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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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심층적 배경으로 다루면서도 작가 특유의 재치와 유머가 속속들이 빛나는 작품이다. 

 샤일록은 셰익스피어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인이다. 그는 돈을 빌려간 사람의 살을 '3천 두카트' 베어내려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질 고리대금업자이다. 필립 로스는 이 작품을 통해 (그 자신이 유대인이면서도) 샤일록의 기질을 이어받은 전세계 유대인의 속성 한 면을 철저하게 비판한다.

 최근에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으로 수많은 어린이와 여성 등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세상 건너편 뉴스만으로 보던 이 비극을, 유머와 비유와 심오한 달변으로 버무린 한 권의 명작 소설로 접한 경험은 특별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인 필립 로스다. 그는 아하론이라는 작가를 인터뷰하러 예루살렘에 가고, 거기에서 자신을 사칭하는 또 다른 필립 로스와 조우한다.

 가짜 필립 로스에게 모이셰 피픽이라는 조롱 섞인 이름을 지어주는 그는, 분쟁의 한복판인 예루살렘에서 여러 가지 기이한 일들에 휘말린다. 사방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깔려 있으며 아랍인과 유대인의 극한 긴장이 도사리고 있는 곳, 그곳에서 자기를 사칭한 피픽과 갈등하며 작가는 불같이 화를 낸다. 

유대인 학살의 주범 '공포의 이반'이라 불리던 간수, 데미야뉴크의 재판에 참석하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사람인 친구 조지의 집에 들렀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또한 분노의 대상인 피픽의 애인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자신을 따라다닌 이스라엘 사복 경찰에게 납치되기도 한다.


사실 암투병 중인 피픽은 한때 탐정으로서, 지금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유럽으로 집결하는 대의를 위해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간호사인 징크스가 있다. 하지만 필립의 눈엔 두 남녀가 시종일관 의심스럽기만 하다.

 홀로코스트 희생자인 사촌 앱터를 만나러 가다가 필립은 한 유대인 노인, 스마일스버거로부터 100만 달러를 얼떨결에 받게 된다. 하지만 친구 조지의 집에 들렀다 돌아가는 위태로운 한밤중에 돈을 잃어버리고,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과 미스테리로 접어든다.


 종교와 역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소설은 때로 작가의 긴 사설이 상당 분량 쏟아지기도 해서, 마치 의식의 흐름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에야 밝혀지는 비밀.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의 첩보작전을 지휘한 스마일스버거의 큰그림이라는 것.

놀라운 것은 (마지막 장에서) 스마일스버거가 계획한 긴 이야기의 전말을 들으며, 필립 로스는 그토록 분개했던 사기꾼 피픽이 사실은 그를 구원해준 것이나 다름 없다는 진실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허구인지 진실인지를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작가는 모호함의 그물을 던지는 매력적이고 영리한 결말을 선사한다.


 "책임질 의무가 없는 유대인, 세상이 자신의 마음에 쏙 든다고 생각하는 유대인, 편안한 유대인, 행복한 유대인, 가요. 선택하고, 취하고, 가져요. 당신은 어떤 불행한 운명도 없이 축복받은 유대인이오. 특히 무엇보다도 우리의 역사적 투쟁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기억에 남는 스마일스버거의 대사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가진  유대인이지만 지구상 어딘가에선 또 다른 학살자가 되고 있는  모순. 필립 로스만이 꼬집을 수 있는 이 어려운 현상.

어떤 민족이 권력에 희생되고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가. 이 역사적 딜레마를 우리는 늘 생각하고 토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현실의 정치, 역사, 문화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가져야만 한다.

 과연 역사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정해져 있는 것일까. 복잡함에 빠지기 싫은 독자들이라면 픽션이라는 허구적 장치에 의지하며 즐기면 된다. 대작가의 능력은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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