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쏜살 문고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이민경 추천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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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이 있나요? 저는 혼자 살던 시기를 제외하면, 저만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독립하기 전에는 여동생과 방을 나눠 썼고,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사용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자기만의 방'이 꼭 필요할까 싶었어요. 그러나 결혼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 필요를 점점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조용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더라고요.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숨 쉴 틈에 가까웠으니까요. 다행히 거실에 가족 수만큼의 책상을 두었어요. 완전히 분리된 방은 아니지만, 그 작은 책상 앞에서만큼은 혼자가 돼요. 지금은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문을 닫을 수 있는, 진짜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이 궁금해졌어요.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요.


책을 읽을 때 저자가 처한 삶의 조건을 함께 떠올리면, 문장이 훨씬 또렷하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그래서 글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찾아보게 되었어요.


<자기만의 방>의 출발점이 된 강연, 「여성과 픽션」을 요청받았을 때 버지니아 울프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단 두 가지였어요. 자기만의 방과 일 년에 500파운드. 이 단순한 조건이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요.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런던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사전 편찬자였고, 집에는 늘 작가와 지식인들이 드나들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지적 자산이 풍부한 환경이었죠. 그러나 그 공간은 철저히 남성의 방이었어요. 남자 형제들은 정규 교육을 받았지만, 버지니아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어요.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집 안에 가득한 책들을, 마치 허락 없이 훔쳐 읽듯 탐독하는 것이었죠. 같은 집에 있었지만, 교육의 기회와 사유의 권리는 분명히 구분되어 있었어요. 이 경험은 훗날 그녀가 왜 그토록 집요하게 '방'과 '돈'을 이야기했는지를 이해하게 만드는 중요한 단서가 돼요.


그랬던 그녀는 상속과 결혼, 그리고 남편 레너드 울프와 함께 운영한 호가스 프레스를 통해 비로소 글을 쓰기 위한 물리적·정신적 공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돼요. 그 과정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요. 여성들은 늘 누군가와 공간을 나눠 써야 했고, 그 공간은 언제나 분주하고 시끄러웠다는 것이죠. 나이팅게일이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채 삼십 분도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듯, 여성의 시간과 공간은 늘 타인의 필요에 잘게 쪼개져 왔어요. 그래서 문을 닫을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사유가 중단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돼요.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은 타인의 시선에서 잠시 벗어나 성별 이전의 존재로,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나'가 될 수 있는 장소예요. 그녀가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그런데 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해서는 결국 경제력이 전제되어야 해요. 버지니아 울프가 연간 500파운드를 반복해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비교적 중산층 이상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버지니아 개인의 명의로 된 소득은 없었어요. 그 말은 곧,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설계할 수 없었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녀는 생계를 위해 글을 써야 했고, 글은 자연스럽게 시장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도 마감과 원고료는 늘 그녀를 붙잡고 있었어요. 생각의 속도는 자신의 리듬이 아니라, 타인의 일정과 요구에 맞춰 조정되어야 했죠. 사유보다 생존이 앞서는 상태였어요.


그러나 상속받은 이후, 삶의 조건은 분명히 달라져요. 시장이 아니라 사유를 기준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당장의 수입을 위해 원치 않는 일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어요. 돈은 그녀에게 풍요를 안겨주었다기보다, 생각을 지킬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돌려주었어요. 그래서 <자기만의 방>에서 말하는 연 500파운드는 단순한 금액이 아니에요. 그것은 여성이 자기 생각을 타인의 리듬에서 분리해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한 현실적인 조건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강연을 준비하며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던 울프는 한 가지 의문에 부딪혔죠. 18세기 이전의 여성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는 사실. 역사서는 여성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여성의 이름으로 남겨진 희곡이나 시 한 편 찾기조차 어려웠죠. 이는 여성이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회가 여성을 독립된 개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차별이 질문조차 되지 않던 시대, 그것이 '상식'이던 시대였으니까요.


울프는 이 지점에서 유명한 질문을 던져요.

"셰익스피어에게 재능이 똑같은 여동생이 있었다면?"

재능은 있었지만, 교육받을 권리도, 경제적 기반도, 문을 닫을 수 있는 방도 허락되지 않았던 여성. 그녀는 결국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고, 설령 썼다 해도 기록되지 못한 채 사라졌을 거예요. 울프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지워진 수많은 목소리였어요. <자기만의 방>은 바로 그 침묵의 이유를 추적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울프는 그래서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라요. 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식적인 편향을 품은 채 쓰인 글은 오래 살아남을 수 없으며, 창조적 예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마음속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에요. 여성이 역사가 시작된 이래 줄곧 가난했고, 지적 자유를 허락받지 못했기에 버지니아 울프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했다고 말해요. 그것은 특권의 요구가 아니라, 창작이 가능해지는 최소 조건에 대한 진술이어요.


울프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이 주장이 얼마나 절실한 체험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게 돼요.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연속적인 상실을 겪었어요. 열세 살에 어머니를 잃었고, 이후 이복언니와 아버지까지 차례로 세상을 떠났어요. 더불어 어린 시절 이복오빠들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경험 역시 뒤늦게 드러났어요. 이러한 사건들은 그녀에게 심각한 우울증과 조울증 증세를 남겼고, 울프는 평생 여러 차례 정신 붕괴를 겪어요. 그러나 울프는 이 고통을 개인적인 불행으로만 해석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여성의 정신적 고통이 개인의 약함이 아니라,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보았어요. 평생 지속된 정신 질환에 전쟁이라는 외부의 압력이 겹치면서, 결국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울프는 코트 주머니에 돌을 넣고 우즈 강으로 걸어 들어가요. 이 선택을 단순한 비극으로만 읽을 수는 없을 거예요. 그것은 어쩌면 자기 삶의 통제권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르니까요. 자기만의 방을 확보했기에 말할 수 있었고, 더 이상 그 방을 지켜낼 수 없다고 느꼈기에 스스로 문을 닫았던 것은 아니었겠느냐는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은 처음부터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어요. 문단의 구분이 적고, 문장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어 집중이 쉽게 흐트러지기도 했어요. 아마도 요즘 책들의 친절한 구성에 익숙해진 탓일 테죠. 저자 역시 책에서 말하듯, 이 글은 치밀하게 정리된 논증이라기보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이어지는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그런데도,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게 전달돼요.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에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 여성에게도 경제적 기반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울프는 단호하게 짚어내요. 어쩌면 이런 글은 버지니아 울프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몰라요. 다른 사람들처럼 눈에 띄지 않게, 불만 없이 살아갈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삶을, 그리고 여성의 삶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사유했어요. <자기만의 방>은 그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며, 그래서 이 책은 한 시대의 문제의식을 넘어 지금까지 읽히고 읽는 거겠죠.


세상은 분명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차별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어요. 그것은 성별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고 바꾸려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해 왔다는 사실일 거예요. 그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왔어요. 이 책을 덮으며, 저 역시 그 변화의 가장자리에라도 발을 담그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마음을 갖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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