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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바이너리 마더
크리스 맬컴 벨크 지음, 송섬별 옮김 / 오렌지디 / 2023년 5월
평점 :
이 책의 영어본의 제목은 《The Natural Mother of the Child: A Memoir of Nonbinary Parenthood》.
간략히 번역하면 '아이의 생모 : 논바이너리 부모의 회고록'이다.
여기서 'The Natural Mother of the Child'는 법률 서류에 기입된 '아이의 생모'라는 표현이다.
생모라는 표현은 흥미로운 표현이다. 낳은 엄마라는 뜻인데, 반대의 뜻인 생부도 낳은 아빠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났을 때 정자도 낳는 역할을 했다고 해야 할까? 아버지나 어머니나 같이 '낳았다'라고 하지만 실제 임신 노동을 하는 사람은 많은 경우 '엄마'다.
그런데 이 책은 트랜스남성(논바이너리 혹은 트랜스젠더퀴어 혹은 시스젠더 여성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 임신을 하고, 육아를 한다. 일단 낳는 문제만 봤을 때 남성으로 패싱되는 사람이 임신한 모습은 사회적 각본과는 어긋나기에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부조화가 생긴다. 하지만 이 모습이 진정한 의미의 '생부'가 아닌가? 생모와 동등한 의미에서? 이 책은 이런 '생부'의 삶의 정교한 성찰을 드러낸 글이다.
제목을 보고 (사회/문화)정치적 투쟁에 대한 슬로건 같은 글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보단 삶의 과정 속에서 만나는 불안과 불화 행복과 편안함을 쓴 에세이라는 것이 의외였다(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도식화된 상상을 반성했다). 퀴어의 일상, 퀴어임이 다른 사람들과 아주 다르고 그래서 피해의 굴레에 있다는 식으로 피해를 자원화하는 내러티브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퀴어가 피해를 입지 않는다 혹은 그것이 과하다는 것이 아니다).
피해를 입지 않았거나 혐오나 차별을 당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그런 삶 안에서도 다른 삶과 별다를 바 없는 삶을 기술했다는 것이다. 엄마가 낳았을까 낳은 사람이 엄마일까. 엄마는 여성인가 여성이 엄마인가. 생식기로 성별을 분류하는 시스템 자체가 자연화된 담론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 어느 정도 상식으로 받아들여진 만큼, 자궁(포궁?)과 임신 그리고 출산 역시 당연히 여성의 의제라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낡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