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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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대단한 명작을 만났다는 흥분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길 떠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란 점에서, 이 작품은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주인공이 십대 흑인 소녀이고, 특히 그 소녀가 지도자로서의 기질을 발휘하며 새로운 세상을 위한 희망의 등불이 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매카시의 소설이 어둠과 절망으로 끝을 맺는다면, 이 작품은 희망과 밝음으로 끝을 맺고 있기에.

 

로런에게 닥친 어둠의 현실은 2024년부터 2027.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 가까운 현대라 할 수 있다.

어떻게 30년 전에 옥타비아 버틀러는 살인, 방화, 약탈, 강간이 넘치는 암울한 2020년대를 상상했을까. 어떻게 파이로라는 신종 마약 불을 지르며 극단의 쾌락을 느끼는 에 중독된 이들을 그려내고, 미쳐버린 세상 속 무리들이 도시를 파괴해가며 장벽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이는 가슴 섬뜩한 미래를 예견했을까.

부자들은 장벽을 높이 세우고 경비를 철저히 하며 자기들만의 안전한 울타리 속에 안주하고, 가난하며 굶주린 자들은 그 장벽 너머를 호시탐탐 노리며 닥치는 대로 빼앗고 죽이고 불을 지르는 괴물이 되어간다. 로런이 북쪽으로 향하며 마주치고 목격한 모든 현실은 지옥과도 같은 삶의 현장이다. 사람들은 무리지어 더 약하고 병든 자들을 공격하고, 시체의 돈과 옷을 빼앗고 심지어 식인까지도 한다. 로런의 눈에 비친 지구는 병들고 병든 멸망 직전의 땅이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기후 위기와 환경 재앙, 코로나라는 질병이 전 세계를 불의 심판처럼 휩쓸고 있는 지금, 이 작품에 그려진 암담한 배경들이 터무니없는 환상일 뿐이라는 장담을 누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어둠과 혼란 속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로 작가는 로런을 창조해냈다. 초공감증후군을 가진 로런. 엄마의 약물 남용으로 로런은 남들이 느끼는 고통과 쾌락을 고스란히 느끼는 초공감을 가지고 태어났다. 로런의 약점은 매우 위험하고, 심지어 노예로 삼거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기에 가족, 또는 진실한 친구들만이 그 비밀을 알고 있었다.

로런은 목사인 아버지의 사랑 속에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고 새엄마 코리의 따가운 눈길을 견뎌내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책을 읽으며 언젠가 장벽 밖의 세상으로 탈출했을 때 마주칠 위기의 삶을 대비한다.

친구 조앤과 이웃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볼 때조차 로런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언젠가 자기 동네의 장벽이 무너지고 약탈자들이 침입해올 것을 알기에, 로런은 사격 연습을 열심히 하며 비상 배낭을 준비할 만큼 치밀하고 지혜롭다.

동네 사람 중에 해리와 함께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라. 그녀에게 스승이 되어 달라고 말하며(자라는 이미 빈곤과 구걸 등 거리의 삶을 어린 시절 온몸으로 체득한 흑인 여성이다.) 로런은 이렇게 말한다.

 

 

바깥 세상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을 이미 알아요. 난 그 사람들을 지켜보고, 그 사람들에게 귀기울이고, 그 사람들에게서 배울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해당할 테니까요. 아까 말했다시피 난 어떻게든 살아남을 작정이에요.”(302p)

 

 

로런은 내가 보기에 남자들마저도 질투를 느낄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흑인, 여성, 소녀--- 어떻게 보면 약자로서의 많은 정체성을 가진 로런은 자신의 믿음 - ‘지구종변화가 곧 하느님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기까지 이른다. 이 책의 끝에 가면 누가 뭐래도 로런이 새로운 공동체의 정신적 지도자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초공감이라는 약점을 가진 소녀가 굳센 의지와 신념으로 살아남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믿음을 심어주며 연대하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로런이 길을 가며 합류시키는 사람들은 인종과 신분을 초월한 사람들, 흑인과 중남미계, 아시아계가 섞인, 어른과 아이와 아기가 함께 있는, 노예로서 탈출한 사람들이자 학대하는 부모로부터 탈출한 사람들이다. 해리처럼 잘 교육받은 백인도 있지만 도망친 노예이자 강도짓으로 삶을 이어온 그레이슨과 도라는 흑인 부녀도 있다. 해리와 자라를 제외하고 로런이 길에서 만난 그들은 가족을 잃고, 어머니와 아들을 잃고, 굶주림과 불행의 끝에서 로런을 만나 구출되는 것이다.

로런의 덕분에 그들은 짐승같은 세계 속에서 동지를 만나고(이것은 곧 가족이나 이웃으로 확장될 것이다.) ‘함께 힘을 합쳐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할 희망을 얻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식량을 우리 손으로 키워내는 일을. 우리 자신과 이웃을 전에 없던 새로운 존재로 키워내는 일을. 지구종으로 변화시키는 일을.”(396p)

 

 

이 책은 많은 것을 우의적으로 보여준다. 사람이 서로를 죽이고 약한 자를 짓밟는 힘의 원리, 자신들만의 굳건한 장벽을 세우고 안전을 지키는 계층의 벽. 돈 없이는 물과 식량과 인권과 희망 한 줌도 살 수 없는 자본의 속성. 이러한 모습은 신종 질병과 기후 변화, 물질만능으로 몸살을 앓는 지금 이 현실 세상과 결코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소설 속 배경인 202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모두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전부가 로런의 신념과 정의를 따를 필요도 없고 로런의 생각에 동의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스스로의 약점을 인정하고 더 강한 따듯함과 포용력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의연함만은 독자들이 배웠으면 한다.

아쉬운 점은 조앤네 가족이 간 올리버라는 도시에 대한 후속 설명이 있었다면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올리버를 탈출한 사람들이 잠깐이라도 등장한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증언을 통해 그 도시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몹시 알고 싶었다.

또한 로런이 영원히 존경했던 아버지의 시신이라도 발견했다면. 누구보다 훌륭한 지식인이자 로블리도의 지도자였던 올라미나 목사의 실종은 로런의 가슴에도 독자인 내 가슴에도 풀리지 않는 응어리로 작게 남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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