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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돌봄 - 가족, 돌봄, 국가의 기원에 관한 일곱 가지 대화 ㅣ 이매진의 시선 13
조기현 지음 / 이매진 / 2022년 2월
평점 :
영 케어러란 나이화된 용어이다. 돌봄 제공자를 주로 중/노년, 여성, 노동 계급으로 상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젊은'(젊다라는 것도 나이에 대한 사회적 위계를 포함하기 때문에 '젊음'이라고 쓰겠다. 유사 표현에 작은따옴표를 안 써도 대략 쓴 것으로 이해해달라.) 돌봄 제공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 사회는 '젊은' 사람들이 아프거나, 주 보호자-양육자-돌봄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이에 해당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 젊으니까 금방.. 젊은 네가 모셔라.. 젊음이란 가능성, 기회를 가진 잠재력의 시기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고, '젊은' 시기에 마주친 질병, 장애, 돌봄은 '젊음'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기 일쑤이다. (흔하게 유통하는 말을 한 번 더 하자면 이런 시간성은 상당히 비장애/이성애/시스젠더적이라고 할 수 있고, 생애주기 내러티브는 그러므로 특권적인 내러티브다.)
많은 통념이 그렇듯, 젊음이 배움과 미래를 위한 시간이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자신을 압도하는 상황을 처리할 자원이 부족한 '젊은' 돌봄 제공자에게 돌봄의 시간은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당장 오늘의 수발, 오늘의 청소, 오늘의 뒤집기 등 돌봄 수혜자를 향한 순전한 노동의 시간이다. 그렇다고 배우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상 신호를 감지하는 예민함, 돌봄 경험에서 오는 전에 없던 인식까지, 분명 얻는 것은 있을 것이고 이 책엔 그런 경험으로 얻은 지식이 켜켜이 쌓여있다. 아주 경이스러운 높이로.
하지만 정규적인 시간을 투입하는 노동자가 되기도 어렵고,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젊은' 돌봄 제공자에게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까? 고용 없는 시대로 점점 수렴하면서 각자도생의 가치만 점점 만연해지는 시대에, '젊은' (돌봄 제공자이며) 노동자인 이들에게 어떤 희망과 전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현재와 같은 상황을 유지한다면?
이 책은 삶의 조건인 돌봄의 상호의존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돌봄을 받기도 하지만 돌봄을 하기도 한다. 한 인간의 삶에서 돌봄은 필수적인 조건이며, 더 넓게는 사회의 생산과 재생산 모두 돌봄이라는 토대 위에서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돌봄에 대한 인식은 어린이나 유아들의 교육(혹은 보육)이나 몸에 손상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 혹은 나이 든 사람이나 이 요소들의 조합을 이룬 예외적인 경우에만 전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생각 덕에, 일상적인 돌봄과 돌봄 제공자의 연령에 대해 혹은 돌봄 제공자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상황과 조건에 무지한 게 현재의 상태이다.
학교, 사회, 직장 모두 상당히 자립적인 몸을 전제한다. 매일 출석할 수 있는 학생(어쩌다 빠질 수 있지만 아픈 것이 아니라면 상당한 도덕적 비난이 가해질 수 있는 상황, 아플 순 있지만 적당히 아파야 한다는 전제) 혹은 9 to 6를 근무하는 직장인(병가나 휴직은 가능하지만 적당히 해야 한다는 전제) 등 이 자립적인 몸들로 굴러가는 조직들은 구성원이 받는 돌발적인 돌봄 요청과 계획에 없던 통증 혹은 손상과 장애와 같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요설이 길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젊은' 돌봄 제공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겪지만 이 어려움들은 단순히 삶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가능성으로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영' 케어러는 사회가 '젊은 사람들'에게 기대하거나 상상하는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돌봄을 하며 살아간다. 당시 상황의 돌봄 수혜자, 그들과의 관계, 그들의 상태는 제 각각이고 이들과 협상하거나-협상이 거의 난망한 상황에 있는 돌봄 수혜자도 물론 있다- 여러 제약을 겪으며 사는 삶의 다양한 맥락들과 모습들을 이 책은 드러낸다.(아마도 많이 싸우고, 갈등도 많았을 것이다. 애초에 돌봄이란 목가적이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사라 러딕이 말한 '보존애'처럼 보살피는 노동 자체는 고도로 피로하고 생산성이나 효과를 측정하고 양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쩌면 거꾸로 가는듯한 느낌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에 따른 뛰어난 사유를 얻을 수도 있다 하겠지만 매일의 삶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런 어려움이 이 책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감수하며 사는 '영' 케어러도 많을 것이라고 본다.)
자녀와 동거하는 성인은 부모님 아니면 보호자라고 전제하지만 누가 보호자인가? 성인이 어린이나 자녀를 보호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누가 보호하는가? 어린 자녀나 친척이 돌보는 경우도 있다. 요는 돌봄이란 언제든 누구나 누구에게 할 수 있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 돌봄 제공자가 있다는 사실. 보다 취약한 이 '젊은' 돌봄 제공자들이 겪는 현실이 보이지 않고(볼 수 없거나 보지 않고),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처한 구체적인 곤경을 타개하기 위해 필요한 대안들을 이 책은 충실하게 보여주려 노력한다.
가족 해체가 아니라 가족 생성부터 난망해진 지금 시대에 '젊은' 돌봄 제공자와 그들의 삶을 단순히 가족에만 국한하는 게 아닌, 시민으로서 살만한 삶을 위해서 국가가, 사회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책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돌봄의 시장화나 돌봄의 가족주의만으로는-혹은 복지의 증대나 인센티브의 증대와 같은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위기가 있음을 늦었지만 이제는 감지해야 한다.
이 책은 '영' 케어러들의 목소리를 담았고, 이들이 꺼낸 경험들은 자립적인 인간이라는 상상 대신 돌봄이 필요한 이는 돌봄을 받고, 돌봄을 제공할 의사가 있고 요청자에게 제공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손상으로 인해 제한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이나 쉽게 피로를 느끼기 때문에 돌봄 제공 일정이나 자체에 확신을 주지 못하고 때로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고 하여도 배제하지 않고 그들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면서- 누구든 돌봄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돌봄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적어도 이런 사회로 가는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데 기여를 할 수 있으라 생각한다.
(물론 '젊은' 돌봄 제공자들에게 강제로 부여한 돌봄과 이 돌봄 노동에 압도되고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언어가 없는 '영' 케어러들의 곤경을 마주하고, 이들이 더 나은 환경을 갖기 위해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하는지도 이 책에서 제시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이들의 경험과 노력들을 공적으로 인정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도 화급한 사안이다.)
이 책의 미덕은 아주 많지만, 가장 깊게 들어온 점은 염세적인 좌절에 쉽게 매몰되지 않으면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돌봄 주체와 돌봄 대상을 양분하는 논리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더 돌봄한 세상을 위해 윤리적이고 성찰적으로 글을 썼다는 점이다.
(물론 돌봄 제공자들이 타인의 인식에 도움이 되려고 돌봄을 했다거나, 이 책에 나오는 돌봄의 사례들이 순전히 인식의 변화를 위한 단순한 소재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의 경험과 경험을 조명하는 일 자체가 현재에 절박하게 필요한 과업이라는 뜻에서, 그런 인식과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도 다르게 생각하도록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필요하다는 취지로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