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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 만든 천국
심너울 지음 / 래빗홀 / 2024년 3월
평점 :
마법세상의 고민들은 대체로 판타지 세계 속의 장엄하고, 생사를 가르는 문제들이었다.
세계를 파괴하는 절대적 힘을 가진 마법사들로부터 나의 소중한 세계를 구하기 위한 사투들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다.
그에 비해, 심너울의 <갈아만든 천국>속 SF 마법사들의 고통과 고뇌는 꽤 친숙하다.
지극히 현대적이고, 소시민적이고, 한국적이다.
그 덕분에 지금처럼 멋진 제목이 나타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청준의 소설 제목이 떠오르는 '갈아 만든 천국'.
그 속의 휴먼스무디들의 고백을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의 세계는 21세기, 어쩌면 우리가 당면한 2024년처럼 보이나,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유전적으로 얻을 수 있는 마법의 능력, 즉 인간 마력의 근원인 역장이다.
왜 이토록 보편의 세계에 이질적인 마법이 끼어들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는 부분이고,
여기서 많은 사건들이 발생한다.
이야기에 걸쳐 이어지는 비극 속에서 우리는 몇 명의 인물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고여서 풍부해짐을 느낄 수 있다.
A급 혈장의 주인이었던 허무한부터 시작해 몇 명의 인물을 돌았다 다시 허무한으로 끝나는 이야기는 환상적인 마법의 능력에 유물론 한 스푼, 신자유주의 두 스푼을 더해서 꽤 끔찍한 비극으로 거듭났다.
역장은 한국인이 자기성장과 성취를 위해서라면 투약을 간절히 원할 신의 인슐린처럼 보이지만,
첫 번째 에피소드가 역장의 판매라는 것조차 지극히 K-SF 답다.
많은 판타지 소설의 독자들은 자신이 그 세계의 등장인물이 되어보길 꿈꾸나,
SF 독자의 경우 밖에서 관망하기를 선택하곤 한다. 꿈도 희망도 없는 디스토피아에 선뜻 발을 들여놓기 내키지 않는 것이겠지.
마찬가지로 누구라도 <갈아만든 천국>의 등장인물이 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이야 말로 이 작품이 SF의 마지막 조건까지 완벽히 갖추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