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에서 소설로
작가의 어느 글에서 읽었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작품에서 자신이 세계를 향해 품어왔던 질문에 대해 찾은 답을 설명해놓았다고 해서 읽게 되었다.
작가가 답해놓은 게 무엇이었는지 아직 내 머릿속에서는 알 것 같긴한데 손에 잡히지 않는 안개 같기에 조금은 더 생각하고 곱씹어야 할 것 같다.








이처럼 지금의 사람들이 핸드폰, 블로그, 검색, 이메일 같은 단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시절의 사람들은 총격, 수류탄, 폭격, 사살 등의 단어에 노출돼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의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불행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행복과 불행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였다. 습관이란 무의식중에 행하는 행동을 뜻한다. 폭력이 몸에 밴 사람은 폭력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인식하지 못함이 그가 속한 세계를 폭력적으로 만든다. 그런 세계에서는 제아무리 비폭력을 주장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그들의 몸은 폭력보다 비폭력을 더 불편해한다. 그걸 가리켜 현실감각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의 신문에는 납치당하고 피 흘리고 관통상을 입고 잘려나간 육체들에 관한 기사들이 가득했다. 유럽에서는 혁명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고, 베트남에서는 매일 전투가 벌어졌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순수한 개인이란 이데올로그들의 강변에 불과하므로, 함께 모여 그런 세계를 형성한 사람들이 자신이나 타인의 몸에 가하는 훼손행위에 지금의 우리와 같은 불편함을 느꼈을 리는없다. 그러므로 정민이 말한 ‘갑자기 자신이 현실의 바깥으로 튕겨나간 것 같은 느낌‘이란 자신이 그 세계, 혹은 현실이라고 부를만한 것과 얼마나 강하게 연결돼 있는지 인식하게 될 때의 느낌일 것이다. 내가 겨험한 바에 따르면 그게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첫번째 단계였다.

그러나 해가 저물어도 그 빛은 키 큰 나무 우듬지에 걸려 있듯, 꿈은 끝나도 마음은 오랫동안 그 주위를서성거릴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런 까닭에 인생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

정민은 내게 아침 아홉시에서 열시 사이의 푸른하늘에 뭉게구름만 몇 개 떠 있다면 수업이고 학생회 일이고 다 팽개치고 궁궐로 소풍을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새로운 잎을 단나무들로 우거진 뒷산을 올려다보며 "그런데 왜 하필이면 뭉게구름이지?"라고 물었다. 정민은 예의 그 깊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아침에 보이는 뭉게구름은 그날이 더없이 화창할 거라는걸 말해주니까 그렇지"라고 대답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옆에바짝 붙어앉은 정민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학생회의 분위기야어떻든 정민은 절대로 자신의 사랑을 감추는 여자가 아니었으므로, 이미 학생회 내에는 나와 정민이 서로 깊이 사귄다는 소문이자자했다. 그 일을 두고 투쟁국장이 학생회에서 일할 때는 좀심가라고 주의를 주자, 정민은 "제가 국장 형처럼 음흉하지가 않아서"라고 대답해 내가 곤혹을 치른 적도 있었다.
그날, 나는 아침 아홉시 십구분에 창문을 열었다가 엄청나게큰 뭉게구름이 학교 쪽으로 떠가는 것을 봤다. 누군가 솜사탕을그대로 뜯어 바람에 날려보낸 것처럼 북슬북슬한 그 구름은 내가탄성을 지르며 바라보는 동안에도 공기의 흐름에 따라 그 모양을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나는 옷을 입고 정신없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며칠 동안 구름 생각만 하다가 결국 도서관에서 찾아본 책에서는, 오전에 생성된 뭉게구름, 그중에서도 내가 본 것처럼 솜사탕처럼 혼자서 떠 있는 뭉게구름은 조금씩 모양을 바꾸다가 결국에는 푸른 하늘로 모두 흩어져버리고 만다고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만이 나를 사랑하고 싶다는 너의 강력한 바람과는 달리 만약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래서 우주 저편 멀리에 사는 외계인들이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이 레코드판을 보게 된다면 제일 먼저 들어볼 사람은 당연히 또다른 칼 세이건이야. 지구에 그런 레코드판이 떨어진다면 제일 먼저 들어볼 사람이 칼 세이건인것과 마찬가지 이치지. 밤마다 텅 빈 우주공간을 바라보며 우리만살기에는 상당히 넓다고 생각해본 사람만이, 그래서 어딘가에서날아올지도 모를 신호를 기다리며 전파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려본 존재만이 그 레코드판을 들어볼 생각을 할 거야. 그 레코드판이 금은방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해보면 간단하게 알 수 있는 문제지. 우리는 자신과 가장 닮은 사람과 연결되는 거야. 

그 장면은 항상 나를 위로해줘. 들어봐, 그건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기적이나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 있었고 이를 증명하는 작은 단서만 하나 있어도 나와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한 사람은 끝내 포기하지 않고 나를찾아올 거란 얘기잖아.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롭다. 그런 탓에 우리는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다른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무주에서정민과 나란히 누워 바라본 밤하늘처럼 인생은 광활하고도 끝이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무한한 삶.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일생, 즉 하나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해 여름 헬무트 베르크에게 들은 얘기 중에 이런 게 있다. 누군가 인도의 시인이었던 카비르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냐? 카비르, 신분이뭐냐? 카비르, 직업이 뭐냐? 카비르. 나는 이 세 번의 카비르라는 대답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나 역시 몇 번을 스스로 물어도 나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간다고 해도 결국 나는 나였다. 그게 바로 내가 가진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2층을 청소하겠다는 내 말에 베르크 씨는 페르시아의 물라 나스루딘에 대한 우화를 내게 들려줬다. 하루는 물라 나스루딘이 마당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어서 이웃사람들이 뭘찾느냐고 물었다. 물라나스루딘은 바늘을 찾는다고 대답했다. 이옷사람들도 물라 나스루딘과 함께 바늘을 찾았다. 하지만 마당을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바늘이 나오지 않자, 이웃사람들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아무리 찾아도 바늘이 없지 않은가? 당연하지. 물라 나스루딘이 대답했다. 바늘을 잃어버린 곳은 집 안이니까. 그럼 집 안에서 바늘을 찾아야지, 왜 마당에서 바늘을 찾는 것인가? 그 어두운 곳에서 어떻게 바늘을 찾는단 말인가. 베르크 씨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얘기라며 날씨처럼 환하게 웃음을터뜨렸다. 인생이 이다지도 짧은 건 우리가 항상 세상에 없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솔직하게 말하자면 잘 모르겠어요.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는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그런데도 거짓이라고 말할 수도 없구요."
"맞습니다. 그게 내가 살아온 인생입니다. 정말입니다."

 섭동에 대한 문장도 그때 외웠다. 별들의 집단 내에서 각별들은 중심 주위를 돌게 되는데, 이런 운동을 일으키는 주된 힘은집단 전체의 중력이다. 그러나 별들은 가까이 지나는 다른 별들로부터 계속 인력을 받는다. 이때 두 천체가 서로 정면으로 부딪치는것을 충돌이라 하고, 진행경로를 바꾸면서 서로 비켜가는 경우를조우라고 한다. 조우가 일어날 때는 섭동을 통해 서로간에 에너지의 주고받음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진행경로와 속도가 변하게 된다. 그게 바로 섭동이다. 천왕성의 경로가 불규칙한 까닭은 그 근처에 있는 다른 행성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다시 찾아오면서 그들을 습격하고 복수하지만. 그리하여 때로 그들은 사기꾼이나 협잡꾼으로 죽어가지만 그들이 죽어가는 세계는 전과는 다른 세계다. 우리가 빠른 걸음으로 길모퉁이를 돌아갈 때, 침대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눈 뒤 식어가는 몸으로 누웠을 때, 눈을 감고 먼저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몇 개의 문장으로 자신의 일생을 요약한 글을 모두 다썼을 때, 그럴 때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는 몇 번씩 그 모습을바꾸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모습의 세계가 탄생했다. 실망한사람들은 새로운 시대,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모르는 척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자!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있다.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겹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믿자! 설사 그 일이 온기를 한없이 그리워하게 만드는 사기꾼이자 협잡꾼으로 우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가 바로 우리에게 남은 열망이므로

사기꾼이자 협잡꾼, 광주의 랭보 이길용이자 안기부의 프락치강시우였던 그 남자에 대해 이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뿐이지만, 어쩌면 그건 우리가 그에 대해알아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죽지 않는 한,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시시각각으로 열망할 테고, 그 열망이 다시그를 치욕스럽되 패배하지 않는 인간으로 살아남게 할 테니까 말이다. 그가 살아남기를 열망했듯이 우리가 살았던 그 시절 역시살아남기를 열망했다. 그 열망은 그의 것이기도 했고, 서서히 무너진 뒤에도 오랫동안 잔영이 남아 있던 그 시절의 것이기도 했다. 

"해진 티셔츠, 낡은 잡지, 손때 묻은 만년필, 칠이 벗겨진 담배케이스, 군데군데 사진이 뜯긴 흔적이 남은 사진첩, 이제는 누구도 꽃을 꽂지 않는 꽃병,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그런 사물들 속에깃들지. 우리가 한번 손으로 만질 때마다 사물들은 예전과 다른것으로 바뀌지. 우리가 없어져도 그 사물들은 남는 거야. 사라진우리를 대신해서. 네가 방금 들은 피아노 선율은 그 동안 안나를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곡이 됐어. 그 선율이 무슨 의미인지 당시에는 몰라. 그건 결국 늦게배달되는 편지와 같은 거지. 산 뒤에 표에 적힌 출발시간을 보고나서야 그 기차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기차표처럼.
안나가 보내는 편지는 그런 뜻이었어.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나는 베르크 씨가 연주하던 피아노 선율을흥얼거렸다. 그건 정민과 보내던 토요일 저녁에 우리가 즐겨 들었던 팝송의 멜로디이기도 했다. <All by myself>. 그러고 보면 나를보덴 호수까지 가게 한 문장도 ‘If all else fail, myself have powerto die‘ 였다. Myself. 나 자신. 마르코니가 대서양 너머로 보낸 거대한 ‘S‘ 처럼 수신될 사람을 찾아서 나아가는 삶. 우주 먼 저편에있을 칼 세이건에게 보내기 위해 지구의 칼 세이건이 보낸 우주선보이저 호처럼 태양계를 벗어난 뒤에도 항해를 계속하는 삶. 단하나뿐인 동시에 여러 겹으로 겹쳐지는 삶, 우리 모두의 일생.

우리는 웃었다. 웃고 난 뒤에 그가 고개를 돌리며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하면 그게 내가 살아온 삶이 되는 걸까요?"
지금은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남양군도에있었다면서 1944년에 일본군이 싱가포르와 필리핀을 함락했다고말한 할아버지의 글 역시 연도만 고치면 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물론 연도를 바로잡는다고 해서 그게 올바른 할아버지의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다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남양군도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에 태평양전쟁의 전세에 대해 둔감할 수도 있었으니까. 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건 우리가 아니라 그 입체누드사진 같은 사물들일 뿐이다.
"사실 나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의 내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잘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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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즈음에 쓴 문학평론가의 영화이야기.
이야기에서 포착한 작가의 섬세한 감각과 논리적인 글의 전개가 돋보인 책.
나이가 똑같은 나랑 비교하니 글을 참 잘 써서 부럽기도 했지만, 이렇게 똑똑한 사람조차도 나랑 같은 고민을 했구나 싶어 되려 위안이 되었다.
이 사람의 최근작을 읽었던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읽어보아야 겠다. 지금의 나보다 10여년 더 산 작가는 30대 후반에 천착했던 질문에 어떤 결론을 내고 있는가의 관점으로.

밑줄은 그을 수 없었다. 이 분의 글은 한 편을 읽어야 의미와 맥락을 엿볼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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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브이로그를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이 책을 덮으며 오전잠을 잤다.
얼굴을 알게되면 작가에 대해 상상하는 내 기쁨이 반감될 것 같아서 미루고 미루다 우연히 알게되면 정말 반가울 것 같다. 그 기쁨이 언제 올지 설레는 하루를 보냈다.
개인적으로 일기시대보다 잘 읽혔다.

《인간실격>의 한 부분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호리키는 말했습니다.
"그나저나 네 난봉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 이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란 게 도대체 뭘까요. 인간의 복수일까요. 그 세상.
이란 것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무조건 강하고준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여태껏 살아왔습니다만, 호리키가 그렇게 말하자 불현듯 "세상이라는게 사실은 자네 아니야?"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호리키를 화나게 하는게 싫어서 도로 삼켰습니다.
‘그건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서하지 않는 거겠지.‘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이 그냥 두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자네겠지
"이제 곧 세상에서 매장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라 자네가 나를 매장하는 거겠지《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인간에 대한 공포로 몸서리치는 인간이다. 특히 요조는 세상에 대한 공포가 아주 크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호리키가 요조에게 "이제 좀 정신 차리라고,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을 때, 요조는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이후로 요조는 예전보다 아주 조금은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다. 이 부분을 읽은 이후 나도 세상을 개인으로 축소해서 생각하는 법을 기르게 되었다. 가령, "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않지만, 사람들은 좀 안 좋게 생각할 수 있어." 누군가 나에게이렇게 말했을 때 ‘세상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니라,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면 세상이라는 커다란 짐은 별게 아닌 것 같고,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다음과 같은 말에도•요즘 누가 시를 읽어?
→사람들이 안 읽는 게 아니라, 네가 안 읽는 거겠지.
・야, 그렇게 시를 길게 쓰면 누가 읽냐?
→네가 안 읽는거겠지.
•너 그런 성격으로는 세상살기 힘들다?
→ 세상이 아니라 네가 날 받아들일 수 없는 걸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나는 세상과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눈앞의한 사람, 개인과 싸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의 싸움은 전쟁이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싸움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세상을 등에 업고 당신에게 상처를 준다면 이렇게 중얼거리면 좋다.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은 거대한 세상이 아니라내 눈앞에 서 있는 작은 당신일 뿐이야.
이건 아주 작고 사소한 싸움일 뿐이야.

결국 선물을 주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게 좋아서 가게에 가서 누구에게 줄지도 모를 선물을 샀다. 도끼 빗을 들고 있는 여자가 잔잔하게 뒤를돌아보고 있는 그림의 책갈피였다.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을 몇 천원에 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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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 - 그때그때 나를 일으켜 세운 문장들 39
대니얼 클라인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히 골라온 책인데
철학자 할아버지의 옛노트를 몰래 읽는 기분이었다.
20대부터 철학을 공부해오며 삶에 흔들리는 자신을 부여잡기 위한 거인들의 문장을 살펴보게 한 책.

과학자였던 내 아버지가 그런 분이었다. 반세기 전, 철학을전공하겠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정신적 자위행위" 같은 말을중얼거렸다. 그 당시엔 손으로 하는 자위행위는 정신적 자위행위든 도덕적으로 해로우며,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으로 여겼다.
아버지에게 철학은 반사회적인 데다가 쓸모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대공황 시대에 태어나 자란 아버지는 ‘유용성‘을 모든 것의 최우선 가치로 생각했다. 쾌락주의자와는완전히 거리가 먼 분이었다. 아버지에게 철학 공부는 순전히시간 낭비를 의미했다.
러셀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철학적 지식이 없다면 스스로 상식으로 인한 편견 속에, 나이나 국적으로 인한 습관적 믿음 속에, 그리고 신중한 이성의 동의나 협조

없이 마음속에 자라난 확신 속에 갇힌 채로 살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 세상은 명확하고 유한하며 뚜렷하다. 일상적인 대상에어떤 의문도 갖지 않으며, 익숙지 않은 가능성은 경멸하고 무시한다. (...) 하지만 철학은 친숙한 대상을 낯선 방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경이감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 모든 세월 동안 각자의 삶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담사가 되어줬다. 좋은 일이 있을 때도 물론그랬다. 철학적 주제를 놓고 우리가 나눴던 길고 격렬한 토론은 내게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더 큰 가르침을 줬다. 하지만 함께 보낸 가장 환상적인 시간을 꼽자면 아무래도 함께 바보처럼낄낄거리며 망가질 때가 아닐까 싶다. 서로를 충분히 믿기 때문에 함께 어리석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덤 앤 더머처럼 말이다.
때로는 배꼽 빠지게 웃어대다가도 잠시 시간이 멈추고 즐거움으로 무아지경이 된 상태에서 ‘영원한 현재 Eternal Now‘(뉴에이지 사상이 제시하는 시간을 지각하는 법에 대한 개념이자, 뒷장에 등장하는 독일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파울 틸리히Paul Tillich가 1956년 출판한 설교집 이름이기도 하다. 저자는 틸리히의 가르침을 받은 경험이 있다: 옮긴이)를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순수한 사귐의 즐거움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홀로 있음의 영광도 사랑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 즐거움은 더더욱 깊어졌다. 혼자 있으면 평화로움과 더불어 살아 있음에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찰 때가 많다. 여름날 내 작은 집 뒤쪽에 훌쩍 자라난 풀과 야생화들을 눈앞에 두고 홀로 앉아 있노라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마저도 떠들썩한 잔치처럼 느껴진다.
내 곁을 지날 때면 아내는 가끔 즐거운 미소를 머금고 나를바라본다. 몇 년 전에 아내가 의자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그리깊이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행복하게 진실을 고백했다. 어떤 깊은 생각도, 심지어 어떤 얕은 생각도 전혀 하지 않고있었노라고. 사실은 그랬기 때문에 진실로 즐거울 수 있었던것이다.
고독에 빠져 있다는 건 분명 이기적인 행위다. 그러나 자기본위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혼자 앉아 있는 건 내가 나임을 자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에 대해 축하할 일이 있다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며, 그 축복은 보통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느껴지지 않는다. 군중 속에서는 그 느낌이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란 우주에게는 굴 한 마리의 삶보다도 중요하지 않다. ㅡ 데이비드 흄

흡이 말하는 ‘보잘것없는 삶‘ 패러다임에 대해 영화계가 내놓는 또 다른 반응도 있다. 스웨덴 걸작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Fanny and Alexander)는 개개인의 삶은 우주 그 자체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에 개개인의 삶이 작고 하찮다고 인정함으로써 오히려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이 작은 세상 안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이 감독한 이 감동적인 영화는1900 대 초 스웨덴의 부유한 대가족 에크달Blkdahl 집안에서 3년동안 벌어진 일을 묘사한다. 극 중에서 에크달 가족은 몇 가지거대한 상실을 겪는다. 어린 알렉산더를 남겨두고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 에밀리는 목사와 재혼한다. 하지만목사는 폭군 같은 가장이자 잔인한 의붓아버지였다. 결말 부분에서 에밀리와 아이들은 자유를 되찾고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와 만찬을 크게 열어 자축한다. 알렉산더의 삼촌 구스타프는건배를 제안하며 사랑스럽고 유머를 곁들인 ‘작은 세상‘에 대한 긴 송가를 바친다.
"세상은 도적들의 소굴이며, 밤은 서서히 다가오네. 악이 사

슬을 끊고 미친개마냥 온 세상에 날뛰네. 우리는 악에 감염되어 도망치지 못하네. 그러니 행복할 수 있을 때 행복해집시다.
친절하고 자비로우며 다정하고 선해집시다. 우리는 이 작은 세상을 즐겨야 합니다. 그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흡이 말하는 ‘굴과 다를 바 없는 하찮은 삶이 구스타프에게는 ‘이 작은 세상‘이다. 꽤 괜찮은 말 아닌가?

꼭 필요하지 않은 물품을 집에 두고 살면서도 나는 옥스팜에한 푼도 기부해본 적이 없다. 인정한다. 그러니 싱어에 따르면나는 근본적으로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당연히 기분 좋다고는 말 못한다. 사실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끔찍하다. 분명 이에 관해서 생각을 좀 더 해봐야겠다. 아니면 옥스팜에 십일조를 내든지 그냥 행동에 옮길 수도 있다.
나는 도덕적으로 적극적이지 못하지만 싱어는 옳다. 세상이정의롭지 않다고 불평하면서 정작 이를 바꾸기 위해 편안한 의자에서 벗어나지는 않는 이들에게 싱어가 가하는 저격에 전심전력으로 동의한다. 위선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사실 가장 기

만적 형태의 위선이라고 해도 좋다. 자신이 위선이라고 부르는대상에게 위선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나는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목청껏 외쳐대는 것만으로 세상을바꾸기 위한 책무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불평꾼들 편은 절대로들 수 없다. 그들의 제1세계 머리 위에 제3세계의 물 한 양동이를 흠씬 끼얹고 싶다.

인생의 의미는 찾았다싶으면 또다시 바뀐다. ㅡ라인홀트 니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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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말을 전해준 괴테 할머니 전영애 작가.
한평생 무언가를 연구했던 사람을 보면 질투가 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엔 귀가 솔깃해진다. 아니 솔깃해지는 것을 넘어 무슨 말이든 믿게 된다.
매서운 바람이 불고 불어 빨래가 떨어지는지 계속 확인하면서 다 읽은 책.
여주에 있는 여백서원에 꼭 가보고 싶다.

눈앞이 캄캄하던 젊은 날,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는가는 생각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만 어떻게 하느냐가 좀더중요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굳이 새로 다른 일을 시작하지 않고, 하던 일을 묵묵히 계속, 성심껏 해왔습니다.
당연히 어느 정도 헤매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무엇을하면 좋을지, 그게 득이 될지 주변을 두리번거릴 시간에 하나를 꾸준히 잘해보는 방법도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늘 비유하는데요, 산에 올라가는 것과 비슷합

니다. 더 쉬운 일은 없어요. 어떤 일을 해도 산 하나를넘는 고비는 있는 것인데, 우리가 산을 넘으려면 저 산이 좀 쉬울까, 이 산이 좀 쉬울까 하고 둘러보면 안 될일이고요. 어떻게든 바로 이 눈앞에 있는 산등성이를꼭 넘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힘든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거 할까 저거 할까, 이게 더 좋을까 저게 더 좋을까 너무 재는 것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것을 믿고, 쭉가보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일을해도 힘든 점은 있으니 산 하나 정도 오르는 공은 들여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힘이 부칠 때 적어도이건 내가 좋아서 택한 것이라는 마음가짐이라도 있어야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도돌이표를 하나 치자면, 무엇보다도 바르게살아야 됩니다. 여기저기서 수도 없이 이야기했습니다.
바르게 살면 큰일날 것 같고, 무슨 수를 써야지만 손해 안 볼 것 같지요? 아닙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도 살아지고, 작은 결단들에서 언제나 선한 결단 쪽을 택해서 묵묵히 가노라면 그것이 쌓여 마지막에는 무엇이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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