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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ㅣ 다다미 넉 장 반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평점 :
발랄하고 재기넘치는 청춘 캠퍼스 소설이다. 유쾌하고 능청스러운 서술자 '나'의 독백을 따라가다보면, 스물을 갓 넘긴 대학 3학년 청년 '나'의 풋풋한 좌충우돌 일상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대학 신입생인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꼭 대학 생활이 아니더라도, 스무 살 그때 각자의 선택에 대해,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는 후회와 아쉬움이다.
이 책은 대학 3학년인 주인공이 바로 위와 같은 가정을 기반으로, 평행우주 속에 네 번의 선택을 모두 다 살아본다는 판타지를 담고 있다. 여기에 '다다미 넉 장 반'이라는 주인공의 숙소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첫번째는 영화 동아리 '계'에 들어가서 벌어지는 이야기, 두번째는 '제자 구함'이라는 기상천외한 전단을 보고 히구치 스승을 만나게 된 이야기, 세번째는 소프트볼 동아리 '포그니'를 선택했던 삶, 그리고 네번째는 비밀 기관 '복묘반점'을 선택한 이야기다.
똑같은 삶의 기로에서 만약 다른 삶을 선택했더라면... 이라는 가정으로 펼쳐지는 유쾌한 이야기는 만화적 설정 속에 재미있고 기상천외하다. 마치 입체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듯 인물들과 대사, 행동의 코믹한 묘사는 해맑고 가벼운 웃음을 선사한다.(실제로 이 책은 2010년에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주인공은 네 번의 다른 삶에서 운명처럼 동일한 인물들과 유사한 경험을 반복한다.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운명의 검은 실로 엮여 있음을 감지하게 되는 오즈, 기괴한 괴짜며 미워할 수 없는 스승인 히구치, 영화 동아리 선배인 조가사키, 나방을 싫어해서 반복적인 상황에 부딪쳐 주인공과 연을 맺는 아카시군. 치위생사인 하누키... 모든 인물들이 독자적인 개성과 악의없는 해학으로 주인공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토록 장밋빛 캠퍼스의 낭만과 의미있는 대학생활을 갈구하면서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자칭 무의미하고 고독한 자취 생활을 이어가는 '나'. 독자들은 주인공이 과연 운명을 떨쳐내고 후회없이 멋진 삶을 살아낼까 기대하면서도, 아카시군과 이어질 러브 스토리를 '성취된 사랑만큼 이야기할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라며 퉁치고 넘어가는 너스레에 까무러칠 듯 즐겁다.
게다가 독자들에게, 흠잡을 데 없이 지적인 얼굴에 모든 점에 품위가 있는 젊고 잘생긴 최고의 미남으로 '나'를 뇌리에 새기라고 명령하기까지 하는 주인공의 도발적 용감함.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포인트는 바로 이 '나'의 유머와 도발적 용기, 솔직함과 나약함, '그러한가, 어떤가.' 등으로 말하는 독특한 말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오즈와 티격태격 브로맨스를 즐기는 만화적 유쾌함은 압권이다.(남의 불행을 반찬 삼아 세 번은 밥을 먹을 오즈... 라고 악담을 퍼부으면서도, 곳곳에서 오즈를 미워하지 않는 '나'의 이중성을 목격하는 즐거움!)
모두 네 번의 삶에서 '나'는 어두운 민가 거리에서 요괴를 닮은 노파를 만나고, 이토록 요기를 흘리는 노파의 예언이 적중하지 않을 리 없다며 점을 치는데, 노파는 네 번 모두 똑같은 대사를 흘린다. 그런데 노파의 대사는 어느 새 모든 독자들 가슴에 제법 큰 여운을 던진다.
"호기가 찾아오면 놓치지 마세요... 호기가 찾아왔을 때 막연히 똑같은 행동을 하시면 안 됩니다. 과감하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잡아보세요. 그러면 불만이 사라지고 당신은 다른 길을 걸으실 수 있겠죠. 거기에 또 다른 불만이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혹시 그 호기를 놓치더라도 심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훌륭하신 분이니 필시 언젠가 호기를 잡으실 수 있을 테죠. 저는 압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기회와 인연은 다가오게 마련이다.
누구라도, 과감하게 그 기회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잡고, 다른 길을 걷듯 열심히 살아보라는 응원. 혹시 그 기회를 놓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언젠가 또 다시 다가올 기회를 기다리라는 노파의 조언에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는 건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책을 덮으면 교토 거리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시모가모 신사나 가와리마치 거리, 카모 강 델타, 헌책방과 교토대, 철학의 거리를 걸으며 생생한 젊음과 이처럼 신박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 교토만의 오래된, 신비한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