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큼이나 강렬했던 스토리 구성. 초반에 느꼈던 충격 이후 이어진 주인공의 여정은 마치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열심히 사는데 뭐가 이렇게 안 풀리는지.. 이제 좀 뭐가 되려나 싶은 순간조차 약올리는 것처럼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포기 못한 꿈에 드디어 기회가 주어진 줄 알았는데 거기엔 눈부시고 반짝이는 지원만큼이나 가혹한 조건도 따라 붙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 라는 자조섞인 한탄의 말을 중얼거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로버트재단 자체가 거대 자본이 쌓아올린 철옹성이고 그들은 진실과 거짓, 진짜와 가짜 따위를 구분하는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본인들이 믿고 싶은 걸 진실로 만들고 진짜로 믿게 만드면 되는거니까. 자본이 있으면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서 머리가 띵해졌다. 작가의 작품활동을 전방위로 도와주는 등의 친절을 베풀다가 결국에 완성된 작품 하나를 소각해버리는 잔인함. 작가의 행복한 순간을 가장 뼈아프게 만드는게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 소설 속 주인공인 작가는 소각될 자신의 작품을 구해내지만 기가 막히게도 소각되지 않은 작품은 진짜가 아니고 불타는 작품만이 진짜라는 말을 듣게 되고 거기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알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숨겨진 의미까지 굳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진실과 거짓을 드러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게 의미가 있을 것 같냐는 의문을 남겼고 그 점에 대해선 좀 더 생각해 보려고 한다. #북리뷰 #윤고은 #장편소설 #불타는작품 #은행나무 📝 p.47지금으로부터 12년 전. 그 때는 내 인생의 몇 페이지가 전혀 다른 국면으로 넘어갔다고 믿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서 있는 지점은 오래전에 운 좋게 통과했다고 생각했던 그 예전 페이지였다. 페이지의 교란이 있었던 것처럼 다시 그 불안과 초조 속에 놓인 것이다. 조금 더 무뎌진 채로. 📝 p.80너무 앞서 생각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그리거 불편한 버릇이었다. 시작과 동시에 끝을 걱정하던 시기를 지나 언제부터인가는 시작과 동시에 불발을 걱정하는 시기로 접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불미스러운 단어를 집어넣어도 끌려나오는 사건들이 없는 것처럼, 지금 이 모험이 불발탄이거나 오발탄일 리는 없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 p.292어떤 사람들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고치면서 매일을 살아나간다. 발트만이 그런 인물이었다. 이미 지나온 삶에 대해 뒤늦게 꿈꾸는 것이 무모한 일일까. 이미 흘러온 시간은 바꿀 수 없는 것이므로 영 가망 없는 일일까. 📝 p.294어떻게 트리밍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표정을 갖게 된다. 📝 p.312진실이요? 잘 보관하지 못해 부패해버린다면 다 의미 없는 이야기죠. 때로는 알맹이가 아니라 껍데기가 중요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로버트 재단의 액자 틀이 있으면 그 안에 있는 건 모두 믿고 싶은 얘기가 되지요. 그게 썩지 않는 진실입니다. 📝 p.341불타는 작품만이 진짜라고. 불타고 있을 때, 그 순간의 화력만이 사람의 영혼을 움직인다고. 그런 의미에서 화염을 피해 밖으로 나온 건 진짜일 수가 없다고.
뉴욕이라는 도시에 끊임없이 매료되는 나는 이전에 봤던 책의 개정증보판까지 보고 싶었다. 공허한 일상을 지적 허영심으로라도 채우고 싶은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책 제목도 나의 뉴욕 수업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의 개정판인지 몰랐더라도 결국 소장하고 말았을 이유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언제나 궁금한 나는 여행을 통해 그 갈증을 해소하려 했었다. 낯선 곳에 나를 놓아두는 것이 두렵고 겁이 나는 것만큼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자극했기 때문에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감수하면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기회를 만들어 가며 떠났던 것 같다. 생활은 여행과 분명 다를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쯤은 해외에서 거주하는 삶을 꿈꾼다. 외노자의 삶이든, 유학생의 삶이든. 그래서 곽아람 작가님의 이 책을 다시 보며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흥미로웠던 것 같다. 나 대신 내가 꿈꾸는 삶을 살아본 사람의 이야기. 늘 그런 대리만족과 간접경험을 위해 책을 읽는다. 그림을,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한 화가의 그림을 통해 뉴욕을 만나는 기분이라니. 이는 마치 영화 캐롤을 보며 설렜던 그 감정과 비슷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 작가의 사진 속 뉴욕을 보는 것처럼. 호퍼의 그림은 그의 시선 속 뉴욕이 어떤지를 보여주었다. 쓸쓸하고 건조한데 웬지 모를 위로가 느껴지는, 외롭지만 따뜻한 느낌. 그림 속 이 도시의 고독함을 그냥 지그시 오래 쳐다보고 싶어졌는데, 다행히 실제로도 그럴 기회가 서울에 생겨 기쁘다. 그녀의 가감없이 솔직한 글들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고 읽는 동안은 뉴욕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청강생이 된 기분이었다. 미술관에서 하는 수업이라니 설레지 않을소냐. 지나고 남는 건 사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림도 그런 매개체였단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을 건너 그 시절이 내 앞에 당도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아서 전시회 보러 가는걸 그렇게 좋아했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알고보니 나는 오래 살아남은 것들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공통점. 유럽도, 종이책도, 필름사진도. 세월을 견디고 오래 사랑받는 것들, 참 소중하고 아름답다.[내가 밑줄 친 문장😌]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좋은 것보다 싫은 것이 많아진다. 싫은 걸 영원히 멀리하는 꽉 막힌 중년이 되고 싶지는 않다. p. 109한번쯤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보고 싶었다.p. 168책읽기란 오래전부터 내게 또다른 세계와의 만남, 일종의 접신과도 같은 것이었다.p. 204“운명이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삶이란 어떤 면에서 동화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p. 217그림이란 결국 현실의 간난함과 고통스러움을 거르고 가려주는 장치가 아닐까, 이런 순간이면 그런 생각을 한다.p. 246결국 사람이 어떤 장소를 사랑한다는 건 그 장소에 얽힌 추억을 사랑하는 것과 동의어가 아닐까.p. 279 예술가들에게 여행은 자극이다.다른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은 자기 안의 세계에 또다른 문을 열어주는 일인 걸까.p. 308#북리뷰 #나의뉴욕수업 #곽아람 #아트북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능력을 배울 만한 것이었다. 때로는 그 모든 게 만족할 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음 스텝을 얼른 밟고자 하는 의지로 일할 때도 있다. 이런 때, ‘과거보다 나아진 환경에 나를 데려다둔다’는 마음이야말로, 일에서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 P29
잃어버린 것과 갖지 못할 것을 생각하는 시간을 줄이고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 하루아침에 세상이 내게만 좋은 쪽으로 달라지거나, 외부에서 구원이 찾아오리라는기대 대신에, 내가 만들 수 있는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기. 그러다 보면 문득, 만족과 행복이 마음에 가득 찬다. - P26
그 모든 순간에 나는 무언가를 얻는 선택을 하는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그 나날들에 빚져서 오늘의 내가 있다. 과거의 나를 탓하고 싶을 때는, 미래의 나를 위해 더잘 살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꾼다. 이것이 사회인으로살아가는 나의 담담한 최선이다. -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