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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평점 :
따라서 남들을 바보로 단정하기는 쉽지만 인간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바보같이 어려운 일인지 잊어버린 사람이 아닌 이상, 남들을 바보로 단정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미리 짚고 넘어가는 편이 좋겠다. p. 15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서 처음 일어난 은행강도 사건. 그런데 은행에 현금이 없다? 결국 강도는 은행 옆 오픈하우스에 우연히 들어가 어쩌다 인질극을 벌이게 된다. 바보같이 어리버리한 강도와 반항하는 인질들, 그리고 아버지, 아들 경찰의 이야기.
경찰과 목격자들의 대화를 보면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대체 왜 협조적이지 않고 다들 대화가 통하지 않는 건지. 열이 나면서 '바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경찰도 바보같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 사회의 문화나 패러다임과 맞지 않는다고 그 사람을 바보라고 칭하거나 이상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나 역시도 바보다.
요즘은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어처구니없을 만큼 많다. 취직도 해야 하고 살 집도 마련해야 하며 가정도 일구고 세금도 내고 깨끗한 속옷도 있어야 하고 빌어먹을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외워야 한다. p. 15
공과금도 내야 하고 어른도 되어야 하는데 어른이 되는 법을 몰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지독히 높은 일이라서 겁에 질릴 때도 있다. p. 16
학교에 다니면서 학생으로서의 의무는 오로지 학업에 열심히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졸업하고나면 갑자기 어른이 되고, 그에 따르는 책무를 갖게 된다.
결혼하면 그것은 최고조에 이른다.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건강도 챙겨야 하며, 집 안 모든 것에 신경쓰고 관리해야한다.
로게르가 말하길 구매 희망자들은 두 부류로 나뉜대요. 투자처를 찾는 사람들과 집을 장만하려는 사람들. p. 179
가난한 사람은 점점 가난해지고 부유한 사람은 점점 부유해지고,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과 빌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 진정한 계층 격차라는 뜻이에요. p. 317-318
오픈하우스의 사람들은 아파트를 그저 구경만 하려는 목적으로, 어떻게든 싸게 구매해서 비싸게 팔려는 목적으로, 신혼집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등등 다양한 이유로 와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과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벌써 몇십년째 이어진 부동산 광풍이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서도 보인다. 물론 한국과 아주 많이 다르긴 하지만. 부동산은 불로소득이기에 이를 재산 수단으로 보지 말고, 삶의 터전으로만 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쿠키 생각 하지 말라고요! p. 21
지금 설마 '인질극이 벌어졌을 때 대처법'이라고 구글링하고 계신 거에요? p. 87
작가 특유의 유머가 곳곳에 나와있다.
그러나 블랙 코미디는 아니라서 마음에 든다.
나는 우울한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지않는다.
코미디보다는 블랙에 중점을 둔 걸 많이 봐서 그렇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실제로 피식할 수 있어서 좋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온화하면서도 편안해진다.
목격자 한 명 아니면 전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p. 61
이는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 을 보는 듯하다.
대체 인질들은 왜 은행강도를 도와주려고 하는가.
인질들이 모두 나온 후 강도는 자살하였는가, 아니면 도망갔는가, 그것도 아니면 아직도 오픈하우스에 숨은 채로 남아있는가.
이제 바보같은 목격자들의 진술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그럼 당신은 뭘 믿는데요? 사라는 쏘아붙였고 무엇이 그녀를 여기까지 몰고 왔는지 몰라도 결국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헤드폰을 불끈 쥐었다.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그렇게 물어봐주길 10년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대답을 들었을 때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사랑요. p. 341
심지어 이 이야기에도 로맨스가 있다.
다들 현실에 치여서 바쁘게 사는 사람들인 줄 알았더니.
가장 냉랭할 것만 같았던 인물조차 따뜻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 바보는 없다.
모두가 살아남기위해 발버둥칠 뿐.
나와 너는 '불안한 사람들'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