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 소노 아야코 에세이
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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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우주에 관한 해명의 한도가 터무니없게 확대되어가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인간 심리의 한계도 그 어느 때보다 광대하고 깊은 한계를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그다지 복잡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인간의 의지가 어떻게 인간의 행동으로 전달되는지 그 세부적인 방법까지 해명되어온 것 같다. 하지만 그 내용자체는 예로부터 그다지 획기적으로 변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별로 변하지는 않았다‘ 는 것은 아마도인간에게는 구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

들 대부분이 나에 못잖게 게으르다. 우리는 획기적인 것을 바라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도 귀찮다. 사고의 비약을 평범한 우리 생활은 따라가지 못한다. 그럭저럭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30대였을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명상록》을 읽고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써 있는 것은 대부분 내가 느끼고 있는 것과 똑같았다.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것은 쫓지도 피하지도 않고 끝내겠다는 것이다."
라고 아우렐리우스는 쓰고 있다.
"그럴러면 인생에서 몇 가지만 확보하고 나머지는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아울러 다음 사항을 명심하라.
사람은 모두 현재의, 이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삶만을 사는 것임을. 그 외에는 이미 살아버린 것,

혹은 살게 될지 확신할 수 없는 불확실뿐이다. 그렇다, 누구나 인생은 짧으며, 그가 사는 곳 또한 이 대지 중 한 구석에 불과한 아주 작은 점일 뿐이다. 사후의 명성이라고 해서 비록 비할 데 없는 명맥을 유지한다고 해도, 필경 짧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의 생애는 금방 잊힌다. 고마운 일이다. 사람은 죽는 날부터 착실하게 잊힌다는확고한 목적을 향해 걸어가는 여행을 떠난다. 세계과학자들이 우주 공간을 쏘아올린 위성의 파편 천지로 만들고도 전혀 청소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과는 다르다(가장 최근에는 청소를 하자는 계획도 나오는 것 같은데). 우리의 존재는 죽으면 자연스럽게상쾌한 청정과 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체념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유효한 인간관계라고 믿게 되었다. 모든 인간관계는, 그게 잘 안 됐을 때는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의무일지도 모른다. 혹은 명백하게 잘못된 사실로 상대방에게 명예를 훼손당했다면, 신속하게 고소하고재판에 회부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방법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잘못된 생각이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해 반성하게 하는 것, 내 행

!
동의 참뜻을 이해시키는 것, 내가 상대방을 얼마나고려해주고 있는지를 알게 하는 것 등은 처음부터포기하고 넘어가야 한다. 체념이다. 그래야만 나의인간성이 유지되고 평온한 마음으로 살 수 있다는것을 발견했다. 친구에게 오해받는 것도, 가족 중 누군가와 말이 안 통하는 것도 처음부터 포기해버리면 아무 일도 아니다. 그 결과 "나 자신의 영혼 속만큼 더없이 평화롭고 한적한 은신처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한 아우렐리우스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는다른 사람과의 항쟁에서 도망침으로써 큰 바다의거센 파도에 휩쓸려 가기 전에 바닷가를 떠날 수 있었다.
아우렐리우스는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본질적인 8개 조항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다음과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 모든 것은 우주의 이치에 따라 일어난다.
O잘못은 타인이 저지른 것이다.
0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언제든지 그렇게 일어났고, 미래에도 일어날 것이며 현재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0 모든 것은 주관일 뿐이다.
0 각자사는 것은 현재이며, 잃는 것도 현재뿐이다.

방의 비그녀는 선의에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자전거를 받게 될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오랫동안 소중히사용하겠습니다."라고 인사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잘못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녀처럼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의마음을 결정해버린다. 고마워하겠지, 미안해하겠지, 좋아하겠지, 라고 미리 상대의 반응을 정의해버린다. 나의 마음조차 시시때때로 변하는데, 타인의마음이야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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