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친 면의 대화 - 지금, 한국의 북디자이너
전가경 외 지음 / 아트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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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디자인의 세계를 탐구하는 귀한 내용입니다. 표4라 부르는 뒷표지에 '책의 가장 깊은 곳에서 펼쳐지는 열 편의 대화'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펼쳐지는 대화, 펼친 면이라는 말로, 책을 채우는(혹은 비우는) 묵직한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표지 디자인을 넘어 본문 조판, 면 구성, 서체, 정렬은 책을 펴내는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들인데 많이 이야기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애스터리스크(*)로 할 것이냐 물결로 할 것이냐. 글자 간격과 색깔과 잉크는 어떤 것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디자이너는 원고를 하나의 사물로 만들어내는 연금술사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은 누구의 것일까요? 책을 썼다, 책을 냈다라고 표현하지만 저자는 원고를 쓰고, 편집자는 원고를 다듬으며 구성을 고민하는 프로듀서 역할을 하고, 디자이너는 책의 꼴을 만들어냅니다. 꼴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드는데요, 실제로 편집자들이 쓰는 단어기도 합니다. '책의 꼴'. 물론 이 책에 책의 꼴이 아닌 다양한 꼴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저는 책을 펴내는 일이 당연하게도 공동 작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차도 그렇습니다. 


김다희의 책

조슬기의 책

박연미의 책


 속격 조사 -의는 소유를 나타냅니다. 내가 산 책도 나의 책이고 내가 원고를 쓴 책도 나의 책이면 디자이너의 책도 디자이너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저자가 책의 권리와 권한을 모두 갖는다는 면에서, 서지사항에서나 '협조자'들을 겨우 찾아볼 수 있다는 면에서 민주적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물론 꼭 민주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책은 분명 저자만의 것은 아닙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디자이너들은 책을 만들 때 올려놓는 손들이 어떤 손들인지 알아보도록 다른 결을 충실히 보여줍니다.


 책의 디자인을 '이쁘다' 이상으로 읽을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때 디자인은 당연히 표지 디자인 이상을 말합니다. 리베카 솔닛 책으로 기억하는데, 인쇄를 파란색으로 한 글도 있었네요. 제가 쓴 책도 《사이렌과 비상구》에는 비상구를 상징하는 손가락 특수문자(☞)가 있더라고요. 마티 출판사에서 낸 《일인칭 가난》에는 본문 안에 빨간색으로 주석을 넣었습니다. 북토크에 갔더니 의도를 다르게 해석한 사람들이 있어 재미있었다고 편집자가 말했습니다. 


 내가 북 디자이너라면, 글을 체현하는 몸인 책의 꼴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북 디자인은 글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창작이고 생산이므로 대단히 존중받아야 하는 영역이며 회자되고 언급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으며 계속 했습니다. 이 책 표지에도 판형 사각형이 있지만, 디자이너들의 포트폴리오 도판에 판형도 제시되어 있어 실물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고 펼침면을 다양하게 보여주어 이해가 쉬웠습니다. 물론 컬러 인쇄에 도판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 작업은 제작비가 많이 들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서문에서 '책에 대한 책'이라고 저자는 밝혔는데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글을 쓰는 사람은 책 만드는 일의 지난함과 어려움을 다소간 이해하리라 봅니다. 그 지난함과 어려움이 출판 시장의 불황 때문인지 독자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지 구분이 어렵지만 책의 꼴을 갖추려 고민하고 노력하는 디자이너들의 모습에서 어떤 책도 저절로 나오지는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도서관 서가에 놓여있는 책등들의 색과 크기를 고민하는 사람은 실제로 있는 사람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문학과지성사의 시그니처인 빨간 박스 도상이 흥미로웠습니다. 책의 맥락이랑 상관없이 자신을 주장하는 모양새로 보여서요. 열화당에서 낸 존 버거 책을 보며 책의 질감이 버석하다고 느꼈는데 저간의 사정을 이 책으로 조금은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책 디자인의 이야기뿐 아니라 북 디자이너들의 고심과 퍼포먼스 그리고 내가 보는 책의 물성을 더 오래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어떤 책을 왜 썼는지 뿐 아니라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역시 읽어보아야 할 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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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 우리가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방식에 관하여
에리카 산체스 지음, 장상미 옮김 / 동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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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평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평가를 제가 다 알 수는 없지만요. 물론 좀 사소한 이야기도 있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소수자 감정(마이너 필링스)‘과 자신의 몸과 관계를 통과하는 소수자성을 생각하는 글이 담긴 책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뻔해 보이기도 했어요(좋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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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동기화, 자유 - 자유를 빼앗지 않는 돌봄이 가능할까
무라세 다카오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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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못 하고, 다르게 기억하고,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몸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이 다른 몸은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른 몸을 보는 저자는 동기화되는 몸을 생각합니다. 잊었기 때문에 새로운 말과 행동이 가능한데, 그 행동들을 지켜보고 돌보는 일은 단순하지도 쉽지도 착하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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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오션 브엉 지음, 김목인 옮김 / 시공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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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색깔로 표현하면 보라색이다. 우중충한 보라색 하늘, 맞아서 생긴지 조금 된 멍. 흔하게는 아시아계라 ‘마이너 필링스‘가 깔린 소설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주인공의 슬픔은 그런 높은 정치적인 분석보다는 사랑, 관계, 가족, 혐오, 차별의 일상 경험에 더 밀접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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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책이 좋아서 - 책을 지나치게 사랑해 직업으로 삼은 자들의 문득 마음이 반짝하는 이야기
김동신.신연선.정세랑 지음 / 북노마드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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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들만 말할 수 있는 이야기에 동료들을 생각하는 따뜻함까지 들어있다. 이 책을 읽으니 도서관에 갈 때마다 책 제목이 쓰여있는 책등이 자꾸 눈에 보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재미없을 수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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