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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 - AI 시대, 다시 인간의 길을 여는 키워드 8
신상규 외 지음 / 아카넷 / 2020년 2월
평점 :
* 아카넷에서 최근에 나온 따끈따끈한 훌륭한 책을 소재로 서평단을 모집하고 있어서 바로 지원해서 참여하게 됐다.
아카넷에서 적절한 때에 맞추어서 훌륭한 책을 내주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날이 갈수록 그 속도를 따라잡기도 힘들 정도의 인공지능 기술발전의 시기에 걸쳐있는 때이고,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지금 전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가짜 뉴스 바이러스에 시달리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시기적절한 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저자들 또한 모두 진심으로 존경해마지 않는 선생님들이다. 대부분은 각 분야에 대해서 빠삭하게 이해하고 그에 따라서 글로 잘 풀어낼 수 있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강연을 확장 및 심화해서 엮은 책들이기 때문에 내용 또한 풍부하다. 요즘 서점가에서 흔히 보여서 널리고 널린 '4차 혁명'을 소재로 한 조무래기 책들과는 그 수준이 확연히 다르다.
책은 총 8가지 키워드로 구성되어있다. 기계지능, 사이보그, 인공자궁, 소셜로봇, 가짜뉴스, 기본소득, 마이크로워크, 인류세의 순서다. 모두 지금 상황과 크게 동떨어져있지 않고 이미 다가온 미래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주제들은 다시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인공지능, 사이보그, 인공자궁이라는 상징적인 세 가지 기술을 통해서 주요 첨단기술의 특성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그것들이 가지는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했다. 2부에서는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을 기반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변화가 생기게 될 지를 살펴봤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이러한 포스트 휴머니즘 사회 속에서 우리가 끝끝내 결국에는 대면해야 할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살펴봤다.
모든 키워드를 언급하기에는 서평이 너무 길어지므로 1부부터 순서대로 선택적으로 이야기하겠다. 기계지능 파트에서 이상욱 선생님은 '지능(intelligence)' 개념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통해서 '인공지능'에 대한 불필요하고 근거없는 오해를 정리하고 휴머니즘적 가치를 재검토하고자 했다. 우리가 여태까지 지능 개념에 대해서 얼마나 인간중심적인 이해를 했는지 다시 재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영의 선생님은 그 다음 사이보그 파트에서 이미 현재로 다가온 사이보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사이보그가 된다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반문을 제기한다. 지켜야 할 '순수한 인간성'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로 있는가? 애초부터 우리들의 '순수한 인간성'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진화의 역사 속에서 우리들은 언제나 잡종이었고 현재를 포함해서 앞으로도 기계와 결합되는 시대에도 잡종으로 남을 것이다. 순수한 인간도 순수한 기계도 아닌 우리들은 이미 사이보그다.
2부에서는 신상규 선생님이 소셜로봇을 통해서 기계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논의로 첫발을 떼었다. "로봇이 실제로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이 로봇을 대하는 방식과 더불어 그것들과 어떤 유의미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입각하여 도덕적 지위 여부가 결정된다고" 보는 입장은 꽤나 참신하긴 했다. 그런데 내 생각에 이러한 입장은 얼핏 보기에 비판받을만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기존 문화의 규범성에서 벗어나기 힘든 보수적인 도덕으로 빠지게 될 경향성이 크지 않을까? 혹은 너무 인간의 문화(강자의 문화)만을 위주로 도덕을 고려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왠지 성공적으로 발전하기에는 힘들 입장이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든다.
그 다음으로는 지금 가장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가짜뉴스'에 대한 논의다. 디지털 세계의 질서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소수의 기술집단과 권력집단이 가짜뉴스를 통해서 시민들의 감정을 조절하고 선택을 좌지우지하는 이야기가 있다. SF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같은가? 그러나 이는 단순히 <멋진 신세계>나 <1984>나 <블랙미러>와 같은 가상의 세계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충분히 지금 여기의 실제 세계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이들은 시민들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자기들 마음대로 거대한 권력을 휘두르는 셈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그저 뒷짐지고 지켜만 보는 순진한 '바보(idiot)'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블랙박스 속에 감추어져있는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사회 구성원 전체의 논의와 참여를 통해서 공론화하고 다룰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법적·철학적 근거를 고안해내야 할 것이다.
3부에서는 지금 포스트 휴머니즘 논제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인류세'에 대해서 논의된다. 특히 그중에서도 점점 가속화되어가고 있는 기후 위기를 포함한 환경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절대 다수의 과학자들은 인간 활동에 따른 비정상적인 기온 상승의 문제라고 진단을 내리고 있다. 꽤나 흥미로운 구절은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라고 하는 과학철학자가 예전에 한참 비과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이론이라고 비판받았던 '가이아 이론'을 빌려왔다는 점이다. 라투르는 예전에 그의 행위자 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이하 ANT)과 데닛의 지향계 이론을 비교하던 장대익의 논문에서 본 기억이 있다. 그때에도 마음이나 의식이 없는 인공물이나 생명체에게도 행위 능력을 부여하는 그의 ANT가 꽤나 급진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경우에도 이러한 ANT를 활용해서 가이아 이론과 접목시켜서 지구라는 커다란 시스템을 하나의 행위자로 보려는 시도를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이론이 어떤 귀결을 낳게 될 지, 그것이 과연 받아들일만한 이론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인류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도전해볼만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포스트 휴머니즘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여러 개념들과 문제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았다. 하나하나의 문제들이 모두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총체적 난국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아온 업보가 한꺼번에 다시 돌아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디스토피아적인 전망 속에서 좌절만 한다면 해결되는 것 하나 없이 힘만 빠지는 꼴이다. 분명히 가슴에 새겨두고 계속 기억해야 할 것은 '잠깐 멈추고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끝을 모르는 달려만가는 자본주의의 확장 속에서 우리들은 '중지'를 날려야 한다. 제발 이제는 좀 닥치고 멈추어서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알아차린 뒤에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이러한 양질의 책들이 시민들에게 알려져서 읽힌다는 것은 문제 인식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