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지당·이사주당·강정일당 - 조선의 여성 유학자들 ㅣ 창비 한국사상선 13
임윤지당 외 지음, 이숙인 편저 / 창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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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한국사상선>을 완간하였다고 한다. 총 6년간 이어진 장기 프로젝트로 조선시대에서 20세기까지 한국사상의 정수를 집대성하였다고 한다.

나에게 있어 조선시대 여성이라 하면, 시부모님과 남편을 돌보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집안을 살피는 존재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나온 3명의 여성 유학자의 이야기와 핵심 저작들을 읽어보니 참으로 놀라웠다. 그 시대에서 존재론적 질문과 학문으로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1. 임윤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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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지당은 조선 성리학을 연구하여 글을 남긴 여성 유학자로, 이 분은 조선시대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대에 남자로 태어났다면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펼치고 다른 이들과 사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이사주당, 강정일당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강정일당의 글에서 윤지당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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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당은 어려서부터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읽었고, 즐거워서 그만둘 수 없다고 하였다. 그녀가 쓴 <윤지당유고>에서 “나는 어려서 성리의 학문이 있음을 알았고 조금 자라서는 더 좋아하게 되었는데, 고기 맛이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아 그만두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라 하였다. 그녀의 저서를 보면 문답형식으로 성리학과 관련하여 글을 썼는데 그녀만의 생각으로 성리학을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글을 읽어보면 정말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다. 임윤지당은 정말 말 그대로 “찐 유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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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나는 비록 부인이지만 하늘에서 받은 성품은 애당초 남녀 차이가 없다.”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서 어떻게 여성이 이렇게 말 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은 인간이면 누구나 같다고 하였다. 아아, 나는 조선시대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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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의 글을 읽고나니 여성인 나도 덩달아 힘이 났다. 마치 나에게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라고 용기를 주는 것 같았다.

2. 이사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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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주당의 <태교신기>는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어서 내게는 조금 익숙한 분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부부간의 정을 나누는 존재였고, 도의를 논하는 정신적인 파트너였다고 한다. 남편과 사이가 좋았으니 자녀들도 1남 3녀를 두었다. 이사주당은 자녀 교육에 열성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태교신기를 저술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데 반전이였던 것은 사주당이 자식들에게 기대한 것은 부와 권세를 가져다주는 과거시험과 같은 것이 아닌 “자신의 성품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었다 한다. 출세나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학(學)이 아닌 자신을 위하고 자신에게 충실한 학(學)이여야 한다고 하였다.[​위기지학(爲己之學)이 아닌 위인지학(爲人之學)] 이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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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신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하면, 아이를 기르는데 있어 어머니의 역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3. 강정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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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일당에게 있어 “학문이란 삶의 매 순간마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바라보았다. “일상이 곧 경전이고 경전이 바로 일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밥을 하다가 글을 쓰고 길쌈하다 강독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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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명의 여성 유학자들 중 강정일당에 마음이 가장 많이 갔다. 그녀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어린시절에 나의 조부님은 나에게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다 라고 하셨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보고 배우고 듣고 느낀 것들 모두가 공부라고 하셨다. 마치 강정일당의 말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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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저서인 <정일당유고>에는 그녀가 쓴 다양한 형식의 글이 담겨있다. 남편인 윤광연이 자신의 아내가 쓴 글을 모으고 모아 편찬하였다. 남편이 먼저 떠나간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책을 만들려 노력하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참으로 애틋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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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에는 시, 짧은 글, 남편을 대신하여 쓴 편지, 남편을 위해 쓴 짧은 편지 등이 담겨있는데 강정일당은 마치 작가같다. 감성적이면서도 따뜻하고 때론 날카롭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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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3명의 조선 유학자를 만나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다들 놓인 환경에서 그들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에 있었거나 형제들 또는 배우자들이 스승 또는 벗으로 그들을 대해주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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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환경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그들의 위치에서 노력하였다는 것이 가장 큰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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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3명의 유학자들처럼 나의 위치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 가야할 길이 있다면 묵묵히 나아가야겠다.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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