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습니다 - 58일간의 좌충우돌 자전거 미국 횡단기
엘리너 데이비스 지음, 임슬애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오늘도아무생각없이페달을밟습니다

#엘리너데이비스글그림
#밝은세상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탔을 때가 언제였을까? 지금의 나를 과거로 돌리고 돌려서 그 시절을 찾으려고 하니 막막함이 앞선다. 두서없는 기억들은 머릿속에서 계속 뒤엉키더니 결국은 여의도 광장에서 자전거를 타던 그 여름에서 정지한다. 중학생 때였을까, 고등학생 때였을까, 어쩌면 중3과 고1의 사이일 수도 있겠다 싶다. 어쨌든 나는 친구들과 전철을 타고 서울까지 가서 여의도 광장에서 따로 또 같이 자전거를 탔고, 자전거를 다 탄 후에는 목이 말라 편의점에서 슬러시를 사 먹었고, 지금도 그때의 온도와 거리를 기억하고 있다.
그 후 어른이 되고 나서는 자전거를 탄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걸 보면, 진짜 그때가 마지막인가 싶으면서도, 설마 그때가 마지막일까, 싶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두 발 자전거를 탄 동생이 멋대로 뒷바퀴를 뺀 날은 분해서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네 발 자전거가 두 발 자전거가 된 후, 그 두 발 자전거를 배운 기억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내게 두발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왜 내 기억에서 비어있는 걸까. 왠지 모르게 슬픈 마음이 드는 것과 동시에 자전거에 대한 추억이 곳곳에서 말을 걸어온다.
이 책은 58일간의 자전거 미국횡단기다. 처음에는 글씨체가 작아서 초반에 적응하는 시간이 걸렸는데, 금세 은근 매력적인 글과 그림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녀가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갈 때 바라보는 풍경과 생각들은 나도 함께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녀와 함께 때로는 바람에 맞서고, 순풍과 함께 달리며 내 시간을 타고 달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는 기분으로 책을 읽는 사이, 선생님께서 내 안부를 물으며 다시 어서 시작하라며 시를 한 편 보내주셨는데, 당분간은 멈추고 싶었던 마음이 다시 천천히 페달을 밟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저 멀리 보이는 산, 가자 저곳으로, 그 산을 오르고, 마침내 고지를 넘으면, 지나간 일이 된다.’라는 책 속 문장과 함께 ‘내 자전거가 빨랐으면, 내 그림이 예뻤으면 좋겠다’, ‘하던 건 계속 해야지’하는 작가의 말이 마치 내 생각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이전까지는 ‘다 때려 칠래’하던 마음도 어딘가로 사라졌다. ‘좋아하는 일이잖아요. 계속 해야죠’ 하는 말만 남았다.
자전거를 타는 일은, 산을 오르는 일을 닮기도 했다. 내 마음이 내 몸을 온전히 이끌어가는 시간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겠다던 그녀는 끝내 실패하지만, ‘자신에게 포기를 허락하는 것 역시 기분 좋은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이와 함께 우리는 새로운 걸 알게 된다. 실패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걸.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걸. 그저 좋아하는 마음만 여전하면 된다고.
연필로 쓴 듯한 글씨와 그림을 눈으로 따라가며 그녀의 자전거에 오르고, 그녀의 무릎 통증을 함께하며 쨍하게 빛나는 순간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힘을 내게 된다. 너무 편한 일상 속으로 조용히 숨으려던 내가 햇살한테 들킨 기분도 든다. 미안, 느리더라도 계속 힘을 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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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페달 밟기가 말도 못 하게 힘들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고 그동안 큰 산을 오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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