘들어진다. 결국...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며 보게 되는 책이다. 연명의 투쟁은 결국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자기 자신과의 투쟁이고, 외부 요인의 의해 단명 당할 수 밖에 없는 모든 이들의 처절한 투쟁이기도 하다. 책 말미의 작가의 말과 작품해설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 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125p)
📖 도망치는 자는 붙잡히게 되지만, 쫓는 자는 붙잡게 된다. (49p)
📖 모든 게 거짓으로 이루어진 곳에서는 무너지는 것들만이 진실이겠지. (97p)
📖 나에게 그런 것들은 이제 조금도 두렵지 않아. 그리고 나는 그것들의 이름을 실제로 바꾸어 부르겠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영원히.., 그러면 그건 더이상 착각이 아니겠지. (1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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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지킵니다, 편의점 - 카운터 너머에서 배운 단짠단짠 인생의 맛
봉달호 지음, 유총총 그림 / 시공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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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들어가기 전, 도넛가게에서 잠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잠깐 일했지만, 별의별 고객을 다 겪으면서 장사를 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일찍부터 알게 됐다.

매일 다양한 모습의 손님들을 마주하게 되는 편의점이라는 공간.
돈 계산을 잘 하지 못하는 어린이집 꼬마친구들부터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간 사람, 택배 사기꾼, 보이스피싱을 당할 뻔한 손님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한다.

편의점 카운터 너머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사람 사는 이치를 깨닫고 저마디의 사연을 추측하며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고 오늘도 편의점을 지킨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 손님 없는 편의점을 홀로 지킨 친구 정욱과 나눈 대화에선 잠시 눈물 😥 (깨끗한 것들이 시들어간다 에피소드편)

매출의 흐름을 읽으며 앞선 발주를 하는 점주는 인공지능을 넘어서는 뛰어난 '경험 지능'의 소유자다. 사람을 상대하는 편의점 운영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 전후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눈치와 촉이 필요하니 아무나 한다고 뛰어들었다간 큰 낭패를 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편의점 점주 10년 정도 되면,
섭씨 15도 정도의 목소리를 내고,
중용의 미소를 짓게 되는거고,
시월의 오후 2시쯤 되는 대답도 할 수 있게 되나 보다.

시급을 생각하면 글을 쓰는 일이 손해인지 이익인지 알 수 없지만 n잡이 점점 더 절실해지는 요즘, 미래를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편의점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는 작가님, 편의점 시리즈는 재미있으니 힘내시고 계속 써주시기 바란다고 슬쩍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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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김계영 외 옮김 / 레모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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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소름이 돋았는지 모르겠다. 읽는 내내 연필을 들고 밑줄을 쭉쭉 긋게 만드는 문장들이 파도처럼 눈앞에서 넘실거렸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하고 애를 낳고 기르기까지, 여자의 일생이 그려진다.

애를 잔뜩 낳아 자신들의 삶을 재앙 속에 내맡겨버린 '비정상적인 정상'의 시대에서 살았던 할머니들, 여자라는 전통적인 인식과 의무를 무시하고 딸을 키운 그 시대엔 평범하지 않았던 어머니, 결혼생활과 육아와 일을 저글링 하며 아슬하게 살아가는 이 책의 화자, '여자'

자신을 '여자'답게 키우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태도로부터 시작된, 사춘기와 대학생활을 거쳐 만들어 온 '남자로부터 독립된 여성'으로서 살겠다는 의지가, 연애를 하면서부터 삐걱거리고 결혼과 육아를 거치면서는 너덜너덜해진다. 이런 '수련'기간을 거쳐 처지가 익숙해져 버리게 되고 종국에는 '누구의 아내'로서 남는, '얼어붙은 여자'가 되어 버린다. 다르지만 내 얘기다. 이것은 다르지만 당신의 얘기고 다르지만 모든 여성들의 얘기다.

청소년기의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 남자를 만나고 결혼하는 과정, 애를 낳고 내 일을 놓지 않으려는 발버둥의 그 모든 날들이 적나라하다. 날카롭고 정확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날것의 문장들을 마주할 때마다 눈물이 나왔고 긴 한숨이 나왔다. 실리콘 수저로 밑바닥에 들러붙었던 지난 묵은 상처들을 박박 긁어내 내 앞에 내보이며,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거지? 라며 끝없는 질문을 던진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지금의 젊은 여성들은 과거보다 독립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하는 부당함이 존재한다. 내 자궁에 대한 잔소리와, 육아에서 공포심과 죄책감이 들게 하는 방법들은 여전하다.

책을 읽고 두 딸들을 바라본다. 나는 우리 애들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 생각해 본다. 여자에게 주어지는 '완벽'이라는 책임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세대를 초월해 여자들이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얼어붙은 여자는 결국 나의 모습, 내 딸들의 모습이 될 수 밖에는 없다.

📖 가정용품 광고에 나오는 항상 미소 지으며 광택을 내는 젊은 여자의 이미지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고 느꼈다.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의 변화는, 내가 다시 만들어지는 수련(修練)의 역사다. (186p)

📖 가정주부가 되는 것, 나의 공포, 또 한편으로, 독신녀로 사는 것, 텅 빈 존재가 되는 것...우리는 자신의 삶과 자신이 바랐던 삶을 비교하지 않고, 다른 여성들의 삶과 비교하기에 이른다. 결코 남자들의 삶과 비교하지 않는다. (236p)

얼어붙은 여자 출간 후, 아니 에르노는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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