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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인생이든 상황이든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오히려 변화가 찾아온다."
리진......
삶은 언제나 당연하게 미래를 향해 흘러간다. 과거로 역행하는 삶은 없다. 그런 삶 속에는 언제나 선택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선택은 때론 행복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뼈에 사무치는 후회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리진은 조선의 궁녀로 프랑스 외교관 콜랭의 연인이 되어 프랑스에 가서 살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유산의 슬픔도 겪게 되고, 그렇게 타국에서 마음의 상처는 점점 커져만 간다. 이후에는 그녀가 몽유병에 시달리자 콜랭이 그녀를 위해 휴가를 얻어 조선으로 함께 돌아간다. 나중에 리진을 은애한 홍종우의 상소로 결혼은 하지 못했던 리진은 조선의 궁녀로 조선에 남게 되지만, 이때 리진도 콜랭을 따라 다시 프랑스로 갈 생각은 없었다. 결국 콜랭 혼자 다음 부임지로 떠난다. 그리고 서서히 리진에 대한 마음을 정리한다. 혼자만의 사랑에 지쳤을 테지.
리진에게는 네 명의 남자가 있다. 우선은 어린 시절에 만난 말 못하는 강연, 궁녀의 삶에 존재하는 왕, 프랑스 외교관 콜랭, 그리고 홍종우.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외로움으로 끝맺는다. 독이 발라진 책을 먹고 홀로 피흘리며 죽은 그녀. 그녀는 외로운 여자였다. 또한 뒤에 그녀의 무덤 앞에서 얼어 죽은, 손 잘린 강연도 외로운 남자였다.
(강연은 어린 시절 리진과 함께 자랐다. 둘다 부모없는 고아로 서씨의 손에서 자랐는데, 강연은 리진에게 사랑을, 리진은 강연에게 연민을 품었다. 강연은 궁녀가 되어 궁으로 떠난 리진을 따라 장악원에 들어가 대금을 연주했으며, 콜랭을 따라 프랑스로 가는 그녀를 떠나 보낸 후에는 리진에 대한 마음을 서찰에 수없이 담기만 한다. 그 중 단 한통만 보낼 거면서. 그리고 다시 돌아온 리진과 가까이 지내기도 하나, 홍종우의 상소로 손이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된다. 바로 궁녀를 사랑한다는 죄로. 말을 할 수 없는 강연에게 대금은 또 다른 언어였다. 하지만 손이 잘린 그는 이제 영원히 말할 수 없다. 이 사실에 리진은 미쳐버릴 것만 같다. 찾지 말라는 강연의 말에도 남장을 한 채 강연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어디에도 없는 강연. 결국 리진의 무덤 앞에서 죽는 강연. 강연의 사랑은 내 마음을 울리고 말았다.)
리진은 서구 열강에게 문을 열기 시작한 조선의 근대화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역사 소설이지만, 나는 이 책을 역사 소설로 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한 여성의 이야기라고 보고 싶다. 바로 리진의 이야기. 혹은 그녀의 사랑이야기. 여기서 사랑이란, 남자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서는 그녀의 뿌리를. 이야기는 콜랭과 리진의 사랑을 따라가고 있지만, 리진의 마음은 언제나 조선의 국모였던 명성황후에 머문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명성황후, 그녀는 어떤 존재였던가. 리진은 어린 시절 명성황후를 만난다. 그때 자신에게 배의 속을 숟가락으로 긁어주던 명성황후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진짜 엄마와 닮았다. 그 후 궁녀가 되어서도 딸처럼 명성황후의 곁을 지켰다. 그러나 을미사변의 순간에는 왕비의 죽음을 보다 혼절한다.
(명성황후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명성황후는 리진에서도 그랬지만 나라의 국모이기 이전에 자신의 안위를 챙겼던 인물로 여겨진다. 왕세자를 위해 돈을 거침없이 쓰면서 민중의 병은 나몰라라 하고, 자신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매서웠던 여자. 더욱 강해져만 갔던 여자. 어쩌면 그녀는 진정 나라를 위해 수많은 날을 고심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녀의 행동은 민심과 나라를 어지럽히기만 했다. 자신에게 대항하면 분노했고, 자신을 노리는 세력때문에 잠을 설쳤다. 방도 바꾸어가며 잤다. 마치 죄진 사람이 발 저린 듯. 그래도 입 다물지 않고 인간 여성으로, 국모로서 당당했던 그녀의 정신은 높이사고 싶다. 비록 그 정신이 늘 그릇된 결과만을 낳았지만. 그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나름대로 자신의 강화는 곧 나라가 강해지는 길이라 여겼을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리진은 역사적 서사를 따르고 있지만, 리진은 역시 한 여인의 생을 따라가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여성의 삶을 말하는 건 아니다. 미약한 조국을 갖고 있고, 한 나라의 궁녀였고, 사랑했으나 외로웠던, 국모를 자신의 어머니라 여겼던, 늘 가질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삶을 살았던 여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흔치 않은 삶을 살았던. 그런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녀는 이끄는 삶이 아닌, 끌려가는 삶 속에서 자신의 정체찾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의 총명함과 춤을 통해 얻는 자유는 그녀 삶의 전부가 아닌 일부로서만 기능했고,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선택 된 삶을 따라갈 수만 있었을 뿐이었다.
신경숙 작가의 "리진"이 출간 됐다는 말에 처음에는 반가운 마음이 컸다. 그런데 그녀가 쓴 글이 역사 속 한 인물을 호출해서 쓴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신경숙 작가도 역사 소설을 쓰는 구나, 했다. 왠지 신경숙 작가와 역사가 잘 매치가 안 됐다. 늘 외로운 삶을, 쓰러져갈 것만같은 인물을 그렸던 그녀가 아닌가. 그녀의 작품을 읽고 그 감상의 잔물결에 일상이 잠시 흔들리기도 했었는데...역사이야기라면, 그녀가 강해졌다는 얘기인가, 하고 얼핏 생각도 했다. 아니면 오랜시간 작품을 안 낸 것이 소재가 없어서 그런 거였나, 그래서 역사를 들출 수 밖에 없었나...여러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역시나 '쓸데없는 걱정' 이었다. 리진으로 돌아온 그녀는 여전했다. 리진의 삶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쉽게 찾아보던 그녀들이었고, 변한 게 있다면 리진이 좀더 여러 격랑을 거쳤다는 것이다. 리진은 그녀가 그린 여느 인물처럼 삶이라는 거대한 상징 앞에 무모하게 서 있었으며, 그저 흘러가다가 상처받고 쓰러지며 세상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며 꾸역꾸역 살았다. 그런 인물의 삶을 작가의 문장이 더욱 부추긴다. 나비의 팔랑 거림과 같은, 나비가 읊을 것 같은 가녀린 느낌의 문장으로 말이다. 때에 따라서는 슬픈 느낌을 남기는 여운이 긴 시처럼 응축되기도 하면서, 마음 속에 리진이라는 여인을 한 올 한 올 새기게 만든다.
흘러가는 삶 앞에 뚜렷한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뚜렷하게 정해진 게 있다면 사는 것이 너무 재미없지 않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살아가는 삶이 뚜렷하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내게 다가오는 삶의 순간들은 뚜렷한 순간보다는 모호한 순간들이 더 많았다. 명확한 것 보다는 불명확한 것이 더 많아서 주춤거리기도 했다. 선택하는 매 순간 앞에서 '이걸 선택해라!' 하고 계시가 내려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선택을 한 후, 뒤따르는 후회를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리진은 매 순간 선택을 하게 되지만, 그 선택이 그녀를 행복하게 했는지는 의문스럽다.
어쩌면 책을 읽는 동안 그녀가 정말 행복해 보인다고 느끼는 순간은 극히 적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조선 땅에서 드레스를 입고 거리를 걸었던 그녀는 조선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이방인으로 존재했다. 잊혀지면 좋을. 누구에게? 자신에게. 그래서 그녀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다면서 죽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서씨 밑에서 자라다가 서씨의 언니인 서상궁에 의해 궁으로 출입을 하게 된 리진. 그러면서 삶이 자신의 뜻보다는, 타인에 의해 움직였던 리진. 그녀는 죽기 전에 수많은 것들을 후회했다. 그 중에 궁녀가 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궁녀로 살게 되면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기 때문. 그런 그녀의 삶을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지켜본 나로서는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선택한 순간마다 고통을 동반하니, 겉으로는 좋아보일지 모르는 삶이겠으나, 속은 바짝 마른 것과 같다.
리진의 삶을 한 발자국씩 따라 걷다가 남은 것은, 그래서 연민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리진을 넘어서 나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번진다. 좀더 적극적으로 선택하며 인생을 살아야 겠다.
리진을 읽으면서 리진의 얼굴을 상상하게 되는데, 자꾸 이영애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장금에서의 모습과 에어컨 선전에서 파란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그녀의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있기 때문일까?
그리고 리진에게 다가간 사랑을 보면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본다. 끝내 내 마음을 움직인 건 강연이지만, 나라도 콜랭을 선택했을 것 같다. 둘 다 리진을 사랑했지만, 강연은 그 마음을 숨기는 쪽이었고, 콜랭은 표현하는 쪽이었다. 물론 에필로그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사는 그의 모습에 나쁜놈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어서 작품에 대한 여운을 깨기도 했지만 말이다. 역시 사랑이라는 것은 사랑을 주고 싶게 만드는 대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행복으로 완결지어지는 것 같다.
덧붙여서 김탁환 작가의 리심도 읽어봐야 겠다. 역사 속의 한 여인을 두고 서로 다른 작가가 어떤 상상을 했을 지, 사뭇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