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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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인듯 에세이인듯
에세이보다 픽션이 들어간 이야기
이슬아 작가의 글을 대부분 읽어서 소설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는데 비슷한 느낌

"선생님은 먼저 선에 날생이 합쳐진 말이잖아요. 먼저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어떤 삶을 먼저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요."*

슬아는 문득 복희가 없는 미래를 생각한다. 복희를 그리워하며 멈춰 있을 자신의 모습이 꼭 기억나듯 그려진다. 이미 겪어본것처럼, 마치 오래전에 살아본 인생처럼 그 슬픔을 안다. 그는지금 이 시절을 꽉 쥐고 싶다. 그러나 현재는 언제나 손아귀에서쏙 빠져나가버린다.

이런 상상을 해보기로 한다. 하루 두 편씩 글을 쓰는데 딱 세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 세 명의 독자가 식탁에 모여앉아 글을 읽는다. 피식거릴 수도 눈가가 촉촉해질 수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읽기가 끝나면 독자는 식탁을 떠난다. 글쓴이는 혼자 남아 글을 치운다. 식탁 위에 놓였던 문장이언제까지 기억될까? 곧이어 다음 글이 차려져야 하고, 그런 노동이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반복된다면 말이다.
그랬어도 슬아는 계속 작가일 수 있었을까? 허무함을 견디며반복할 수 있었을까? 설거지를 끝낸 개수대처럼 깨끗하게 비워진 문서를 마주하고도 매번 새 이야기를 쓸 힘이 차올랐을까?
오직 서너 사람을 위해서 정말로 그럴 수 있었을까? 모르는 일이다. 확실한 건 복희가 사십 년째 해온 일이 그와 비슷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새삼스레 슬아는 미안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미안함보다 민망함이 앞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때때로 너무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도덕경』을 펼쳐놓고 이렇게 말했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지자불언 언자부지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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