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 마녀의 수상한 죽 가게 - 다 타버린 마음을 끌어안고 사는 당신에게
나우주 지음 / 김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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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랏빛을 품은 비교적 얇은 책. 흥미를 자극하는 제목. 표지 그림에서 풍기는 어딘가 오묘한 분위기. 아주 커다란 토끼와 마녀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데, 표정이 비슷해 보이면서 달라요. 토끼가 그냥 바라보는 느낌이라면, 마녀는 무언가를 해내야겠다는 결연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솥에서는 보라색 죽이 끓고 있는데 이 죽은 어쩐지 호기심을 갖고 이리저리 살피는 눈치에요.

 

소설 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나우주 작가. 쓴 소설 중 한 작품이 토지문학상을 수상한 후 극심한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해요. 몇 년간 소설에 손도 못 대는 생활을 이어오다가 용기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픽션에 담아 세상과 다시 소통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토닭토닭, 오늘도 죽 쑤는 하루지만 함께 살아냅시다."라고 말하며 우리 서로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요.

 

'나는 누구고,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누구나 한 번쯤은 품어봤을 의문. 하지만 좀처럼 해소되지 않아요. 그냥 살다가 한 번쯤 다시 마주하게 되지만 삶이 바빠서 오래 붙들고 있지 못하고 흘려보내 버려요. 저자는 시간이 흐르고 삶도 흐르면서 살아내느라 방치한 의문에서 곰삭은 진물이 흘러내렸다고 해요.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가방을 싸 들고 무작정 전국을 떠돌며 8년을 칩거와 방황한 시간을 이 책에 담았어요여전히 답을 찾지는 못했다고 해요. 세상에 정답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 있기나 할까요. 다만 저자는 밖으로만 행해 있던 시선을 안으로 돌렸다고 해요.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기로 한 거죠. '나는 이 안에 있어. 진짜 나를 발견해 줘.'라고 소곤대는 목소리를 귀담아들어 주면서 한 걸음씩 나가고 있는 거겠죠.

 

서울 서초동 번화가에서 '변덕이 죽 끓듯'이라는 가게를 운영하며 '변덕죽'을 파는 한 마녀. 그녀의 죽은 다른 죽과 다르게 사람들에게 활력을 선물해요.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욕망, 욕구, 불안, 비교, 성과 등을 양념으로 하는 그녀의 죽은 보라색을 띠어요. 마녀는 완벽한 죽을 만들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연구하며 자신을 몰아붙였어요. 사람들이 죽을 먹고 힘을 낼수록, 칭찬할수록, 더 잘하고 싶었어요. 증명하고 증명받는 삶에는 지루할 틈이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죽집은 식약처 직원들에 의해 점검을 받아요. 흰 쌀죽이 보랏빛을 띠고, 강장제 효과를 내는 것에 의문을 품은 인근 식당 업주 중 누군가 신고를 한 거죠. 영업 정지가 끝난 후 원산지 표기 의무 이행 권고를 받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식당 문을 닫은 후 마녀는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해요.

 

집에만 칩거하던 마녀는 나날이 숨이 막혀오고 소름과 긴장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껴요. 계속 참다가 어느 날 캐리어에 짐을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는 무작정 떠나요. 동해, 제주, 양평, 용인, 남양주 등으로요. 마녀는 그동안 자신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도망쳤다는 것을 알게 돼요.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낀 마녀는 신경정신과 병동에 입원해요. 의사는 '극심한 번아웃. 그로 인해 동반된 우울증'이라고 진단 내리면서 쉬어야 한다고 해요. 마녀는 지난 5년 내내 쉬기만 했다고 하는데, 의사는 몸 말고 뇌가 쉬어야 한다고 말해요. 마녀는 자신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해요.

"저는 마녀예요. 특별한 죽을 끓이죠. 온갖 자료를 읽고 분석해서 만드는. 그걸 못한다는 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과 같아요." (P. 102)

"일에만 의지하던 사람이 일을 중단하면 방황하게 되지요. 삶의 가치관을 바꿔야 해요. 죽을 못 끓여도,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지 않아도, 당신은 자체로 존귀한 존재예요. 스스로를 틀에 가두지 말란 겁니다." (P. 102~103)

 

병원에서 퇴원한 후 마녀는 궁산이라 불리는 작은 산기슭에 2년째 살고 있어요. 가끔 쫓기는 듯한 조바심과 알 수 없이 긴장감이 올라오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과 대화하며, 집주인인 60대 여류 화가 미니킴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면서요. 여전히 머릿속에 생각이 많고 게다가 수시로 바뀌고 기분도,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요.

 

깊은 밤, 마녀는 방바닥에 앉아 창에 얼비치는 달빛을 봅니다.

"거기서 끓어오른 것이니 거기서 해결해. 다른 누구도, 어떤 장소도, 어떤 약초도, 어떤 형상도 아닌 오직 거기 있는 너만이 할 수 있어. 내 마음의 뿌리, 단 하나의 진짜 나."

어쩐지 온 우주의 '진짜들'이 고독하게 버티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알아주기를, 찾아내주기를 말입니다.

(P. 147)

 

'번아웃' 반갑지 않은데 한 번씩 찾아와요. 세상 모든 것에 의문이 들어요. 왜라는 물음표가 끝도 없이 따라다녀요. 생각하다 생각하다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그냥 멍하니 시간을 보내요. 열심히 살다 한 번씩 찾아오는 번아웃은 내게 쉼이 필요하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잠시 멈춰보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요. 그제야 앞만 보고 달리느라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달아요. 나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것도요. 번아웃을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아웃이 오지 않게 나를 잘 챙기는 것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삶에 쉼과 여유가 한 스푼씩 추가된다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 지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저에게도 약간의 쉼을 선물해 줘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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