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300년 - 영감은 어디서 싹트고 도시에 어떻게 스며들었나
이상현 지음 / 효형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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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동안 함께 일한 건축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이 책을 들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건축은 너무 어렵다는 말이 많이 오갔다. 건축가는 경험이 쌓여도 놓치는 부분이 생겨서 힘들다고 했다. 비전공자인 나는 우리가 지으려고 하는 건축물을 프로젝트가 거의 끝날 때쯤에야 파악할 수 있었다. 책에서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우리가 지으려던 모던하고 심플한 건축물이 왜 어려웠을까 하는 의문이 풀렸다. 이 책은 혁명주의 건축에서 시작하여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 해체주의 건축까지, 건축의 300년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과정을 장식을 중심으로 하여 부의 집중현상과 연결하여 풀어낸다. 건축 전공자가 아니기에 건축가가 풀어낸 방대한 내용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 주변의 건축물이 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작가인 건축가의 시선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p206-207.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은 단순하다. 특히 역사주의 양식과 비교하면 그렇다. 그런데 리처드 마이어의 작품이, 그의 건축에 주어진 ‘백색 미학’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상태가 되려면 대단히 정교해야 한다. 단순하면서 정교하려면 엄청난 품이 들어간다. 들어가는 품의 값으로 치자면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을 장식으로 휘감아 놓는 것보다 비싸다. 그의 건축은 그 자체로 장식이 된다.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은 단순해지고 싶었다. 아주 극단적으로. 그런 극단적 단순함을 견디기 위해서는 정교해야만 했다. 그의 건축은 정교함으로, 단순함을 단순하게 모방할 뿐이다.
리처드 마이어는 모더니즘 맥락에서 머무는 듯하지만, 그의 건축은 과다한 장식일 뿐이다. 그래서 그 역시 포스트모더니스트다.
 
p322. 혁명주의 건축 시기에 장식이 사라졌다. 뉴턴 기념관과 영란은행, 소금공장 노동자 주택에서 장식이 사라졌다. 1750년 즈음의 일이다. 그 뒤를 절충주의가 이었다. 장식이 늘어났다. 칼 프레드릭 싱켈의 알테스 무제움을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19세기 말 아돌프 로스가 나타났다. 장식이 줄었다. 이런 경향은 국제주의 양식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1960년대가 되면 슬슬 장식이 재등장한다. 1980년이 지나면서 이 경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p328. 1750년대 혁명주의 건축 이후 건물의 형태적 특징은 ‘부의 집중’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 부의 집중이 심화하는 시기에는 장식은 증가하고, 부의 집중이 약화하는 시기에는 장식은 감소한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등장 이후 부는 다시 집중되기 시작했고, 그와 보조를 맞추는 듯이 건축에서는 장식적 경향이 눈에 띄게 늘었다. 물론 과거 역사주의 양식에서 보이던 방식의 장식 증가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뼈를 갈아 넣는 열정으로 표현되는, 건축가들의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실상 장식 때문이었다. 르 꼬르뷔지에의 기본 형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추구 또한 장식 아닌 척하는 장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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