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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평점 :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홈 파티>부터 <빗방울처럼>까지,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어요. 평소 단편을 자주 읽지 않아서, 짧은 호흡이 처음에는 꽤 낯설게 느껴졌어요. 이제 막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데 끝나 버리는 느낌. 뒷이야기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채, 저자는 또 다른 이야기 속으로 훌쩍 떠나버리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읽다 보니, 짧은 호흡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됐어요. 어쩌면 장편보다 더 많은 감정과 여운을 남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감정과 삶을 함께 말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안녕이라 그랬어>에 실린 단편들은 세상의 환한 빛보다, 그 빛에 가려진 그림자 속 사람들의 삶을 비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지만, 사실은 저마다의 불안과 결핍을 품고 있는 사람들. 어쩌면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이들도 그렇게 각자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상대의 표정과 옷차림, 사는 집과 자동차 같은 것들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위치를 가늠하곤 해요. 책에 나오는 서사적 윤기, 계급적 표지, 계급적 친밀감, 내장의 관상 등의 표현처럼요. 그래서 사람들은 더 나은 삶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고, ‘언젠가’라는 말을 붙잡은 채 살아가요. 하지만 현실은 쉽게 나아지지 않아요.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앞서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질투와 좌절, 열등감이 한꺼번에 밀려오기도 하죠. 사람들은 이를 개인의 선택이나 능력 문제처럼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가진 것이 많을수록 더 많은 기회와 정보를 얻고 실패의 위험도 감당할 수 있으니까요. 반면 어떤 이들에게 지금 가진 돈은 삶의 전부이기에 쉽게 모험할 수 없어요.
<홈 파티>에서 이연이 말하듯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는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건 아닐까요. <빗방울처럼> 속 지수와 수호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왔음에도 삶의 기반을 잃고 무너지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데도 사회는 그들의 불안을 이해하기보다 쉽게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리곤 하죠.
책 속 인물들은 대부분 40대예요. 어린 시절에는 무언가를 이루고 안정되어 있을 거로 생각했던 나이. 하지만 막상 그 나이에 다다르면 여전히 혼란스럽고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이뤄놓은 것이 없다고 느낄수록 상실감은 더 커지죠. SNS 속 타인의 삶은 끊임없이 비교를 부추겨요. "나는 왜 이렇게밖에 살지 못할까."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다른 걸까." 그런 질문들이 마음속을 어지럽게 맴돌아요.
그래서 <좋은 이웃> 속 주희의 말이 오래 남아요.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씁쓸하지만, 그 말에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젊을 때는 사회의 부당함에 쉽게 분노했는데, 현실을 살아내는 동안 그런 감각도 조금씩 무뎌진 건 아닐까요.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이라는 말을 핑계처럼 붙들며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자꾸 미루게 돼요. 하지만 정말 여유가 생기면 우리는 달라질까요. 아니면 또 다른 욕심을 붙잡게 될까요.
이 책은 돈과 이웃에 관해 이야기해요. 세상에는 분명 좋은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왜 그렇지 않은 장면들이 더 자주 눈에 들어오는 걸까요. <좋은 이웃>에서 시우가 던지는 질문처럼, 그런 가치를 믿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정작 현실은 "왜 이런 세상이 되었는가"라는 질문보다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만 끊임없이 요구해요. 어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도 결국 질문의 본질보다 생존의 기술이었던 건 아닐까요.
책은 결국 우리 사회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질문해요. 돈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삶의 대부분을 결정짓는 힘이 되어버린 시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어야 비로소 여유와 존엄도 가능해지는 현실 말이에요. 실제로 2021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한국은 17개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어요. 대부분의 나라가 '가족'을 1위로 선택한 것과 대비되는 결과였어요. 한국 사회의 물질 중심적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결과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해요.
'안녕'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예요. 아무 탈 없이 편안한 상태. 그리고 만나거나 헤어질 때 건네는 인사말.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훨씬 더 많은 의미의 안녕을 마주해요. 사람뿐 아니라 시간과 장소, 추억과 물건에도 안녕을 건네요. 간혹 <안녕이라 그랬어>의 은미처럼 암영을 잘못 들은 안녕까지. 그 안에는 반가움과 설렘도 있지만, 슬픔과 체념, 애틋함과 후회도 함께 섞여 있어요. 우리는 과연 어떤 안녕을 말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돌이켜보면 저는 '안녕'이라는 말을 꽤 가볍게 사용해 왔어요. 반가운 마음으로, 혹은 헤어짐의 아쉬움을 담아 습관처럼 건네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때로는 그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늘 익숙한 인사말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으며 생각이 달라졌어요. '안녕'이라는 짧은 말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과 사연이 숨어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누군가에게 안녕은 다정한 인사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버텨낸 하루의 끝이자 어렵게 꺼내는 작별일 수도 있어요.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안녕에 담긴 의미를 너무 쉽게 지나쳐온 건 아닐까요. 복잡한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힘든 감정을 마주하기 싫어서 내 방식대로만 해석해 버린 건 아니었을까요. 그런 생각이 들자, 문득 미안해졌어요. 누군가의 안녕을 너무 가볍게 받아들였던 건 아닐까 싶어서요.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난 뒤에는, 제가 건네는 안녕이 조금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더 오래 머무르고, 조금 더 마음을 들여다보는 안녕. 서로의 삶을 쉽게 판단하지 않으면서도, 괜찮냐고 조용히 물어볼 수 있는 그런 안녕 말이에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