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의 탄생 - 튀김옷을 입은 일본근대사
오카다 데쓰 지음, 정순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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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가스의 역사나 일본의 근대의 특수성에 대해서 굳이 길게 이야기하진 않으련다. 그런 내용은 이미 출판사 서평이나 다른 이들의 리뷰에도 충분히 언급되어 있으니까. 그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절실히 느꼈던 것은 음식 하나에 대해서도 온갖 기록들이 온전히 남아있고, 꾸준히 연구되어온 일본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이 책의 저자가 유려한 문체로 풀어내는 돈가스의 역사는 저자 개인의 노력으로 쓰여진 것이기도 하지만, 탄탄한 기존의 연구 성과들에 의해 뒷받침된 것일 터.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적인 연구를 한다는 학자들 대부분은 정작 현재 우리가 먹는 음식들에 대한 연구보다는 박제화된 과거의 궁중요리의 제법이나 전통 식재료의 영양학적 우월함 등에만 집착하고 있는게 현실이고, 이런저런 향토 음식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지자체나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꾸며내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범람한다. 최근 식문화의 역사에 대한 책들이 조금씩이나마 나오고 있긴 하지만, 그조차도 몇 안되는 학자들 혹은 아마추어 블로거들에 의한 것들 뿐이다.

 언제가 되어야 우리들은 이렇게 차분하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우리네 음식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될까. 짬뽕과 짜장면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주영하 교수의 '차폰 잔폰 짬뽕' 정도가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아직 한참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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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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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을 탐탁찮게 생각하면서도 꾸준히 사고, 읽어왔다. 편향된 시각과 부정확한 기술들이 심심찮게 눈에 뜨이지만, 어쨋건 작가 자신이 자신이 쓰는 것은 역사가 아닌 이야기라고 공언하면서 미리 언질을 주는 점도 감안해왔고, 읽는 재미가 이만한 책들도 드물었으니까. 특히 그녀는 자신이 애정을 쏟는 대상에 대해서는 놀랄만한 자료 조사와 필력으로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덕분에 '바다의 도시 이야기'나 '로마인 이야기'들 중 4권에서부터 10권에 이르는 분량은 그야말로 걸작이라 말해도 손색이 없는 정도였다. 하지만 '로마인 이야기'도 로마 제국이 쇠망기로 들어서면서 그에 발맞추어 점점 재미가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니, 15권에 이르러선 끝까지 읽기가 괴로운 수준이었고.. 그 후속작인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는 하권은 읽어볼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나온 '십자군 전쟁'.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 자체를 호의적으로 보진 않는단걸 이전의 책들을 통해서 알고 있었고, 당연히 책도 그리 뛰어나지 못할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전쟁 이야기는 누가 써도 어느 정도의 재미는 보장되기 마련이고, 혹시나 기대도 있었기에 결국은 구매하여 읽게 되었는데..

 

 보통 이런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전쟁과 전투의 묘사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십자군 이야기'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십자군의 배경과 영주들의 면면을 설명하는 부분까지이다. 십자군에 참여한 인물들의 면면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기존에 우리나라에 번역 출판된 십자군 관련 서적에선 홀대되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에 참여한 각 개인들의 배경과 참가 동기를 꽤나 그럴듯하게, 출신지를 표시한 지도와 가문 문장까지 표시해가며 서술해주었고, 이후의 내용에서도 약간의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침내 십자군의 대열이 유럽을 떠나 비잔틴 제국으로 향하고, 이슬람 세력과 전쟁을 벌이는 부분부터 시오노 나나미의 비잔티움 제국과 이슬람에 대한 편향된 시각과 혐오는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게 만들 정도다. 

 예를 들어보자. 안티오키아 공성전 파트에 나오는 알렉시우스 1세에 대한 평가다.  

 '만약 이 시기에 비잔틴제국 황제가 군량을 가득 실은 선단이라도 보내주었다면, 황제에 대한 십자군의 마음도 많이 개선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중략)...알렉시우스는 교활한 남자였을 뿐, 진정 깊은 꾀와 먼 장래를 내다보는 생각 같은 건 없는 사람이었다.' (145p) 

 1071년의 파멸적인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10년 동안 혼란에 빠져서 완전히 붕괴 직전에 이른 비잔틴 제국을 다시 부흥시키고, 제국의 수명을 300년 연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황제도 시오노 나나미 앞에선 그저 교활한 남자일 뿐이다. 이게 나름의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내린 견해라면 괜찮다.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저런 평은 사료의 곡해와 선별 혹은 몰이해에서 기인한다는게 문제다.당시 십자군은 그저 팔레스타인으로 가기 위한 길을 뚫기 위해 몇몇 도시만 점령하고 지나가던 것에 반해, 비잔티움 제국은 우크라이나 방면의 유목민족이나 불가리아, 헝가리 등을 상대로도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던데다 소아시아 서부 일대에서 투르크를 상대로 계속해서 전쟁을 해야 했다. 당연히 소아시아 내륙에서의 제대로된 육상 보급로 확보는 힘들었고(2차 십자군은 소아시아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고 괴멸했다는 점을 상기하자.), 해상 보급 역시 에게해 일대의 섬까지 투르크에게 점령당했다가 간신히 되찾은지 얼마 안되었기에 어려웠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아르메니아를 통해 십자군에게 보급로를 확보해주고, 안티오키아의 공략에 큰 역할을 했던 공성탑을 건설하기 위한 자재를 실은 보급선단을 보낸 것은 알렉시우스 1세였다는 것이 유력시되고 있다. 다른 기록에서도 그 선단을 이끄는 지도자가 영국인이었다는 말은 있지만, 그 선단 자체가 영국에서 왔다는 기록 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예를 제외하고도 체사레 보르지아에 대한 책을 썼을 정도로 나쁜 남자를 사랑하는 시오노 나나미답게 안나 콤네나가 쓴 알렉시아드의 일부를 직접 인용해가며 안나 콤네나가 보에몽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서술하거나(안나 콤네나가 보에몽의 외모가 훌륭했다고 기술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 바로 뒤에 안나 콤네나는 그런 외모도 성격 때문에 빛이 바랜다고 적었는데, 시오노 나나미는 당연한 듯이 그 부분은 옮기지 않았다), 비잔티움 제국의 군사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서술(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제국의 군대가 약화되고 용병들의 비중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군사력은 무시못할 수준이었다.)에 이르러선 할 말을 잃을 정도다. 게다가 초두에 언급했던 로마와 베네치아에 대한 애정은 정작 이 두 세력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 책에서조차 꾸준히 언급되면서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고, 작가가 정작 이 책의 주인공들에겐 별 관심이 없는게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기존엔 역사의 공백을 적절히 메꿔주면서 나름 재미를 주었던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보충도 그런 식의 편향된 시각으로만 일관되게 그려지다보니 되려 짜증을 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게 아니면 '독일인의 철저함' 과 같은 막연한 이야기로 대충 넘어가려고 하는 부분들만 눈에 뜨이고.  

 

 처음에도 말했지만, 나는 시오노 나나미에게 역사적인 엄밀성을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젠 역사를 다룬 책으로서 용인할 수 있는 어느 선을 넘어선 듯 하다. 게다가 재미조차도 별반 기대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답은 그녀의 책을 더이상 읽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이 내가 구매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마지막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지금 우려되는 것은 이 책이 역사에 대한 얼마나 많은 잘못된 지식들을 퍼뜨릴까 하는 점이다.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해 우리나라에선 이전엔 거의 세간의 관심이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더 심하게 걱정된다. 이런 책보단 Steven Runciman 의 십자군 3부작 같은 책이 번역되어 소개되는걸 바라는건 한국 출판 시장에 대한 과도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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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일기 1
에스노 사카에 글.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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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작, 아니 그 미만의 작품이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성격이 설득력이 없다. 평범한 학생이었을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들이 너무 당연한 듯이 극한 상황에 적응하는 모습이나,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듯한 모습은 감정 몰입을 방해한다. 또한 스릴러물로서 갖춰야할 구성 상의 치밀함도 발견할 수 없다.

 그림도 그다지 높은 점수를 줄 순 없겠다. 액션신의 비중이 높고, 신체절단이 수도 없이 나오는 과격한 내용임에도 신경써서 보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를 정도로 박력이 없으니 말 다했다. 사람 팔다리가 무슨 바나나 잘려나가듯이 절단되니 보면서도 감흥이 있겠는가. 

 결국 이 만화를 좋아할 사람은 작중에 흐르는 윤리관을 무시하는 분위기(그렇다고 이게 뭐 대단한 배경이 깔려있어서 그런건 아니다)와 여주인공의 정신나간듯한 행동과 애정 공세에 끌릴 친구들 정도 뿐일 듯 하다. 그런데 또 그런 사람은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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