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과 서쪽으로
베릴 마크햄 지음, 한유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커버 디자인은 예쁘고 좋은데 띠지에 들어갈 법한 문구가 표지에 있어 아쉽다.



1.
베릴 마크햄, 나로서는 생소한 이름의 작가였다. 정확히는 작가라는 타이틀은 그녀를 나타내는 한 가지 푯말일 뿐이지 실질적으로 대서양을 횡단한 최초의 여성비행가로서 명성이 높다. 이 같은 사실을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가려진 역사의 트리비아쯤으로 여길지 모른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아도 딱히 득 될 것이 없는 지식 말이다.
베릴 마크햄은 영국 레스터 태생이었지만 일생을 거의 험준한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유년시절엔 주변 원주민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사냥을 하며 야생을 체화하고 성인 무렵 경주마 조련사로서 당찬 길을 걷는다. 육(陸)화된 자신을 시험대에 올릴 기회를 비행에서 찾고 무타이가 클럽을 본부로 삼은 프리랜서 비행사가 된다. 산소통이나 약품 등을 구해 전달해주거나 코끼리 서식지를 파악해 사냥을 돕는 일 따위를 하던 그녀는 문득 비행대회 소식을 전해 듣고 영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도전을 한다. 홀로 서쪽으로 대서양을 비행하는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마침내 그녀는 짙고 아득한 검은 바다와 하늘을 날아간다.


​​2.
사소설에 가까운 에세이, 이 밤과 함께 서쪽으로는 단순한 야생-비행 일지로 격하될 수 없는 매력이 곳곳에 숨어있다.
가령 위의 간략한 소개를 읽는다면 기승전결의 소설쯤으로 여길지 모르겠으나 결에 해당될 대서양 단독비행은 사실상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기 그지없다(그러니까 기승전결이기보다 기승전기에 가깝다하겠다.). 오히려 야생에서의 일상, 냄새,숨결, 풍경, 동물, 몸, 감각 등에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려 했던 사자와 자신을 거부하는 말, ‘캠시스캔’ 등에 그녀 자신을 대입에 의인화를 통해 서술되는 점이다. 척박한 야생에서 살아남아 버티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었을까. 야생은 그녀에게 타자가 아닌 경험적 자아이자 풍경인 셈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성정에 실패는 있어도 좌절과 포기란 없음은 일견 당연하다.


3.
아프리카 야생을 체화하며 남녀의 구분보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또한 자연을 진실로서 소통하며 사냥, 조련사, 비행사를 거칠 수 있었다. 허나 이러한 인상적인 지점과 다소 충돌되는 지점이 있다면 후반부의 벵가지에서의 이야기다. 영국으로 가는 도중 여자로서 느낄 법한 편견과 고충을 겪고 벵가지에서 한 창녀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질곡한 얼굴이 말해주듯 서린 한을 가슴에 쟁여놓았을 창녀의 과거를 듣고 난 블릭센은 선뜻 돈을 준다. 베릴은 블릭센의 성품을 알기에 한마디 하고야 만다. 그걸 다 믿냐고 말이다.
베릴은 야생에 몰입하고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고 소통한다. 하지만 자연을 벗어나 문명의 도시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냉정하고 때론 무심하기까지 하다. 예컨대 대서양 단독비행을 앞두고 긴장된 마음은 품되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 담대함이 있었다. 아버지 사업의 실패로 생이별할 때조차 그녀와 그녀 아버지는 그 흔한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각자도생을 기하며 떠난다. 그렇다면 이러한 충돌은 베릴 그녀 자신이 자연에 귀착하며 품고 살아온 생의 이율배반적 법칙의 한 단면이다. 야생의 자구력과 강인함, 생명력이 불러일으킨 온정의 미미함은 문명에서 더욱 도드라진다는 점에서 일종의 아이러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베릴 마크햄은 페미니스트가 아니었기에 진정 페미니스트의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듯싶다. 그녀가 가진 배포와 무신경적인 용기 그리고 감각의 집중은 생의 애착과 동시에 죽음과 직면하는 활로를 모색하고 기어코 한 인간으로 살고, 떠났다.


​ ​
4.
작품을 완독하고 나도 의문과 묘한 결핍이 남는다, 그녀의 아버지는 왜 그녀를 데리고 아프리카로 왔는지, 그녀는 아버지와 헤어지고 정녕 홀로 아프리카에서 살았는지, 블릭센과 위험한 코끼리 사냥에 나선 이유는 무엇이었고 또 무슨 영문으로 느닷없이 험난한 여정을 거치며 영국으로 떠났던 것인지.
몇몇 질문은 인터넷을 통해 알 수 있지만 베릴은 직접 자신의 입으로 이유 여하는 거론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살아갈 뿐,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 베릴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눈 앞에 펼쳐진 삶을 품었다. 배웠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인용한 문장의 배운다에 '적절한' 배움과 학습이었는지는 의심이 든다. 물론 그녀는 그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통해 배웠지만 어쩐지 그러한 배움을 굳이 입을 열어, 글을 적어 구체적으로 내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배움이란 그녀의 배움과는 그릇이 다른 것일 터, 의심은 증명을 요구받는 문명인의 그릇된 소명에서 비롯되었음을 여실히 깨닫게 되는 것이리라.



5.
사소설에 가까운 에세이라고 했지만 사실 더 정확히는 이렇다. 유년시절을 그린 성장소설에서 자아를 찾아 헤매는 산문시를 거쳐 마지막에 가서야 일지와 자전적 에세이로의 응축이다. 이를 테면 문학의 장르를 굳이 나눠야 하는가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예시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쓰인 문장과 단어는 어려울 것이 없었음에도 왠지 읽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프리카의 낯선 지리와 풍토 묘사, 시대적 배경, 정처 없는 듯한 주인공의 아이덴티티 등은 다소 혼란스러웠고 읽는 내내 막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이 모든 것이 그저 하나의 풍경으로 저 멀리 떨어진 작은 파편으로 응축되고야 만다. 베릴과의 비행은 두렵고도 아찔했건만 다시 비행을 떠나보려 한다. 내 발 아래 땅과 머리 위 구름이 손짓한다.
잠 못드는 짧은 여름밤, 베릴과 함께 각자 미답지를 향해 여행을 나서보기를 추천한다.



6.
사견이지만 서문은 에필로그로써 기능한다. 따라서 본문을 먼저 읽고 난 후에 접하는 게 낫다고 본다. 서문임에도 본문 구석구석에 손길이 닿아 있어서 어쩐지 방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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