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말글 감각 - 빨리감기의 시대, 말과 글을 만지고 사유하는 법
김경집 지음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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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말하고 글을 접해요. 항상 사용하지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는 않아요. 영상, 빨리 감기에 익숙하기에 긴 호흡을 가진 책은 조금은 멀리하게 돼요. 늘 무언가를 생각하고 살지만, 어떤 생각을 붙잡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휙휙 스쳐 가게 내버려둬요. 이렇다 보니 내가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은 한계가 있어요. 평소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내 삶을 확장하려고 하면 브레이크가 걸려요. 내가 아는 만큼 내 것을 만들 수 있는데 단편적인 몇 가지 정보만으로는 부족하기에 금세 한계가 드러나는 거죠.

 

들리고 보이는 언어 너머의 구조와 이면에 관심이 많은 인문학자인 김경집 저자. 저자는 이 책에서 말과 글, 즉 언어의 위상을 재발견하고 힘을 강화해 어떻게 콘텐츠 생산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를 다루어요관심과 시간을 들여 관찰하고 '생각을 생각'하는 '언어(낱말, 문장) 만지기'를 통해 무한한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내가 진정한 언어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해요. 남의 언어에 끌려가는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 속도를 정하는 주인이 되는 것이죠. 저자는 '언어는 세계이고 나 자신이며 콘텐츠의 원천'이라고 말해요.

 

현대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요. 넘치는 정보 가운데 정확하고 체계적인 정보를 고르고 쓰레기 정보를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판단 능력이 요구돼요. 또한 전문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갖춰 필요한 것들을 명확하게 골라내고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인 '생각'을 강조해요. 인간은 항상 생각해요. 최상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생각을 넘어서는 생각, 즉 '생각을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는 시간이 걸려요.

 

현대는 '상(그림)'의 시대로 영상으로 '관람'함으로써 쉽게 '소비'할 수 있어요. 상의 시대는 기호의 시대가 만들어내지 못했던 새로운 콘텐츠를 세상에 제공함으로써 대세를 장악했어요. 상으로 제공하는 지식과 정보에 익숙한 탓에, 기호로 전환시켜 자신의 에너지와 능력을 가미해야 하는 글을 불편해해요. 그래서 갈수록 말과 글이 짧아져요과도한 언어의 축약과 언어 경제성 의존의 습관은 어느 순간 긴 호흡의 사고를 막아요. '생각을 생각'하는 능력이 위축되고, 이는 사고력과 사유의 능력을 퇴화시켜요.

 

지식과 정보, 정서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말, 글, 그림(이미지)이 있어요. 이 중 말의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어요. 그러나 말은 저장할 수 없고 내용을 축적할 수 없기에 그림과 글로 발전했어요. 말의 빠른 즉각성과 쉽게 터득하는 편의성은 글이 갖는 저장과 숙고의 장점과 어우러지며 언어의 너비를 확장했어요. 특히 글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멈춰 세울 수 있으며, 낱말을 만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사유할 때 이점이 커요. 글을 읽는 것은 전적으로 모든 것을 나의 속도에 맞추는 일로, 내가 주인이 되게 해줘요.

 

어떻게 하면 글의 힘을 기를 수 있을까요? 저자는 '낱말/문장 만지기'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해요. 낱말/문장 만지기란 나의 모든 이성과 감성, 감각을 총동원해 입체적으로 알고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에요. 이 힘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핵심적 방법의 하나는 기꺼이 고독할 수 있는 마음이에요.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고독해질 수 있어야 해요. 저자는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를 어떻게 만질 수 있는지 이야기해요. 예를 들어 '시계'라는 낱말을 만질 때 시계가 지닌 수많은 요소를 꺼내 만지는 거예요. 왜 시계라는 물건을 만들었는지, 시간은 어떻게 측정되는지, 처음으로 내 시계를 갖게 된 건 언제였는지, 시계의 구성과 역사 등 수많은 것을 만질 수 있어요. 그렇게 만져진 낱말들은 어느 순간에 저희끼리 이리저리 관계를 맺고 새로운 매듭으로 엮이면서, 예상하거나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들을 쏟아내게 될 거예요.

 

지속적이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는 '낱말/문장 만지기'에서 만들어지는 힘이에요. 내 삶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 낯선 언어들에게 '말을 건네고' 그 말을 자주 만져야 해요. 글을 쓰는 것은 가장 분명한 낱말/문장 만지기예요. 저자는 글쓰기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이 여러 과정을 거치는 '번거로움'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요.

 

책장을 쉽게 휙휙 넘기기 어려운 책이에요. 글의 내용은 쉽게 쓰였는데 멈춰서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 꽤 있어요. '생각을 생각하는', '언어(낱말/문장) 만지기'는 생소했기에 조금 오래 머물게 되더라고요. 저는 책도 읽고 영상도 보는데, 특히 영상을 볼 때 많은 정보 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하느라 1.5배 속으로 보고 넘겨버려요. 제대로 사유할 시간이 없기에 시간이 지나면 백지상태가 되어버리더라고요. 영상 시청, 빨리감기, 건너뛰기 등으로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많죠. 내가 아는 언어만큼 내 세상이라고 하는데 아는 것만 계속 사용하기에 내 삶이 더 확장될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몰라요. 콘텐츠의 시대라고 하는데 내 콘텐츠를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서 저자가 이야기한 언어 만지기를 해보면 어떨까 궁금해져요. 감사합니다.

 

말과 글을 만지고 사유해서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분께 추천해 드려요.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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