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은 어쩌다
아밀(김지현) 지음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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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땅히 함께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

아밀의 소설집 <멜론은 어쩌다>.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여러 이야기들엔 소외받고 차별받아온 약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슬프고 장중한 느낌이 아닌, 밝고 톡톡 튀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이다.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의견을 나누고 싶은 작품도 있고, 십대 청소년과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싶은 작품도 있다.

8편의 이야기를 즐겁고 진지한 마음으로 읽고 나면 머릿속을 관통하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은, 이런 판타지를 통하지 않고는 결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일까.

가장 인상깊은 작품은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였다. 레즈비언과 뱀파이어라니. 제목을 접할 때부터 범상치 않은 신선함이 느껴졌다. 기영과 미나의 이야기를 다룬 이 판타지는 결국 기영의 심리변화를 독자들이 따라가며 누구라도 기영의 입장을 이해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여자들의 찐 우정과 미묘한 심리적 갈등. 섬세한 플롯이 결말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미나가 영국으로 떠나기 전, 기영이 미나에게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달라고 조를 줄 알았다. 사실 여자라면 한번은 미나같은 친구가 하나쯤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을까. 2030 여성 지인들에게 꼭 읽혀보고 싶은 작품이다.

<어느 부치의....>는 여성형 섹스로봇 '리아'를 렌탈한 영민이 여러 여자 친구들을 사귀며 겪는 일들이다. 미래 소설이지만 실제로 있을 법한 일들을 그렸다. '리아'를 결국 영구 렌탈로 돌리면서 영민이 느끼는 감정은 혼자에 익숙한 많은 청년들의 고민일 것이다.

<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애>는 십대 청소년에게 꼭 읽혀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유전자 편집 아이돌 강모아로 알려진 가수가 실은 어릴 때 바뀐 아기였고, 진짜 유전자 편집 인간은 교회 찬양팀에서 가스펠을 부르며 해연의 팬으로 살고 있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진실을 밝혀야 할까 이대로 묻어야 할까, 어느 쪽에 찬성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다른 주장을 펼칠 것이고 그 이유들을 각각 들어보고 싶다.

<노 어덜트 헤븐>은 가장 감동을 주는 이야기였다. 제목 '멜론은 어쩌다'가 이 작품에서 나왔을 것이다. 재훈은 인터섹스, 혹은 간성이라 부르는 변이 성징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 재훈을 지키려고 엄마는 육십 세에 뇌졸증으로 사망하기까지 인터섹스 인권운동에 헌신하며 여생을 보냈다. 천사와 악마가 법정에서 재훈의 엄마를 두고 각각 심판과 변호를 하는 목소리도 재미를 주지만, 마지막의 울컥한 감동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 속에 새겨질 것이다.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은 지금 세상과 정반대인 현실이 배경이다. 이성애자가 성소수자인 세상. 이성애를 느끼는 사람이 차별받고 혐오받는 세상, 뒤집혀진 세상에서 독자들은 다시한번 진정성 있는 문제를 느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세상에 존중받지 못할 사랑이란 게 어디 있다는 것인지. 우리 사회는 언제쯤 진보하고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갈 것인지.

<야간 산책>은 고등학교 동창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하지만, 주인공 소정의 지난한 일생이 담겨있는 아련한 판타지이다. 엄마 없이 아버지와 언니들과 자란 소정에게 공원에서 기다리는 '시아'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우리 모두는 저마다 나약한 소녀시절에 '시아'를 기다리고 꿈꾸어본 경험이 있기에, 이 작품을 읽으며 마치 '호두까기 인형'이나 '사자와 마녀와 옷장'같은 꿈의 세계를 겪고 난 소녀로 변신해본 기분이었다.

밝고 귀엽고 신선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책을 주위에 권하며 '너도 오늘 색다른 세계에 빠져봐!'하고 기분좋은 웃음을 한아름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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