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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자자의 시간 - 금융 자본주의 시대 새로운 주체성과 대항 투기
미셸 페어 지음, 조민서 옮김 / 리시올 / 2023년 2월
평점 :
이 책의 흥미로운 부분은 기존 임금 노동에 기반한 노동운동에서 교훈을 얻자고 하면서도,
변화한 (금융) 자본주의의 환경에 맞는 대항 투기를 실천하자고 하는 부분이다.
플랫폼 자본주의로 인해 노동자가 착취를 당한다는 보도는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은 일하는 사람과 이 사람의 신용을 연결 지어 생각한다. 한국의 사례를 들어보면, 모 배달 대행업체의 경우 콜을 받는 것에 불이익을 주거나, 고객의 평점에 따라 불이익을 받는 운전기사 등 자신의 신용 평판을 관리해야 계속적인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임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면서도 이 노동의 제공자로서 역할이 생산관계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이 위치성을 지랫대(레버리지) 삼아 노동 조건을 협상했듯, 금융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일종의 시장의 참여자로서 연대하고 결합하여 새로운 위치와 장소를 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는 듯하다.
"노동 소득으로는 부자가 되지 못한다"라는 말이 유행했었지만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이 겹친 시기에는 '원화 채굴'을 하러 일을 해야 한다고(현금 흐름이 중요하다며)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웬디 브라운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극히 '호모 에코노미쿠스'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웬디 브라운,《Undoing the Demos》)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적인 사유를 전용해 자본 시장에 변수로 작동하는 액티비즘도 가능한 것인 아닌지 저자는 묻는 것 같다.
또한 자본의 유입을 이끌어내는 '영업사원'으로서 정치 지도자는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그렇다고 유권자인 시민들에게 적나라하게 투자자에게 (외견상) 굴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그리는 부분에서 많은 장면들이 오버랩되었다.
내가 읽은 바로는 이 책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신용을 흔드는 방식의 저항은 어렵지만 시의적절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고용주와 임금노동의 관계로 규정하기 어려운 포스트임노동이 만연한 시대에 아주 적절한 대항 방법과 의식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