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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 출간 50주년 기념 개정판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2024년 3월
평점 :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며 살아가요. 누구에게나 하루는 똑같이 주어지는데도 늘 부족하고, 늘 쫓기는 기분이 들죠. 그래서 시간 관리법을 찾고, 틈새 시간까지 알뜰하게 활용하려 애써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촘촘히 채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질 거라고 믿으면서요. 그런데 이상해요. 삶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들은 점점 많아지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시간에 허덕여요. 잠깐의 여유가 생겨도 그 시간을 가만히 보내지 못하고, 멍하니 있으면 괜히 불안해져요. 무언가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기분이 들고, 효율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자신을 쉼 없이 몰아붙이게 되죠.
<모모>는 바로 그런 우리의 모습을 정확히 꿰뚫는 작품이에요. 미하엘 엔데가 1973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읽어도 놀라울 만큼 현재의 삶과 닮았어요. 그래서인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시간’과 ‘삶의 본질’을 돌아보게 만드는 고전으로 남아 있죠.
작품 속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고 속삭여요.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천천히 쉬는 시간,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은 모두 낭비라고 말하죠. 회색 신사들에게 잠식된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없어.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중요한 인물이 되고, 무언가를 손에 넣는 거지.”라고 말하며 점점 더 바쁘게 살아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삶은 풍요로워지지 않아요. 오히려 웃음도, 여유도,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마음도 조금씩 메말라 가죠.
그 와중에도 모모는 달라요. 가진 것은 거의 없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줄 아는 아이예요. 누군가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위로하고,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드는 존재죠. 모모 곁에서는 아이들도 마음껏 상상하며 놀아요. 특별한 장난감이 없어도 돌멩이 하나, 흙 한 줌만 있으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요. 어쩌면 진짜 놀이는 이미 완성된 것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상상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런 아이들도 회색 신사들을 만나면서 변해가요. 탁아소에서 ‘노는 법’을 배우고,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배워요. 무엇이 앞날에 도움이 되는지, 얼마나 유익한지만 중요하다고 여기게 되죠.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두 아들을 떠올리게 됐어요. 요즘 아이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기관에 다니고, 정해진 프로그램 속에서 하루를 보내요. 놀이조차 교육적인 목적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죠. 물론 그 안에도 좋은 점은 있어요.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들어요. 아이들은 정말 ‘놀고’ 있는 걸까요. 주어진 놀이와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난감, 일찍부터 접한 미디어에 익숙해지면서 정작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가는 경험은 점점 줄어드는 건 아닐까요.
생각해 보면 저 역시 어릴 때는 참 많이 놀았어요. ‘술래잡기, 숨바꼭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도 했지만, 가끔은 규칙부터 새롭게 만들며 놀기도 했어요. 흙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별것 아닌 물건 하나로도 하루 종일 이야기를 만들어냈죠. 아마 그 시절에는 제 곁에도 모모 같은 존재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내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해주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던 누군가가요.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은 달라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공부도, 일도, 자기 계발도 끊임없이 이어지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많은 기준은 과연 누가 만든 걸까요. 어느 정도의 인내심과 끈기만 길러도 충분할 것 같은데, 우리는 왜 늘 더 빨리,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을까요. 다수를 따라가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아 불안해하고, 어느새 내 방식보다 정답처럼 여겨지는 흐름을 좇게 돼요. 그렇게 살아가며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또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요.
빠르게 발전하고 성장하는 사회는 분명 편리해요. 하지만 속도만큼 깊이도 함께 자라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끝에서 얻을 수 있는 생각들, 아무 목적 없이 멍하니 있는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지나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멍때리기 대회’가 생겨난 이유 역시, 결국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이 책은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이 단순히 바빠지는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줘요. 시간을 빼앗긴다는 건 결국 삶의 주도권을 잃는 일이니까요. 내 시간인데도 보이지 않는 회색 신사들의 기준에 맞춰 움직이며 살아가는 것. 지금 조금만 더 참으면 언젠가는 행복해질 거라고 믿지만, 그 ‘나중’은 끝없이 뒤로 밀려나요. 그러는 사이 정말 중요한 순간들은 어느새 지나가 버려요. 아이들이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놀이를 놓쳐버리듯, 어른들 역시 지금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관계를 흘려보내며 살아가죠.
그래서 모모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에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작품이에요. 왜 이렇게 조급해졌는지, 왜 내 시간인데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지, 왜 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여유조차 잃어버렸는지 돌아보게 만들죠.
책을 덮고 나니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동안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아낄 수 있을지만 고민했지,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또 막상 ‘제대로 쓴다’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저만의 기준을 세우고 살아가고 싶어도 주변의 흐름이 워낙 강하다 보니 자꾸 휩쓸리게 되더라고요. 모두가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데 혼자 멈춰 서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그래서 책 속 호라 박사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어요.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니까. 또 자기 시간을 지키는 것도 사람들 몫이지.” 이 말을 읽고 나니, 조금은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졌어요.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더 많은 자극과 정교한 장난감이 아니라, 마음껏 상상하고 스스로 시간을 채워갈 수 있는 여백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어른인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잠시 멈춰 서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타인의 말을 천천히 들어주며,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나누는 것. 어쩌면 회색 신사들에게 빼앗긴 시간을 다시 찾는 방법은 그런 순간들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