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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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명의 부유한 학부모들이 예일, 스탠포드, 조지타운, 서던캘리포니아 등의 명문대에 자녀를 집어넣기 위해 교묘히 설계된 입시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p. 27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미국에는 기여금 입학제도가 합법적으로 존재하기에 편법으로 면접준비를 하는 이들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미국도 입시 비리가 있었구나.

그것도 우리나라와 아주 유사한.

얼마 전 기사가 떠오른다.

한국의 입시 브로커가 학생들의 중고교 성적을 위조하고 미국 SAT 시험지를 빼돌려 미국 명문대에 합격시켰다는 기사.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현지 명문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이 자신의 과제를 50차례나 관리받았다는 게 밝혀졌다.

참.. 미성년자도 아니고 대학원까지 가서 숙제조차 자기 스스로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 학생은 사회에 나가서 어찌 일하려는 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애초에 논술준비, 면접준비 등을 혼자 한 나로서는 저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에 합격한 이들이 밉기도 하지만,

동시에 입학 후 내 학부 성적의 저 아래쯤에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다른 이들의 성적을 뒷받침해주기위해 대학교에 가는 것인가?

창피함보다는 졸업장이 우선인가?

과연 단순한 수료증이 아닌 학점, 과목, 영어 시험 등의 조건을 모두 갖춘 졸업장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인가?

부자 부모는 자녀를 SAT 모의 응시 과정에만 넣는 것이 아니라, 사설 입시 카운슬러를 고용해 입시 스펙을 다듬어준다. 또한 무용, 음악 레슨을 받게 해주고 펜싱, 스쿼시, 골프, 테니스, 조정, 라크로스, 요트 등의 엘리트 체육을 익히게 해준다.

p. 32

이 모든 점을 따져 보면 아이비리그 대학생 삼분의 이 이상이 소득 상위 20퍼센트 이상 가정의 출신임은 놀랄 일이 아니다.

p. 32

강남의 입시 컨설턴트, 혹은 입시 코디네이터에게 한 번 관리받는 비용만 해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품 안의 자식, 치맛바람이 유치원, 초, 중,고등학교를 넘어서까지 지속되고있다.

그런데 적어도 이는 불법은 아니다.

단지 부모의 경제력이 단단히 뒷받침되어있을 뿐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릴 적부터 다양한 양적, 질적 경험을 하게 된다.

'부유함' 이란 단순히 돈이 많다는 걸 넘어서서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익히게 되는 견문이 그만큼 다양해진다는 걸 뜻한다.

아이는 유도와 야구와 피아노와 수영을 배운다.

운동에도 음악에도 관심이 많다.

미취학 시절부터 가족 여행을 자주 간다.

국내 여행은 너무 많이 가서 기억이 안 날 지경이고, 유럽을 포함한 해외 여행도 1년에 2번 이상씩 간다.

입학을 하게 되고 자신이 어렵게 여기는 과목에 대한 별도 과외 학습을 받는다.

특목고에 진학하기위해 부모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정보를 교환한 뒤, 알맞은 중등 입시학원에 보낸다.

이 모든 게 돈과 연관되어있고 이제 아이는 자신의 노력에 부모의 경제력이 더해져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미국이 다른 많은 나라보다 더 불평등할 뿐 아니라 이동성도 덜하다는 사실을 알면 충격과 당황에 빠지게 된다. 어떤 사람은 사회적 이동성 지표를 애써 부정하며 "나 때는 말이야. 힘써 노력만 하면..."이라는 식으로 개인 경험에 집착한다.

p. 131

시대가 변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IMF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라졌다.

90년대 초반에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어느 기업에 갈 건지 선호도를 조사하는 뉴스가 TV에 방영되곤 했다.

이제는 졸업 후 갈 곳이 없어서 시간제 근무를 하거나 안정된 직업을 위해 수년씩 고시생으로 살곤 한다.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물론 아직 일자리는 많다.

다만 소위 '명문대' 라고 불리는 4년재 대학교 졸업 후 전공을 살려서 갈 수 있는,

그리고 연봉과 복지가 적당한 기업의 일자리가 구인자보다 많지는 않다는 거다.

구인구직 사이트를 보면 시간제 근무 인력을 구하는 중소형 업체나 공장들이 굉장히 많다.

하루에도 몇십, 몇백 건씩 구인 광고가 올라온다.

그러나 그에 반해 평생 그러한 업체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의 수는 극히 적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내가 이런 저런 재능을 갖게 된 건 내 노력이 아니라 행운의 결과다.

(중 략)

두 번째로, 내가 재능을 후하게 보상하는 사회에 산다면 그것 역시 우연이며, 내 능력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p. 200

능력주의는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며 살기엔 세상이 그리 공정하지 못하다.

만약 내가 외국어 습득 능력이 뛰어나다면 그건 내가 노력한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저 타고난 재능으로, 부모에게 감사해야 한다.

만약 내가 한 번 본 자동차 번호판은 절대 잊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능력이 쓰임새 있는 분야를 찾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나의 능력은 내가 잘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운이 좋아서 가지게 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발견하고 개발하도록 도와줄 부모의 경제력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나의 능력이 인정받는 시대와 사회에 태어난 자라면, 그리고 그 능력을 적극 활용하여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면,

나를 키워준 이 사회에 조금은 환원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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